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에서 음악으로
나는 요즘 마음에 드는 짧은 글이나 시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어떤 음악의 장르나 스타일이 떠오른다. 이건 인디 음악, 또는 발라드 가사 같고, 저건 얼터너티브 록 가사로 제격이며, 때로는 랩이나 일렉트로닉 음악, 또는 드물게는 재즈… 이어서 보컬의 음색, 주요 악기 등등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AI 덕분에 그런 상상을 실제 음악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박문수님이 오래 전에 쓴 시 "누가 손수"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큰 감동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의 절을 나누고 후렴을 붙여 가사로 바꾸고, 어울리는 장르와 스타일을 입혀 동명의 "누가 손수"라는 음악으로 만들었다. 다행히 작가님도 좋아해 주어서 아예 작가님의 음성으로 학습을 시켜서 음악으로 완성했다. 원작 시가 워낙에 좋았지만, 글의 내용이 음악을 통해 또 다른 결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 그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고, 뜻밖의 피드백을 받는 과정은 뿌듯하고, 나에게 꽤 소중한 경험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거나, 아예 필사를 하거나, 또는 소리 내어 낭독을 하듯이, 나는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셈이다.
2. 음악은 뇌 전체를 흔든다
읽을 때보다 들을 때 더 크게 울리는 문장이 있다. 같은 노랫말이라도 멜로디에 실리면 감정의 결이 훨씬 다양해지고, 더 깊게 다가온다. 왜 그럴까?
답은 뇌에 있다. 글을 읽을 때 뇌는 주로 언어 처리 영역인 좌뇌의 브로카와 베르니케 영역을 사용한다. 반면 음악을 들을 때는 좌우 반구가 동시에 활성화되고, 멜로디와 리듬, 정서, 예측, 기억이 함께 작동한다.
게다가 음악은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측좌핵을 자극하여 뇌의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듣기 좋은 말도 삼세번”이라는 옛말처럼, 같은 문장을 글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건 쉽지 않지만, 노랫말은 수십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이비드 콕스는 『Creative Thinking For Dummies』에서 "음악은 뇌의 모든 주요 영역을 활성화시키는 유일한 창조적 활동"이라고 말하며, 음악이 대뇌 피질뿐 아니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까지 동시에 자극한다고 설명한다. 신경학 의사이자 작가이며 음악애호가인 올리버 색스도 『뮤지코필리아』에서 음악이 뇌를 자극해 치유에 이르는 사례들을 소개하며, 음악이 단순한 감상 그 이상임을 강조한다.
또한 음악은 해마와 편도체에도 저장되기 때문에, 어떤 노래는 '그때 그 순간'을 통째로 되살려낸다.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그 곡을 처음 들었던 장소와 계절, 냄새, 온도, 심지어 습도까지 함께 떠오르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언어는 시간을 따라 흐르지만, 음악은 시간을 되감기(replay)한다.
표 1. 음악의 여러 요소에 따라 활성화되는 뇌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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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 |
작용 부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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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사) |
좌뇌의 브로카 영역(개념과 단어 매핑), 베르니케 영역(문법 구조 해석) |
가사의 의미 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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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
측두엽, 우반구 |
음정/화성의 흐름 인지 및 감정 반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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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
소뇌, 전두엽 |
예측과 긴장 완화 → 쾌감 유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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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연상 |
편도체, 해마 |
기억된 감정과 연결 → 울림 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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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시스템 |
측좌핵, 도파민 경로 |
즐거움, 중독성 유발 (좋은 음악 반복 청취의 원인) |
3. 음악, 인간의 본성과 정서의 언어
개인적으로, Avicii의 전자음악은 무기력할 때 또는 집청소처럼 힘을 필요로 할 때 에너지를 끌어올려 주고, 록 음악은 우울과 좌절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된다. 또, 어떤 음악은 이미 슬픈 나를 더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하지만, 그 수렁에서 감정을 빠르게 소진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기도 한다. 음악은 감정을 고양하거나, 배출하도록 하며,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심리적 메타포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음악의 힘은 진화적으로도 설명된다. 초기 인류는 언어보다 음악을 먼저 사용해 정서와 공동체 유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라고 부르기도 한다. 레너드 마이어(Leonard Meyer)는 음악이 청자의 기대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전복함으로써 강한 감정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긴장과 완화를 반복하며 뇌와 감정을 동시에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그림 1. 음악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호모 무지쿠스", "음악 인류"
4. 언어를 넘는 감정의 언어, 음악
음악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들리지는 않는다. 말이나 글, 특히 정보적인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하게 이해하지만, 음악은 듣는 이의 감정 상태와 ‘주파수’가 맞을 때 비로소 귀에 들리고 마음에 울림이 생긴다. 그래서 어떤 음악은 한 시절의 내 감정을 송두리째 꺼내어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나는 어떤 음악은 노랫말에 감동을 받고, 어떤 음악은 멜로디에, 또 어떤 음악은 보컬에 더 이끌린다. 하지만 결국 음악은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정서적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나의 경험이다. 노랫말은 언어지만, 음악이 되면 언어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언어 너머의 음악이 이끄는 감정의 세계에,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마음으로 성큼 들어가는 것이다.
원작자 박문수님 작품 모음: https://wulinamu.com/members/yustyong/submissions/
시 "누가 손수": https://wulinamu.com/shi/4332
음악 "누가 손수": https://suno.com/s/kRyHyHfHGHYJiPB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