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무에 글을 쓴지가 오래됐다. 마지막 글은 벌써 넉달전, 10월의 일이다. 그리고 <두만강 사전>을 소개했던 글은 지난해  8월. 그 사이 사전 읽기 진도가 너무 안나갔다. 오늘 여러 사람의 감독의 눈을 빌리고자 포스팅 하나 해놓자. 

우리말 사전은 모두 가나다순이다. <두만강 사전>의 맨 첫 번째 올림말은 ‘가’이다. 뜻은 ‘그 아’가 줄어든 대명사. 경상도 방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가’만 반복하는 이야기랑 비슷한, 아니 같은 뜻의 우리말. ‘가가가가가'(악센트 없으면 전달 안됨, ‘걔 성이 가씨니?’ 라는 뜻)에서처럼 이 음절을 반복해서 쓰지는 않지만, 연변에서는 매우 자주 쓰는 낱말 중 하나. 

이 사전의 ‘일러두기’의 ‘용례’ 부분을 보면, “조사 지역의 문화역사사회 등을 보여 주는 용례는 그 내용이 다소 길더라도 모두 수록하였다’ 한다. 읽으면서 재미있는 혹은 감동되는 예문들을 올려 보면서, 추억 소환, 나때도 저런 일이 있었지, 혹은 아바이 아매 세대 때는 저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들을 같이 해보면 좋지 않을까. 아래부터는 읽은 순으로 뽑아서 올려 본다. 예문은 모두 실제 발화로 이루어짐. 표준어 번역은 편자인 곽충구 교수가 함. 70, 80대 노인들 위주로 수집되었기에 ‘ㅌ>ㅊ’, ‘ㄷ>ㅈ’ 등의 이른바 ‘구개음화'(예: 받팀 > 받침)가 없이 그대로 남은 경우가 많은 점은 미리 감안하시를 바란다. (*성점이나 장음, 일부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생략.)

★가갸거겨 (분포: 전역). 명사. 기본음절표의 첫 네 글자. 

– 함지에다가서 야 모래르 이래 놓구서르 여기다가서 글으 복문이 열네 줄 잇쟈입니까? 가 갸 거 겨 예. 이거 먼져 우리 어마니 써줘서 우리 내 아홉 살이 열 살 요 어간에 야 요거 써줘서 밤이믄 늡어서 어드메서 하는가나무 배애다 글으 쓰무 뱃속으르 들어간다구 이릏기 얼렛단 말이. 우리 부모덜이 예. 그 적엔 나이 어리다나니 일으 아니하다나니 요거 재밀 붙엣단 말이. 그래 한 자 두 자 알무 이게 귓속에 들더란 말이. 이래 모랭기에다가서리 함지에다 이래가지구 흙으 녛어 기래가지구 가갸거겨르 열네 줄으 학습햇단 말이 야. 우리 총귀 그리 아이 무디단 말이. 이것두 메츨 애니니 이내 다아 알게 데구 야  그담이 기역 니은 받팀우 그담에 또 학습하게 댓단 말이. 이래니 이거 붙이니까데 이런 책으 보게 데더란 말이, 야. 죠선말책으. 이래가지구서르 기초르 죠꼼 닦았디. [도문 월청]

(표준어 번역[아래도 같음] : 함지에다가 응 모래를 이래 놓고서 여기에다 글을 쓰는데 기본음절표에 열네 줄이 있잖습니까? 가 갸 거 겨 그거. 우리 어머니가 먼저 써 주어서 아홉 살 열 살 요 사이에 요거 써 주어서 밤이면 누워서 어디서 (공부를) 하는가 하면, 배에다 글을 쓰면 뱃속으로 들어간다고 이렇게 얼렸단 말이오, 우리 부모들이. 그때에는 나이가 어려 일을 안 하다 보니 요거 재미를 붙였단 말이오. 그래 한 자 두 자 알다 보면 귓속에 들어가더란 말이오. 이거 ‘모랭기’에다 함지에다 흙을 이래 넣어 가지고 가갸거겨 열네 줄을 학습했단 말이오, 응. 우리 총기가 있어 그리 배우는 게 무디지 않단 말이오. 이것도 며칠 안 가 다 알게 되고 응 그리고 기역 니은 받침을 그 다음에 학습하게 되었단 말이오. 이렇게 재미를 붙이니까 이런 책을 좀 보게 되더란 말이오, 응. 조선말 책을. 이렇게 해서 조금 기초를 닦았지.)

>> 그 시절 옛날 부모님들이 농사일을 하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고자 했던 열망과,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나름 맞춰서 가르친 방법 등을 엿본다. 배에다 글씨를 쓰면 뱃속으로 들어간다고 ㅎㅎ. 어릴 때에는 또래끼리 등에다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 맞추는 놀이를 했었는데

 ★가꾸모꾸(분포: 훈춘 경신). 명사. 모서리를 모가 나게 깎은 나무. 

– 일본아덜이 병영집우 막 마사내다서 양쳘이구 무슨 슈래목덜이 가꾸모꾸 많앳디. 뜯어내다서 잘 져엇디 무. [훈춘 경신]

(일본인들의 병영 막사를 막 부수어 내서 양철이고, 무슨 수래목(水來木)들로 만든 각목이 많았지. 뜯어내다가 잘 지었지, 뭐.)

