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첫 반응과 교류
붉은 방은 여전히 낯설었다. 벽은 심장처럼 박동했고, 화면 속 닉네임들은 숫자와 이름으로만 존재했다. 목소리 대신 글자가 떠오르는 방식은 단순했지만, 그 단순함 속에 묘한 압박이 있었다.
처음으로 입을 연 건 **윤예린(003)**이었다.
윤예린(003):
“…한 달에 한 편씩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거죠? 빠지면 다 끝나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문장을 보고 있던 이들은, 어쩐지 자신이 이미 시험대 위에 올라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강범수(002):
“맞습니다. 규칙은 명확해요. 한 명이라도 실패하면, 방은 무너집니다.”
그 말에 몇몇의 커서가 동시에 멈췄다. 누군가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민태리(004):
“근데 그게… 전부 사라진다는 뜻인가요? 나 하나 때문에 스물다섯 명 전원이 같이?”
오하은(025):
“…그렇죠. 한 명의 무게가 스물다섯의 무게와 같습니다. 이건 단순한 글쓰기 모임이 아니라, 공동의 운명처럼 느껴지네요.”
짧은 대화였지만,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누군가는 키보드를 치려다 멈추었고, 누군가는 괜히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마스크맨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 마스크맨:
“여러분의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매월 발표되는 글의 조회수와 반응은 곧 평가가 될 것입니다.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글은 특별한 보상을 얻게 되실 겁니다.”
그 문장은 방 안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단순히 ‘의무’라고만 생각했던 글쓰기가 이제는 경쟁의 무대가 되었다.
송유진(013):
“그럼, 결국 잘 읽히는 글이 유리하겠네요. 검색에 걸릴 만한 주제, 사람들이 관심 가져줄 만한 키워드…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거죠.”
최은별(009):
“벌써 전략 얘기인가요? 하하, 조회수 경쟁이라니. 근데 솔직히 조금 재밌겠는데요?”
윤태강(024):
“…저는 좀 불안합니다. 누군가는 높은 순위에 오를 테고, 누군가는 아무도 안 읽는 글을 쓰게 되겠죠. 그게 결국 낙인이 되지 않을까요?”
대화창은 잠시 멎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들이었지만, 모두가 쉽게 넘기지 못했다.
경쟁은 곧 희생을 의미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묘한 설렘을 느꼈다.
**정민호(010)**는 조용히 메모장에 전략적인 키워드를 적어두었고, **권나래(017)**는 ‘사람들이 가장 클릭할 만한 제목은 뭘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조한솔(005)**은 눈을 감았다. 글이 경쟁이 된다면, 솔직함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그는 기록은 본래 고백이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이 방에서는 고백마저도 숫자로 환산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불편하게 했다.
붉은 벽은 커져가는 파동을 따라 흔들렸다.
누군가는 그 소리를 심장 박동처럼 느꼈고, 누군가는 자신이 이미 거대한 실험실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모두 글을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글은 누군가에게는 칭찬이, 누군가에게는 낙인이 될 것이다.
첫 교류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흥분했고, 누군가는 주저했다.
하지만 누구도 나가지 않았다. 아직은, 아무도.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