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자라면 매달 힘든 그 첫날이다.
아랫배가 다른 때보다 많이 아파서 집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평일 출근준비를 위해 7시15분 정도에 일어나는데 오늘은 10시반까지 퍼근하게 잘 잤다. 퇴사를 보름 남겼지만 아직 직장인 신분이여서 남들 출근시간에 쉰다는건 또 그렇게 기분이 좋다. 커튼을 활짝 제치고 따사로운 햇살를 기대했지만 오늘 여기는 흐렸다. 우리집 강아지는 금방 자다 깬 눈으로 나를 느슨하게 쳐다본다. 정말 쟤는 나이 먹은 만큼 점점 사람 같다. 코도 어찌 사람처럼 잘 구는지…
주섬주섬 세수도 하고 치솔질도 하고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새로운 직장 찾기 위하여 오늘도 작품집(포트폴리오)을 만든다. 최근 몇편의 일기에는 연속해서 '작품집'이란 단어가 계속 나오는데 그도 그럴것이 매일매일 틈만 나면 매달리고 있는게 이 작품집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지겹도록 언급할것 같다. 디자이너 예비후배가 있다면 파릇파릇하게 자라날것 같은 새싹들을 내가 막 밟아 놓은건 아닐가 싶다. 덜덜 떨면서 직업을 바꿀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통으로 하루 몰두 했으니 진도가 쫙쫙 나갔다. 7페이지 정도 만들었다. 35페이지에 맞춘다는 전제하에 총 15페이지 정도 했다. 시작이 어렵지 조금씩 익숙해지고 속도가 붙는다. 잘하면 설날을 쉬고 와서 바로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낼수 있을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여려가지 일에 있어서 해 보지도 않고 애써 외면하고,어렵게만 생각하려 하고, 포기하도록 유도 했었구나를 느꼈다. 이런면에 있어서 이 회사한테 참 고맙다. 직무적으로든, 일 하는 방식이든 여러가지를 많이 배웠는데 어떤일에 있어서 되던 안되던 일단 조금씩 해보는거(어쩔수 없이 하는거긴 하지만), 그것만큼은 진짜 값지게 잘 배웠다.
몇시간 하다보니 머리도 식힐 겸 회사에서 보낸 설날선물을 뜯어보았다. 네번째로 받은 설날선물인데 이 회사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 아마도 마지막이겠지? CEO편지, 회사 캐릭터가 달린 놀이감(?), 력서, 对联, 설에 조카들 용돈줄때 쓸수 있는 훙보,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드는 크다만 담요까지. 꽤 알찬 구성이였다. 그런데 이 알찬 선물은 오히려 내 마음안쪽 더 큰 씁쓸함을 끄집어 냈다. 왜 이렇게 아쉽지? 제일 좋은 결과인거 나도 아는데…
사람이란게 왜 이런거에 동하고 아쉬워 할까… 성본을 합해 봐야 얼마도 되지 않는것들인데 이런감정은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情怀?集体荣誉感?모르겠다, 그 어디쯤에 있겠지. 머리론 다 부질 없는걸 알면서도 이 작은것에 마음을 움직인다는건 내가 그만큼 마음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작품집을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아주 자주적으로 3년반전 작품집에 눈길이 갔다. 그때 나도 괜찮게 만든것 같은데 지금은 더 잘하네? 그냥 자뻑에 취해 있는것일수도 ㅎㅎ. 암튼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느낄려고 계속 그 폴더를 여는것 같다. 왠지 좋은 앞날이 눈앞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것만 같았다. 더 선명하게 보여야지.
그래 배상금도 받고, 새로운 시작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