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이대로 계속 건강하셔야 됩니다.” 아버지는 멋쩍은 미소만 짓고 계셨고 나는 내가 준비한 선물과 파티가 당신의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당신은 얼마나 즐거운지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소통은 늘 이러하다. 칭찬을 아끼는 엄격한 부친과 태어나길 성격이 살갑지 못하고 애교가 없는 딸의 교류, 적중대로 간결하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서른이라는 나이에 재롱을 부리려고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잘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활짝 웃어주기만 한다.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화답을 하고 싶은데 표현하고 싶은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일까 혹은 무뚝뚝함이 몸에 배여서 그런 것일까? 나는 확인하고 싶었고 그 의문을 깨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크게 외쳤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그리고 우리 곁에 있어줘서 감사해요~!” 나는 미리 주문 제작한 케이크토퍼 문구를 가리키면서 천천히 외쳤다. 눈가에 맺혔던 우수는 여러 겹으로 두터워진 주름에 가리어 잠시 반짝이더니 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다른 곳을 보면서 “그래, 수고했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청력이 약해지고 말씀이 어눌해졌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와 나는 천만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1월5일 밤 10시, 아버지가 쓰러져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응급실 전화를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망치로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고 병원으로 가고 있는 차 안에서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했다. 심장이 쇠약하고 겁이 많은 엄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나는 애써 놀라움을 눌러야 했다. 억지로 태연한척 하며 괜찮을 것이라고 엄마를 다독였지만 큰 사고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진실이 아니고 현실이 아닐 것 같은 상황에 나는 혹시라도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가 잘못 호출한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도 했었다. 엄마와 함께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더 이상 진실을 거부하려는 추측을 멈췄다. 응급실의 병상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늦은 밤이어서 응급실을 전담하시는 의사선생님은 한 분이셨으며 외상의 흔적이 없는 아버지는 CT 촬영을 통해 뇌출혈 가능성이 높다는 진찰을 받았다. 자세한 치료 계획은 이튿날 아침 신경외과 전문의가 상담을 해주실 것이고 그 이전까지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이송이 될 것이며 그 곳에서 상태를 관찰 받고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MRI 촬영까지 마친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이송이 되었고 그곳의 간호사 분들은 늦은 밤이기 때문에 우리한테 우선 귀가했다가 이튿날 아침에 병원으로 다시 오라고 했지만 엄마와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의식불명인 아버지를 그곳에 혼자 남겨두고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엄마도 나도 모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중환자실 간호사 분들의 반복되는 설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나는 중환자실 복도에서 이튿날이 오기를 뜬 눈으로 기다렸다. 잔인한 기다림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었던가, 엄마와 나는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뜬 눈으로 지샌 밤을 뒤로 하고 겨우 새날을 맞았다. 괜찮을 것이라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제발 긍정적인 상황으로 흘러가기를 바라고 바랐지만 의사선생님께서는 깊은 호흡을 하신 뒤에 이제부터 설명하는 내용을 잘 새겨들으라고 하신다. 운명의 심판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의 기운이 내 몸을 감싸 안았고 온 몸이 떨렸다. 의사선생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할 텐데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정신을 차려보려고 다시 크게 뜨고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애써 침착의 끈을 잡았다. 항상 건강검진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었고 실제로도 건강관리를 잘 하셨던 분이고 저혈압인 터라 “뇌출혈”이라는 질환은 아버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가족 병력도 없었기 때문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찰결과였다. 엄마는 계속 옆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흐느끼고 있었고 아침 일찍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척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기 바빴다. 병명 그대로 뇌의 혈관이 파열되어 뇌 속에서 출혈이 생긴 것이고 출혈이 많고 뇌가 부은 상태이기 때문에 바로 수술은 어렵다고 했다. 수술을 해도 백퍼센트 완벽하게 원상태로 회복되기 어렵고 지능도 60퍼센트 정도만 복구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힘든 엄마를 잘 챙겨드리는 것과 눈물을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거의 두 달 남짓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고 보호자의 중환자실 방문은 한 번에 30분씩 하루에 두 번만 가능했다.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고 혼수상태인 탓에 계속 눈 감은 상태로 누워계셨다. 일주일정도 시간이 흘러 눈을 뜨기 시작했지만 식물인간처럼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거나 꼬집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버지는 뇌 시술 두 번, 수술 두 번을 거쳐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기셨고 엄마와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게 두 번째 수술을 받은 이후였고 정확히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이 되던 날이었다. 호흡기와 약물의 힘으로 지탱해온 아버지의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병마는 벌레처럼 당신의 근력과 살을 갉아먹었다. 치료를 통해 가족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중환자실 입실 두 달 만에 일반실로 이전하면서 아버지는 조금씩 호전을 보이셨다. 의료진 선생님들은 아버지의 병세 호전 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했지만 가족친지들은 다시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하거나 우리가 서로 마주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날을 맞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나는 퇴원을 한 이후 여윈 상태로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고 재활치료가 가능한 대학병원을 수소문하여 외래진료를 등록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꾸준한 재활치료와 건강한 식단의 조합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가족모임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박수를 치면서 아버지한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악몽같이 시작된 2020년, 꿈같이 다시 우리 가정에 웃음을 되찾아준 2020년의 끄트머리, 그리고 2021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잠들기 전에 되뇌곤 한다. 

    “아버지, 우리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2020년 10월의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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