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일기(제8화) 최종화

이번 달에는 이 한 편으로 마무리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교사들이 항상 학교 업무가 많다고 투정부린다. 우수한 교사들은 종래로 불평을 하지 많는다. 그들은 하루 24시간 언제든 업무에 몰두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엔 졸업 여행, 취업과 면접을 위해 25회 넘짓한 항공편을 이용했다. 연말쯤 되니 연초와 같은 희망찬 의욕과 설레임은 사라지고 그냥 모든 것이 귀찮고 부질없어 보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시도했던 마지막 면접이 합격되면서 그토록 허무했던 2023년이 값져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미래가 과거를 결정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올해 나는 코로나 봉쇄 기간과 견줄 수 있을 만큼 한 자리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냈다. 

취직 후 몇 달 동안 나의 정신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1. 气郁(그 무엇에도 아무런 의욕이 없음)

2. 气虚(목소리에 맥이 없음)

3.无感(자신과 주변으로부터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을 잃음)

4.悲观(삶에 기대가 없음)

나도 이렇게 위험한 상태인데 학생한테 뭘? 어떻게? 무엇을? 가르쳐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매일 들었고, 내가 하루 빨리 회복 되기를 바랐다.

엎친데 덮친겹, 하반년은 더욱 더 '잔인'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어이 없었던 것은 이 말도 안되는 업무량이 아니라 업무에 시달리면서 점점 쾌유되고 있는 나 자신이였다. 

보편적으로 예술인은 자유를 갈망하며 틀에박힌 일들에 대해서는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 자들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들은 비판과 방항 이후의 '건설'에 관해서는 종종 무심하거나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그 더러운 세속내부는 우리와 같이 고상한 예술가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제스처다. 따라서 이들에겐 "비현실적", "이상화"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상화 된 직장 생활상"이 삐끗할 때 마다 용납할 수 없는 반항적 본능이 치밀어 올라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우울의 늪에 흔히 빠지는 것 또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것이다. 그 이상을 빌미로 현실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게 되면서 "이상"은 영원히 이상으로 남게되는 결과를 낳는다.

나의 정신 상태가 쾌차하게된 이유는 "이상의 우물"에 비춘 나르시시트적인 자기만족과 자기연민에 머무르지 않고 "이상의 파괴" 과정들을 깊이 경험하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낸 덕뿐이다.

내가 바라왔던 "이상"은 언제부터인가 그 아우라를 상실해갔다. 나는 이러한 이상을 소유할 수 없었던 나를 줄곧 비난해왔지만 사실 내가 버리고 싶었던 것은 세속 만큼이나 가식에 둘러싼 "예술의 이상화"였다.

지금 작성하면서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나니 숨통이 트여진다. 

너의 운명이 이러한데 왜 자꾸만 자신을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고 애쓰는거야? 그 잣대가 이상화된 예술이든, 사회적 압박과 요구이든, 직장의 빠른 템포든, 배우자에 관한 너의 고정관념이든.

"현실"은 그것의 못된 부조리를 몸소 체험하게끔 만든다. 거기서 "현실"이 이기면 나는 내가 처해 있는 환경 속에서 루저로 끌려다니게 되고 내가 승리하면 일시적인 나의 존엄을 지킬수 있게 된다. 정말 简单粗暴하다. 즉 삶의 매 순간마다 나의 결정과 판단으로 인해 나의 역사가 쓰여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창조적인 삶이 아닌가? 이것이 얼마나 설레이고 도전적인 일상이란 말인가?!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교사들이 항상 학교 업무가 많다고 투정부린다. 우수한 교사들은 종래로 불평을 하지 많는다. 그들은 하루 24시간 언제든 업무에 몰두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위의 글이 소위 "우수한 교사의 판정 방식"이라면, 나는 투정을 마음껏 부리면서 내가 중심이 되는 교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24시간 업무에 매진하는 교사가 되기로 목표를 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인간다움이고 무엇이 책임이고 무엇이 용기인지를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는 그러한 교사가 되길 목표한다.

취직 소식을 지도교수님 한테 전달했을 당시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이 올해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저는)남을 가르친다기 보다 학생들과 같이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러고 보니 나의 원기가 점차 충만해지고 무기력증에서 쾌차할 수 있었던 것은 세속의 업무와 세속의 바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토록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도 꿋꿋하게 과제를 해내며 희망을 꿈꾸는 너희들의 눈빛 때문이다.

학생1 "다음 학기에도 선생님 수업이 있나요?"

학생2 "선생님 다음 학기에 성생님 수업이 없으면 저는 퇴학할거에요."

올해 나는 아무런 논문 성과도 학술 업적도 연말 보너스를 받을 만한 프로젝트도 내세울께 없다.(아예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하지만 너의들로부터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명료해진다. 

올해는 너희들로 인해 나의 2024년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구나. 

나도 너의들과 함께 생각하려고 더 노력할게. 

그러고 싶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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