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전쟁은 여전히 뉴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으며 이러한 사실을 관망하면서 먹고 입고 즐기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위대한 영웅이거나 자선가가 아니고 그러한 능력도 없으니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틀림없다고 자칭한다.

코로나가 더이상 발목을 잡지 않으니 호기심이 유발하는 대로 어느 정도 설레는 곳에 가보기로 마음 먹었고 그곳이 위험한 듯 아닌 듯한 러시아였다. 주변에서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라고 하는 만류가 있었지만 워낙 성격이“청개구리”같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에 더욱 집착을 가지는 괴상한 고집이 있는 터라 “지금”의 러시아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일전에 이미 러시아로 여행을 다녀온 지인을 통해 그곳에 대한 얘기를 들어왔지만 그래도 마음이 설레는 것보다 살짝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3년 만에 나가보는 바깥세계,공항에서 찍은 캐리어 사진)

10간30분이라는 장시간의 비행을 거쳐 착륙을 하는 순간 내심 기대를 하고 있는 상태인지라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움직이며 주변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는 대기선에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순서가 오지 않아 다양한 상상을 해본다. 심사관이 해외에서 온 “불청객” 같은 “이방인” 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이 있을까?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인의 친절한 참견이 떠올랐다. 내 앞의 친구가 심사를 거의 십분 여 만에 끝내고 옆줄에서 대기한 친구는 앞 사람의 심사가 끝나지 않아 아직도 대기하고 있다. 드디어 나의 순서가 돌아왔고 빠르게 이 심사 과정을 마쳤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친절한 미소를 보이며 여권을 내밀었다. 심사관은 엄숙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나의 정면을 민망할 만큼 쳐다보았다. 심사관과 내가 한 공간에서 시간이 멈추고 주변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다. 다음 심사관은 눈동자를 숙련되게 위, 아래, 좌, 우로 움직이며 나와 여권에 부착된 나의 사진을 비교해본다. 그리고 쪽지 같은 작은 종이를 건네 주며 서툰 중국어로 사인을 하라고 한다. 예상 밖이면서도 굉장히 친근감이 도는 언어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 여기에 오면 차분함으로 변할 듯한 속도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러시아를 알아가는 모드에 진입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공항은 모스크바 푸쉬킨 공항이고 일상이 아주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상황이 눈 앞에 펼쳐졌으며 걱정보다 이제는 설레는 마음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중국보다 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이 곳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다녀온 곳이 어디인지 자랑하고 싶은 못난 나의 마음 때문에 가끔 산으로 갈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으니 부디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동안 이 큰 땅덩어리에서 길이 막힘을 제대로 체험하고 보니 도로 개발을 과학적으로 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중국처럼 도로가 사통팔달 했다면 이동이 참 용이할 텐데 말이다. 또 하나는 유가(油价)와 생수 가격이 유사하다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심지어 유가보다 더 비싼 생수도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캐리어는 내팽개치고 배고픔을 달래며 밖으로 나왔다.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우유와 요거트의 맛, 그 무엇도 첨가되지 않고 순수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달콤한 기분을 더해주었다.

(우유와 요거트)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이 곳에는 사람의 털 색상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순 러시아인과 조금 다른 외모와 털의 색상이 검은색을 띄면 흑모자(黑毛子)라고 부른다. 이렇게 그들을 이름 지어 부르고 실제로 그들이 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에 질이 좋지 못한 그룹으로 정리한다. 이때쯤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이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중국 조선족”, “소수민족”, “재외동포”, “조선인”, “고려인”, “선족인(鲜族人)”, “빵즈(棒子)”, “소캐바지”, “검둥이”, “소일본(小日本)” 등 쉬이 접했던 이름 몇 개가 떠오른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어느 순간에 다가오는 치명적인 상처 마냥 차별을 두는 이러한 이름은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서발턴”이라는 어휘가 생각난다. 서발턴(subaltern)이란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로서, 부르주아 지배 계급이 교육과 언론을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에, 그들에게 종속된 하층민(서발턴)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계급이 나누어지고 등급이 구분되어야 하는 먹이사슬 같은 사회관계 속에서 차별은 존재감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순리인가 섭리인가 날씨가 추운데 마음까지 더욱 쓸쓸하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부터 비와 함께 한 우중충한 날씨지만 기분이 계속 떠있었다. 첫 여행지는 谢尔盖圣三叶修道院(세르기예프 수도원)이었고 비둘기 구경을 실컷 할 수 있는 관광명소라고 생각된다. 도처에서 푸드득 푸드득거리는 비둘기 떼를 보니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때문에 계속 피해 다녔다.

