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웃는 모습이 이쁘다. 아마 모든 아이가 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집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또다른 답이 있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아이의 제일 이쁜 모습은 “자는 얼굴”이다

천사라고 해도 좋다. 무슨 이름을 갖다대도 좋다. 온 집안에 평안이 깃든다. 그게 중요하다. 치대던 모든 물건들이 멈추고, 치솟던 데시벨이 수그러들고, 치밀던 혈압도 안정을 되찾는다. 

근데 왜 그럴까. 왜 자는 얼굴이 제일 좋을까. 아이가 뭘 해줬길래, ‘자 준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아이는 바뀐게 없는데. 왜일까. 아마도 나를 건드리지 않아서, 더는 내가 아이라는 ‘타자’에게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 ‘타자’에 대한 절대적인 타협과 인내, 그런 중압감이 나라는 ‘자아’를 짓누르고 뒤틀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건 아닐까. 

아이가 잔다는 것은 결국 나의 ‘자아’가 바뀌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이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내가 좋아서, 그래서 아이가 이뻐 보이는거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은 아침기도 시간을 가지고 있다. 가족을 위해 아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한테는 묵상과 반성과 내려놓음과 돌이킴으로 새롭게 충전되는 시간이 되고있다. 결국 이는 아이에게 끌려 내가 바뀌는데로부터, 내가 나를 바꾸는데로의 방향전환의 시간이 되고있다.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다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다. 어제 화냈던 모습, 미안한 일들이 아이의 뽀얀 얼굴을 언뜰언뜰 스친다. 

그래, 니가 내 삶을 차지하고 있다고,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고 느껴서 아빠가 그런거 같애.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 니가 잘못한게 아니라, 아빠가 바뀌는게 싫어서, 아빠가 이기적이어서 그런거야. 솔직히 아빠는 니가 바뀌기를 바랐던거 같애. 유치하지 그치? 두살배기가 자기한테 맞춰주기나 바라고. 니가 잘 때 제일 좋은 것도 아빠가 너한테 맞춰주지 않아도 돼서, 아빠가 바뀌지 않아도 돼서, 그게 좋았던거야. 

세상은 다 그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좋다고 했으면 좋겠고, 자기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으면 좋겠고, 자기를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다른 사람들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근데 자기도 또 다른 누구한테는 그 ‘다른 사람’이란 걸 까먹을 때가 많아. 다른 사람이 바뀌기를 바라지만, 그 ‘다른 사람’인 자기는 종래로 바꾸지 않으면서 말이야. 자기를 바꾸면 ‘다른 사람’도 바뀌는 건데, 시작은 여기부터인데 영원히 시작하지 않는 시작을 항상 바라고 있어. 

아빠는 이제 바뀌기를 두려워하고 멀리하지 않을게. 너를 위해서 아빠는 나를 바꿀게.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맘속으로 읊조린다. 그러다 보니 작은 깨달음에 이른다. 우리 아이의 제일 이쁜 순간은 웃는 모습도 자는 모습도 아니라는. 기도 뒤에 보는 아이의 모습이 제일 이쁘다. 아이가 뭘 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달라져서가 아니라, 내가 아이의 본 모습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눈이 열렸을 때, 그 눈을 떴다는 ‘나를 바꿈’이 아이의 이쁨을 완전히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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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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