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하통하를 마주향해 서 있다. 소리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복잡한 머리는 비워지고 번거로운 마음은 간잔지런하게 다듬어진다. 강바람을 맞으며 스적스적 강변 유보도를 산책하기도 하고 바람이 고요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기도 한다. 그런 날, 부르하통하 수면에 내려앉은 찬연한 해살은 물결의 움직임을 따라 조금씩 몸을 뒤채인다. 그 은밀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을 곁눈질 해가면서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바퀴는 굴러가고 내 안에 고여있던 어둠은 조금씩 밀려나간다. 내 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고단하고 비루한 삶의 잔해들은 눈앞에서 해살처럼 부스러지고 나는 패왕처럼 그것들을 깔아뭉개며 달린다.
부르하통하는 사실 내세울만한 무엇은 없다. 강폭이 넓지도 않고 강 량옆으로 가로수가 있긴 하지만 아름답고 울창하게 우거진 록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부르하통하는 물 흐르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아서 나는 가끔 가만히 귀를 기울여본다. 그제서야 나는 흘러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듯 은밀하고 낮은 소리가 들릴뿐이다. 부르하통하는 말수 적고 진중한 사람을 닮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하고 있다가 바람이 불어 자신을 흔들어놔야 수면에 고기비늘처럼 물결을 일렁일 뿐이다. 이렇듯 요란하고 화려한 것들과는 거리가 먼 강이다보니 부르하통하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잡지는 못한다.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흔들만한 특별한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부르하통하는 나한테도 그러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반짝 하고 띄이는 거라고는 없는 참으로 별볼일 없는 강, 고작해야 내가 살고 있는 연길이라는 작은 변강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 그저 그랬다.
내게 부르하통하가 특별해진 계기가 있었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던 때였다.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부했는 데 이룬것도 남은 것도 없었다. 내가 나를 아끼는 법을 알지 못한터에 몸은 여기저기 고장나 있었다. 몸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정신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고 별것 아닌 것에도 민감해 있었다. 정신은 늘 흐리터분했고 우울한 기분은 도통 가셔지지 않았다. 몸부터 추슬러야 겠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약을 먹고 꾸역꾸역 음식을 먹었지만 몸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턱밑까지 짜증이 올라와 있었다. 우선은 마음의 안정을 취해야 몸도 나아질거라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였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들쑥날쑥한 마음을 다스릴수 있을지 답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동면하는 곰처럼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곰이 자신의 발바닥을 핥듯 끊임없이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열심히 산 사람은 당연한 보상이 따라야 하지 않는 가. 나는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견뎌온 시간들이 억울했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나를 아껴가며 자기중심으로 살걸 그랬다는 참으로 유치한 후회도 했다. 그렇게 살았다고 해서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삶이겠냐만 어쨌든 이토록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면 저도 모르게 입술이 깨물어졌다.
이 상태가 계속되다가는 미쳐버리거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무작정 밖에 나와서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발길을 멈춘 곳이 바로 부르하통하강변이였다. 이른 봄이였고 이따금씩 미풍이 부는 날이였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부르하통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날도 부르하통하의 강물은 언제나처럼 검었고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만약 그날 내가 마주한 부르하통하가 격정에 넘치고 소란스러웠더라면 나는 거기에서 위로를 받기는커녕 한층 더 마음이 들쑥날쑥해 졌을것이였다. 나는 고요한 강물을 오래 바라보았다. 참으로 편안한 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연중 보이지 않는 손이 다가와 내 마음을 어루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나는 오래만에 일말의 희미한 위로를 얻었다. 나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터벅터벅 물길을 따라 걸었다. 연동교 아래 하류쪽에 이르자 얼핏얼핏 돌이 보이며 물소리가 정겨운 구간이 보였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차라 이름모를 환희마저 느껴졌다. 나는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어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구석구석 집안 청소를 했고 밥을 먹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래만에 숙면을 취했다. 그 이후의 시간에 나는 매일같이 부르하통하를 찾아 마음을 달랬고 드디여 나는 나를 둘러싼 검은 장막을 헤치고 나와 정상적으로 살아갈수 있게 되였다.
부르하통하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부르하통하 강변을 달리다보면 다리밑을 지나게 된다. 어두컴컴하고 기분 나쁜 냄새도 나서 나는 머리를 수굿하고 빠르게 페달을 밟는다. 숨도 참아가면서 그 순간은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만 집중한다. 재빨리 벗어나기 위함이다. 마침내 푸른 하늘이 보이고 시야가 탁 트인다. 나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는다. 사는 일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의 삶이나 검은 구름이 비낄때가 있고 어쩔수 없이 진창길을 지나야 할 때가 있다. 어차피 내 앞에 닥친 일이고 불가피한 것이라면 투덜거리고 불평하기보다는 이 시기를 보내고 나면 좋은 날이 올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 악물고 빨리 헤쳐나가는 데 전력을 다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만약 사랑을 한다면 부르하통하를 닮은 남자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거세찬 파도가 일 듯이 격정적이는 않아도, 블랙홀처럼 끌어당기는 마법같은 매력은 없더라도 다가가기 편안하고 내가 힘들 때 묵묵히 위로가 되어주는 남자, 그런 남자야말로 한생을 기댈만한 사람이며 은근하고 소란스럽지 않은 사랑이야말로 오래 유지가 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한때는 세차게 밀려와 처절썩 부딪치는 파도같은 격정적인 사랑을 원했었다. 뜨거워서 델 것 같고 서로의 목을 졸라 질식할 것 같은 관계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랑이 어찌 미미하고 고요할수 있냐고 생각하던 때였다. 미처 부드럽고 고요한 것의 웅숭깊음을 알지 못했어서 그랬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숨을 죽이고 가만히 부르하통하를 바라본다. 속을 알수 없는 저 수면아래에 부르하통하는 얼마나 많은 비루한 것들을 숨기고 있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보이지 않는 저 속에는 깨진 병조각도 있고 악취를 풍기는 죽은 물고기나 익사한 짐승의 시체도 있을터이고 맨 밑바닥에는 오래된 물때도 두껍게 껴있을것이다. 누군가의 눈물도 스며 들어 있을터이고 창자가 뒤집히는 듯한 고함도 껴안고 있을터이다. 그 모든 것들을 부르하통하는 결코 내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비루하고 람루한 조각들을 묵묵히 껴안고 조용히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고 있을뿐이다.
다시, 내 안의 상처와 편린들을 떠올려본다. 살아온 모든 발자국은 내 스스로의 선택이고 그때에는 맞다고 생각했던 것일터였다. 생의 어느 순간이던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위안이 될 일이다. 쓸모없는 후회와 반추란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나온 내 삶의 잔해들을 꾹꾹 눌러 펴놓고 그 것들을 넘어서는 일일 것이며 단단하게 내 길을 가는 것일 터이다. 바람이 분다. 부르하통하의 검은 수면에 일렁이는 움직임이 신의 조화인 듯 무척이나 아름답다. 내 마음에도 기분좋은 충일감이 그들먹하게 차오른다.

연길사람이지만 부르하통하가 낯설었는데, 하몽님 글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