(비둘기 떼)

러시아의 주된 종교 신앙이 동방 정교회다(东正教). 마침 일요일이어서 예배를 하는 현지 문화에 융합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인문학 수업을 듣는 셈 치고 한 번 체험해보는 것이 마땅할 수도 있겠다. 건축물의 외관은 동화책을 보면서 상상했던 예쁜 궁전처럼 알록달록했다. 근엄하고 엄숙하지 않았고 아름답고 가까이하고 싶은 자태를 뽐냈다. 예배를 하는 일요일이기 때문에 내부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조용히 관찰했다. 천장 높이가 굉장하고 종교의 사연으로 꽉 채워진 벽화 때문에 화려하면서 동시에 웅장함을 아우르는 내부는 외관을 통해서 느꼈던 바와 전혀 달랐다.

(외관 사진)

다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红场(붉은 광장)이다. 물론 어디를 가나 중심적이고 상징적인“광장”이 있다. 현재의 해설로 “붉다”가 러시아어에서 아름다움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광장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는 이 곳이 과거의 역사와 관련 지어 보았을 때 아픔, 고통, 희생을 대변하는 “붉은 색”으로 인식했다. 소비에트정권과 러시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붉은 광장에서 감상할 수 있는 여러 건물)

그리고 바로 옆에 세워진 크림궁(克林姆林宫), 이 시국에 크림궁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흔쾌히 관광객의 수요를 만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입장이 가능하지만 크림궁 광장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몇 가지가 있었다. 한 쪽 인행도에서 다른 한 쪽 인행도로 마음대로 건너갈 수 없고 보안요원의 안내가 있을 경우 움직일 수 없고 제자리에서 멈춰야 한다. 아무래도 이 국가의 정치적인 행정 업무가 진행되고 대외적인 외교활동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이 엄숙하다. 이러한 규칙을 모르고 입장을 해서 자유자재로 광장에서 거닐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보안요원이 호루라기 한 번을 불면 경고이고 두 번째부터 처벌이 요구된다.

(크림궁)

러시아에 오면 꼭 체험해야 하는 곳이 있다면 지하철이다. 비록 지금의 현대화 모식의 스마트함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옛 사람들의 지혜와 기술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관광지의 하나로 꼽힌다. 터미널에서 지하철 승차를 위해 내려가야 하는 지하 통로는 아주 깊숙하다.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한참을 타야 지하철을 대기할 수 있는 플랫폼에 도착한다. 러시아의 자랑이라고 할 만큼 일반적인 교통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금물이다. 지하궁전의 아름다움은 조형물 하나하나가 뜻하는 의미에서 발현된다.

(지하철)

그리고 잠깐 들린 모스크바 대학에서 산책을 조금 하고 사진도 찍고 현지인처럼 여유를 부려봤다. 공원같이 잘 가꾸어진 긴 화단은 궁전의 정원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캠퍼스의 정취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선생님과 학생 몇명이 화단 앞에 서서 진득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단에 앉아서 레포트를 쓰는 듯이 조용히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두 학생도 보인다.

(모스크바 대학)

모스크바에서의 일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다음은 행선지를 변경하여 상트로 이동했다. 게으른 성격 때문에 상트에서의 발견은 조금 더 수정을 하고 올릴 예정이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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