– 그 홍소이던디 백소이던디 예 그 이런 미츨한 거 일본아덜이 가꾸모꾸 떡 낸겐데. 그거 녯날사람덜이 귀한 낭기 먼데서 온 거 슈래목이라구 햇습구마. 물르써 온 냉긴데 노인덜으느 슈래목이라구 햇디. [훈춘 경신] 

(그 홍송(紅松)이든지 백송(白)이든지 그런 미끈한 것을 가지고 일본인들이 각목을 낸 것인데. 그거 옛날 사람들은 귀한 나무, 먼 데서 온 나무를 ‘수래목(水來木)’이라고 했습니다. 물을 통해서 온 나무인데 노인들은 ‘수래목’이라고 했습니다.)

>> 일본군이 주둔해 있었던 역사가 들여다 보인다. 철수하고 남은 곳에서 삶을 이어갔던 옛사람들. 글쓴이의 고향에는 일본인이 남긴 건물이 정부 건물이나 학교 건물로 계속 쓰이는 일이 있었다. ‘수래목’이란 말도 있었구나 싶고. 두만강의 하천 수운을 이용한 벌목이 있었겠고

 ★가는-밸(분포: 훈춘 경신, 훈춘 밀강, 도문 월청). 명사. 위와 큰창자 사이에 이어진 가늘고 긴 소화관. 

– 도투 잡우문 가는밸가 모딘밸이 잇디. 순대는 가는밸두 하구 모딘밸두 하구.  [훈춘 경신] 

(돼지를 잡으면 가늘고 긴 작은창자와 큰창자가 있지. 순대는 작은 창자로도 하고 큰창자로도 하구.

– 모딘밸애 곱이 치우라 많이 붙구, 가는밸에느 곱이 젹게 붙는단 말입구마. [도문 월청] 

(큰창자에 기름이 주로 많이 붙고 작은창자에는 기름이 적게 붙는단 말입니다.)

– {올림말 동사 ‘가다’에 나온 관련 예문 하나 추가} 쿤 거느 예 야듧 근씨 가압구마, 구램대지 배앨으느. 이거 그거 수렁대지 거저 닐굽 근이나 여슷 근이나 이렇기 가디. [도문 월청] 

(큰 것은 여덟 근씩 나갑니다, 암퇘지 창자는. 수퇘지는 그저 일곱 근이나 여섯 근이나 이렇게 나가지.) 

>> 가는밸, 모딘밸이라구도 불렀네. 글쓴이네 쪽에서는 큰밸, 작은밸이라고 썼었다. 순대를 하는 날이면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큰 다라(함지)에 담고 분업으로 했었는데. 돼지피, 내기, 찹쌀 등을 섞어서 긴 젓가락으로 부지런히 밸속에 쑤셔넣었던 그 장면이 머리에 남아있다. 그나저나 암퇘지를 ‘구램대지’, 수퇘지를 ‘수렁대지’라고 하는 거는 처음 들음. 엄청 옛날 말 같아 보이는데..

 ★가달-말(분포: 훈춘 경신). 명사. =대말. =죽마(竹馬). 

– 우리 아아 때느 그 가달말이 두 발씨 돼는 거 버들, 맞촘하게 쬭 뻗은 거 그 그테게다아서 그 붕매르 다는데에–옥수끄 그 무시겐가… 농에다서 서너 개 달아매서 두에다 탁 달문–그 늠우게 끗게댕기메서 볼만해앳다니. 산에서 타구 내려 뛸때문사 대애여슷씨 닐야듧씨 어부작으 티메서. 다배딘다구 욕하구, 어시덜은. [훈춘 경신]

(우리가 아이 때는 그 죽마가 두 발씩 되는 버들인데, 맞춤하게 쪽 뻗은 버들의 끄트머리에다 그 ‘붕매’를 다는–옥수수 그 무엇인가… –노끈에다 서너 개를 달아매서 뒤에다 탁 달면 그놈이 끌려 다니면서 볼 만했지. 산에서 죽마를 타고 내려 뛸 때면 대여섯씩 또는 일고여덟씩 고함을 치면서 내려왔지. 넘어진다고 몹시 나무라고 부모들은. *버들로 대말을 만들고 그 끝에 옥수수자루를 달아매서 놀았다는 말.)

>> 죽마고우 할 때 그 ‘죽마’를 할아버지 세대들은 진짜 장난감으로 놀았네. 아부재기를 치면서 산에서 뛰놀면서 말이다. 신기해서 픽함

일단 첫 글은 여기까지. 사전은 글자가 빼곡한데다 벽돌처럼 두텁지.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개미 금탑 모으듯, 우공이 산을 옮기듯, 조금씩 읽어 보자. 

오늘은 제12페이지, 올림말 ‘가당하다’까지 읽음. 

[관련 글] 사전 한권 통째로 삼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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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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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전을 통채로, 별나고 멋있는 취미입니다. 오 당연하겠지만 첫 단어가 “가”네요. 좋은 단어입니다. 어릴때 뭔가 이름 부르기 어떠산 존재도 우리는 “가”라고 하지 않았나요? 학술적인 글에 그렇지 못한 댓글 끼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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