가을이다. 단풍이 빨갛게 물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나도 누군가의 사랑으로 빨갛게 타들어가는 한장의단풍잎이 되고 싶다.

    이 계절 단풍은 넘치는 사랑으로 타오른다.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나무잎들은 깊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게 얼마만의 만남인가. 얼마나 반가웠을가. 얼마나 설레였을가. 얼마나 감동하였을가. 땡볕에 데이며 차거운 비에 젖으며기다려온 그 시간들을 즈려밟고 기어이 사랑은 와준 것이다. 그 행복에 단풍은 찬란하게 웃고 있다. 그 기쁨의 향기와 흐름과 빛갈들이 반짝반짝 화사하고 명랑하게 빛난다. 

     단풍은  뜨겁게 타오른다. 사랑이 몸안으로 들어와 들불처럼 퍼져가는 순간 단풍잎들은 얼마나 뜨거울가.  그리고 얼마나 간절하였기에 저토록 피빛의 숨결로 타오를 수가 있을가.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의 떨림과 흥분을 필사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낌없이 온 존재를 내여주고 또한 아낌없이 모든걸 받아들인다. 완벽한 미침과 환희 그속으로 지금 온정신을 집중시켜 빠져들 뿐이다. 그 충만한 사랑으로 그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단풍은 알고 있다. 이 사랑이 어느 순간 떠날 것임을. 그러나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함께하는 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순간만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완전한 주의를 기울여갈뿐이다. 떠나는 것에 대해 억지로붙잡지도 말리지도 않는다. 그것이 순리임을 안다. 떠나야하는 것임을. 그리고 보내줘야하는 것임을. 그것이 또다른하나의 사랑임을. 다만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허락해주어서 고마웠고 사랑받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워할뿐이다.  단풍잎은 눈부시는 사랑을 날개로 비상하고 이내 내려앉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은 것이 기적이고 신비였음을 알며 또한 운명이였음을 안다. 그래서 안으로 눈물을 삼키며 가장 고운 미소로 보내주고 싶었다. 돌아서서 와락 울어버릴지라도.

     그러나 떠나는 순간, 슬픈 경련이 인다. 그것은 비록 짧지난 비현실적일정도로 아주 날카로왔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는 현실을 묵묵히 고스란히 받아들이지만 소름 끼칠정도로 이 세상이 온통 무의미해지고 무감각해지는 시간이였다. 꿈만 같지만 현실이였다. 그것은 이 계절을 통채로 찌르고 흔들었고 이 시공을 축축이 적셔주었다. 

    함께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단풍은 아침 깨여날때 헤여져야할 시간을 세지 않으며 불안도 슬픔도 없이 마주보며 밝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랐으리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가능한 많은 일들을 서두름이없이 느긋하게 함께 즐기고 싶었으리라. 한 사나흘쯤 함께 아침 노을을 바라보고 또 한사나흘쯤 함께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또 한사나흘쯤 뉘집 앞마당에서 뛰놀며 짖는 강아지 소리를 듣고 또 사나흘쯤 길가의 코스모스들의 향기를맡고… 그러나 그 어느 한가지조차도 온전히 누리지 못한채 헤여졌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라는 말도  제대로 못한채 그냥 보냈다. 

    이제 단풍은 축복처럼 남겨진 기억을 안고 침묵한다. 무심히 돋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다가 함께 지낸 밤이 문득 떠오른다. 풀벌레의 가벼운 뒤척임에 함께 들었던 풀벌레들의 속삭임이 문득 떠오른다. 그렇게 몸속 곳곳을 뻗어간 기억들이 언제라도 깨여서 먼 후날까지 소근거릴 것이다. 사랑할 때의 그 미세한 하나의 정확한 감촉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곁에 없는 사랑을 몸이 먼저 찾아헤매는 질긴 시간 속에서 숨막히는 통증에 시달릴 것이다. 함께 했던 기억과 함께 하고 싶은 상상으로 혼자서 뼈속까지 스며드는 외로움의 한기에 몸서리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 다시 만나자는 그 흔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또다시 만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될수밖에 없음을 자기의 가슴을 짚어 믿는 까닭이다. 굳이 약속을 하고 애써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어느날 사랑은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단풍은 하나의 락엽으로 고요히 삭아내린다. 말라들고 비틀리고 구멍이 숭숭 뚫리고 찢어지고… 그렇게 상처로 깊어져간다. 뜨겁게 타올랐던만큼 더 부서지고 더 삭아내리리라. 그것이 바로 기다림이고 그리움인줄 안다. 사랑을 해본이는 기다림이나 그리움이 그렇게 잔인한 것인줄 다안다. 그러나 또한 가슴에 껴안고 숨을 쉴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자유인줄도 잘 안다. 이제 그 것만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이고 또유일하게 남은 선택인줄을안다. 

     가슴의 멈출줄 모르는 눈물은 흐르고 흘러서 다 말라버리고 서서히 메말라간다. 메마른 몸이 다시 닳고 닳아서사그라질 때까지 떠난 사랑을 위해 날마다 기도한다. 언제 어디서든 부디 잘있기를. 어둡고 추운 곳에 머물지 말기를.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 늘 기쁘게 웃을 수 있기를. 그러면서 매 하나하나의 기억을 아주 찬찬히 아주천천히 떠올리며 온몸과 마음과 령혼으로 긴 편지를 쓴다. 그 편지의 매 음절자마다 이 땅 깊숙이 묻혔다가 세상의온갖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여난다. 그의 눈과 코와 입과 미소와 숨결과 정서와 열정…등등의 단편적인 것들을닮은 채말이다. 그렇게라도 반드시 함께 할 것이였다. 

     단풍은 오래지 않아 사라져간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을 잃어가는 것이아니다. 사랑을 잊어가는 것이아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숨쉬는 것일뿐이다. 이제 또다시 향기롭고 찬란한 사랑으로 피여나기 위해서 말이다.  결국 사라짐은 또 하나의 정화이고 승화였었다. 락엽은 또다시 한잎의 연록의 이파리로 돋아나 못다한 사랑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은 시공을 떠난 사랑을 위한 거대한 하나의 몸짓인 것이다. 결코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단풍은 누군가의 사랑으로 타는 것이다. 짧지만 진한 사랑으로 이 계절을 채우는 단풍에 나도 한번 마음 데여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한잎의 단풍이 되여 누군가의 사랑이 되고 싶다. 단풍잎 그 불꽃속에 훨훨 타오르고 싶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꼭 사랑이여야하고 결국 사랑일 것이다.

   나 너를 만나면 단풍잎같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리. 그리고 단풍잎처럼 뜨거운 아직 살아있는 내 심장으로 너를사랑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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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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