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기억들이 있다.

너무 행복해서 선명하게 남은 기억도 아니고, 너무 아파서 잊고 싶은 기억도 아닌,

그저 내가 어떻게 이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싶은 그런 기억.

작년에 오랜만에 부모님과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성인이 된 뒤로는 직장생활을 하느라 명절을 제외하면 부모님과 이렇게 오래 붙어 지낼 일이 좀처럼 없었다. 처음에는 밥을 해주시고 곁을 챙겨주시는것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서로 다른 생활 패턴과 습관이 부딪히면서 사소한 트러블도 하나둘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엄마와 딸처럼 아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다. 

답답한 마음에 혼자 방에 들어가 기도를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십몇년 전, 내가 다섯 살쯤이었을 때였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장을 보러 갔던 것 같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에서 엄마 손을 잡고 따라다니다가 , 엄마를 잃어버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순간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한참 엄마를 찾다가, 전에  엄마가 “혹시 잃어버리면 원래 있던 자리에서 기다려”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엄마가 말해준 대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던 중, 감자지지미를 팔던 시장아주머니가 혼자 있는 어린아리를 발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그 자리에 앉혀두고 엄마를 기다리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떤 한족 아저씨가 수레 위에 올라가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소리치며 사람들에게 묻고 있었고, 

감자지지미를 팔던 아주머니가 “아기 여기 있소”라고 알려주었다.

그제야 애타게 나를 찾던 엄마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내게 가장 선명하게 남은 장면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두려움도, 나를 애타게 찾아 헤매던 엄마의 눈물도 아니었다.

기억의 마지막에 남아 있는 것은 엄마가 나를 끌어안고 울던 순간,
내 손에 꼭 쥐어져 있던 亲亲虾条,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果冻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亲亲虾条이 그날의 기억중 가장 구체적이고 세밀한 부분으로 남아 있었다.

왜 하필 이게 기억날까?

그 기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날 엄마는 놀라고 울면서 나를 끌어안았고, 

나는 엄마 품에 안긴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손에 든 亲亲虾条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 시장사람들은 아이가 참 똘똘하다며, 잃어버렸는데도 울지 않고 엄마를 찾아도 울지 않는다며 나를 대견해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나도 분명 무섭고 놀랐을 텐데, 왜 울지 않았을까.

가만히 그때의 나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알 것 같았다.

아, 내가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었구나,

나까지 울면 엄마가 더 놀라고 걱정할 테니까,

그 순간, 기억 속에 있던 다섯 살의 내가 새롭게 보였다.

나는 그저 울지 않았던 씩씩한 아이가 아니었다.
엄마가 놀랄까 봐 내 마음보다 엄마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내가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며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던 아이였다.

이날 그 기억이 처음으로 온전히 떠오르며, 그제야 눈물이 났다.

어쩌면 다섯 살의 내가 꾹 삼켜두었던 놀람과 두려움이, 이십몇년이 지나서야 눈물이 되어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의 나도 참 애썼구나’

나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어른의 마음까지 살피느라 애썼을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亲亲虾条을 꼭 쥔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를 기다렸을 어린 나를, 이번에는 내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면 엄마가 더 싫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엄마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큰길을 건널 때면 몇 번이고 차가 오는지 살폈고, 집을 나설 때면 문을 잠궜는지 몇번이고 확인을 했다. 잠시라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불안해하며 걱정했다. 그렇게 엄마는 오랫동안 불안을 품은 채 살아온 것 같다.

어릴 때는 그런 엄마가 마냥 싫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그때의 엄마를 단지 ‘엄마’가 아니라 한 여자로 바라보게 되면서, 엄마의 삶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술주정이 심했던 할아버지 밑에서, 엄마 역시 늘 불안 속을 살아온 한 아이였다는 것을.

그제야 나는 엄마의 불안이 단순히 나를 힘들게 했던 어떤 성향이 아니라, 

엄마가 오랜 세월 살아오며 몸에 밴 삶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불안하게 했던 엄마의 모습 뒤에도,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아내야 했던 한 사람의 시간이 있었다.

작년 엄마와 무슨 일로 말다툼을 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다시 화해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난 지금, 엄마와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불안을 대신 짊어지거나 그 불안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课题分离를 연습하고 있고, 

불안도 많고 자존심도 센 엄마는 이제 먼저 사과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조금씩 표현한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하지만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 하나둘 쌓여가는 추억과 기억들속에서,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오늘도 함께 자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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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ism

한번 마음에 걸린 생각은 끝내 매듭을 지어야 놓아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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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면바로 오늘 딸에 대하여 글 썼는데…저의 딸도 5세전후에 서점에서 잃어버린 적 있고, 초딩 이학년 때 홍콩 전철에서 놓친 적 있고. 그런데 딸이 침착하게 대응했다는 거…이제 님과 같은 심정인지 물을께요.

  2. “아, 내가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었구나, 나까지 울면 엄마가 더 놀라고 걱정할 테니까” 이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도 亲亲虾条 궈뚱 너무 좋아합니다. 저는 아파서 진료소 갈 때마다 울지 안으면 쌰툘 사준다는 말에 꾹 참구 엉치주사를 맞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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