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길
꽃잎 움추린 테두리에
밤이 물드는 소리
우산의 뼈
하늘에 휜다
바람의 척추를 딛고 선
시간의 곡선을 따라
빗소리의 메아리
기억을 두드린다
강물을 타고
물방울이 바다로 내려갈 시간이다
시냇물 거슬러
이슬이 산을 오른다
풀 잎 위에 엎드려
한 조각 하늘을 가두고
덧없는 세상은
소리없이 굴러간다
이슬의 흐름 꺽일 때마다
강의 허물에 폭포가 일어난다
이슬이 돌을 깍을 때마다
산의 흉터에 계곡이 자라난다
투명한 이슬이
제 갈 길을 간다
갈라진 돌 틈으로
새벽이 흘러든다
부러짐과 휘어짐 사이
두 갈래 강이 하나로 얽힌다
상처는 더 깊은 강으로
물의 초심이 돌을 뚫는다
태양이 가운데 모일때
계절이 원을 그릴 때
둥근 여정을
물방울이 돌고 돈다
온전함을 위한
한 치 빗나감도
제자리를 찾는
흐름의 약속이니
안개 가라앉아
이슬 머금는 일
샘물이 솟아
바다에 닿는 일
구름 떠올라
락엽 흩날리는 일
눈물 녹아
봄날에 흘러드는 일
산마루 바라보며
계곡의 바람을 걷는다
발 아래 둥근 세상
이슬이 굴러간 흔적
모든 굽힘은
하나의 고리로 엮여
굽은 길 따라
곧은 길이 간다
물 가는 길에
갈림길이란 없으리
고개 숙인 그 곳엔
어긋남이란 없으리
구름타고 골짜기 맴돌다
폭포로 부서져 호수에 머물다
얼음 사슬 풀고
바람 따라 하늘 오른다
산길 휘어져도
봉우리는 그 자리요
강물 구불어도
바다는 그 곳이다
빗길을 걷고
하늘길을 걷는다
낮은 곳에 머물고
높은 곳을 오른다
스스로를 껴안은
한 방울 둥근 고리
이슬의 전생이
눈동자에 맺힐 때
물에서 흙으로 가는 길
흙에서 하늘로 가는 길
빗바람 걷힌 뒤
깃발을 휩쓸고 간 자리
그림자의 무게를 들어올려
해 뜰 때
안개가 흩어지고
무지개가 휘어지니
한 평생을 돌아본
가장 곧은 지름길
굽은 길의 둘레를 펼쳐낸
한 알 이슬의 순례
거품이 아문 자리에
투명한 것이 피어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