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철이 벌써인가. 국경절, 추석명절이 한창인데 갑자기 노벨상 수상자 관련 내용으로 도배가 된다. 왕년에도 이랬던가. 2024년 한강 작가가 문학상을 받을 때에는 지인들의 포스트가 온통 차넘쳤던 기억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라면 가깝게 느꼈던 사건이었다.
올해 이 시간 나의 주변을 노벨상 뉴스가 휩싼 것은, 일본 교토대학 출신의 연구자가 2025년 생리학•의학상과 화학상 두 부문에서 수상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연구실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개인적 친분이 없어도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명목만으로도 뿌듯해 하기도 하고 과시하기도 하고 진심으로 내 일처럼 기뻐하기도 하고… 인간의 심리는 다양하지만 팔불출 식의 정보가 확산이 빠른 것은 미디어의 생리이기도 하다.
같은 대학 지인의 포스트 중에는 "내 평생 노벨상과 제일 가까웠던" 이라는 글과 함께 기자들이 수상자가 기자들 플래시 속에서 학교 건물에서 나오는 자리를 지나치며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8년에 마찬가지로 교토대학 연구자가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이 발표되었을 그날 오후, 나는 대학 정문의 노천 카페에서 상징적 건물인 종루 앞에 방송국 중계차 여러 대가 서있는 장면을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 한적한 가을날의 오후
2018년 수상자
그리고 그 시각 종루 안에서는 수상자와 총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감정은 자랑스러움, 기쁨, 으쓱함 이런 것보다는 조금 달랐다. 실감이 안 남과 체감 사이 어딘가의 미묘함이었다. 나의 전공분야도 아니요, 그 수상 성과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동문의 영광 이런 걸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진부하다. 아마도 그건,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노벨상과 이렇게도 가까운 곳이었구나 라고 하는 깨우침, 심지어는 뉘우침과도 비슷한 궤적의 감정이었다. 내가 받고 싶은 노벨상(?)은 무슨 상인지 잠시 비밀로 하고.
일본에 오기 전에도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학부 시절 주변의 지인 중에는 졸업하면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이가 있었다.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언젠가는 그가 방학 시간에 유엔의 모 기구에서 인턴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때 느낀 것은, 아, 내가 있는 이곳은 유엔과도 가까운 데구나 라는 생각. 시골 출신으로 지방에서 고중까지 다닌 나로서는, 유엔이나 하버드가 까마득한 상상 속의 '그 멀리'였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있는 곳에서 한 걸음 떨어진 '저기'임을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학부 졸업 후, 실제로 주변의 누군가는 유엔 산하의 기구에, 누군가는 하버드에 가있다. 꿈을 꾸지도 않으면 이루어질 리도 없다. 근데 어떤 꿈을 어디까지 꾸어야 하는 지, 상상력 자체가 울타리에 갇혀져 있지는 않았나.
아득하게 멀어 보이던 그 곳, 이 행성의 최고라 일컬어지는, 내노라 하는 자들이 모여있는 곳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 이루어진 결과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성과들이 잉태되고 자라고 있는 과정, 그 과정을 이루는 평범한 하루는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 '실체'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 사실 그것이 필요하다. 신화가 아니라 날것을 만나는 일. '나'와 '월드 탑'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끼는 것. 신화의 광배를 제거하고 나면 내가 성장하기 위해 착실하게 시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보기술이 이같이 발달한 지금에도, 최고가 있는 바로 거기에 내가 직접 가보는 것이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나의 전공은 일본학과 연관되므로 지역성이 강하다. 그래서 일본이 세계 최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은 일본 내에서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이른바 세계 최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이 가능하다. 처음 대학원을 바라고 유학을 왔을 때, 학부생들의 수업에 청강 들어갔다가 학부생들이 너무 잘해서 풀이 죽고 기가 꺾였던 경험이 있다. 박사논문을 쓰는 중에도 여러 번이고 자신을 의심하고 도망치고 싶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만난 연구자들의 존경스러운 모습, 가끔이지만 나의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의 인정을 받을 때 차츰차츰 나의 위치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드러나 보이면서 리듬을 찾아왔던 것 같다.
노벨상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최고가 최고가 되기까지의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이 나와의 거리가 얼마인지를 곁에서 재어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감과 자아평가의 씨앗이기도 하다. 꿈이 허황되어 보인다면 그 꿈을 이룬 자의 곁에 가보는 것을 권한다. 꿈을 현실로 사는, 아니 현실의 들숨 날숨이 꿈이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까.

교토에 피뜩 들렀던 나도 영광임다 😄그리고 유엔 회의실안에 내가 들어가서 사진찍는 일이 있었다는게 꿈 같은일이였슴다 😄
역시 옥주 누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안가본 데 없슴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