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에 떨어지니 영속적으로 나를 지탱해 줄 것만 같았던 자존감 또한 이내 나락했다.
내가 서 있는 '방위(方位)'를 재확인 하는 도중에 종래로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들을 느껴본다.
이전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또한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열정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 붓는 삶이야 말로 참다운 삶이라고 여겼고 인간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갈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의 형태가 바로 허무주의였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욕구와 의지 그리고 이를 실천 해낼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가 언제나 손쉽게 작동될 수 있는 기본 옵션인 줄 알았다.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의 실존 문제가 나에게는 문제도 아니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또 다른 의미에서 삶을 거꾸로 살아가는 듯 하다.
주변을 둘러 보는 것에 안주한 순간, 뒤를 돌아 보는 것에 머무른 순간부터 나는 추락의 심연을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허무'의 광야에 종착하여
그제야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 너무 가늘어
하늘을 바라볼 엄두를 못 낸다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하늘을 슬큰(충분히) 맛보았으니 이젠 그 반대쪽도 알아가 봐야지" 이 오만함이 낳은 결과는 앞서 작성한 바와 같이, 내가 종래로 이해 할 수 없었던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무것에도 의욕과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그 정서를 철저하게 이해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그것을 지탱하는 에너지도 더이상 손쉽게 작동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정신적으로 장애를 앓고 있다고 판단했다.
허무로 충만한 이 세상에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타협을 거부하는 모종의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 이들이 되려 긍정적이게 보였다.
어쩌면 다다주의(20세기 초 미술운동)의 정수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현재의 나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허무의 늪에서 자신을 일으켜 실금으로 보이는 저 하늘까지 다시 기어 오르자니
막막했던 것이지.
이때 나의 메신저는 일침을 날린다.
"글을 쓰세요. 그리고 책을 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어느새 책을 멀리 한지도 일 년 반.
나의 오만함과 상상력의 추락은 아마도 내가 앎의 추구에 게으른 그 시점부터 시작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내가 랙에 걸린 나를 분석 해내며 진단한 결과이자 더불어 내린 처방전이다.
새삼스럽게 들리겠지만 "독서와 글쓰기"가 나에게 미치는 지대한 역량을 이제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지난 일 년 반 동안 수 많은 실천들 속에서 내가 몸소 터득했던 가장 값진 경험일 것이다.

무슨 메신저가 이리 똘똘함까 ㅎㅎ
그치에 정말 감사한 친구임다
그래서 다시 든 책이 또 ‘자아비판’임까
ㅎㅎㅎ 책을 든 사진이 이것 밖에 없는데 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사진 속에 든 책도 자아비평이군요. 사진보구 깜짝 놀랬슴다.
나두 내 엘범 볼때 깜짝깜짝 놀람다
성찰과 반성이 일상이시군요 ㅎㅎ
언니 이 말 들은게 어째 순간 개그맨이 되고싶어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