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자를 보여주세요."(일본어)
"여기요."
나는 항공사 직원에게 폰에 있는 전자 파일을 황급히 보여드렸다.
"프린트 하셔야 합니다. 지하 1층에 내려가시면 프린트 기기가 있습니다."(일본어)
나는 1월 말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입국용으로 프린트 해뒀던 한국 여행 비자 A4용지를 조각조각 찢어 버렸다. 일본 여행은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한데. 10분 뒤에 탑승 마감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프린트 하고 오면 탑승 수속을 놓칠 것 같습니다. 혹시 전자 파일은 안될까요?"
"죄송합니다. 프린트 하셔야 합니다."(일본어)
일본어를 모르는 일인으로서 뉘앙스를 듣고 대충 뜻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항공권 출력 마감 시간까지 단 10분 남았다. 당시 나는 후쿠오카 공항 3층에 있었다.
더 이상 아규 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바로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프린트 기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ローソン…..”
"네? 어디요?"
“…..ローソン(Lawson)….”
"아 로썸!!"
재빨리 달려갔다.
프린트 기기를 드디어 찾았다. 하지만 복사 및 출력 기능이 있는 프린트 기기는 바로 옆에 배치한 터치 스크린으로 작동되는 것 같은데 전부 일본어다. 프린트 기기 위에는 영어로 된 큐알코드가 부착되어 있고 뭔가 일이 복잡해지는 예감이 들었다.
"혹시 프린트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로썸 직원 한테 물었다.
직원은 난감하고 죄송한 얼굴로 사용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서서히 멘붕이 온다.
"글쎄, 첫 일본 여행 치고 왜 이렇게 순조로운지 했어. 여기서 한방 먹일려고!!!"
카메라로 복사기 위에 있는 큐알코드를 스캔했더니 이메일 인증이고 뭐고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이메일로 받은 링크를 클릭하면서 내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머리가 띵 했다.
그러던 찰나 옆에 있는 일본어 터치 스크린을 다시보니 아까는 안보이던 외국어 선택 버튼이 있는 것이다!!
이메일로 인증을 마치고 온라인 드라이브에 저장해뒀던 비자 파일을 폰에 저장하고나서 바로 프린트 기기에 웹페이지에서 받은 출력 코드를 입력했더니 작동되었다!!!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안도하기엔 너무 일렀다. 40엔을 지불하라고 뜨는 것이다. 그제야 이 기기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출국 전에 엔화를 거의 다 써버려서 그 당시 주머니에 5엔짜리 동전 밖에 없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로썸 직원분 한테 정말 죄송하니 혹시 35엔 아니면 좀 더 많은 금액을 잠시 빌려주실 수 있는지, 비자를 출력하고나서 바로 atm 기기에서 돈을 드리겠다고 거의 애원했다.(중국도 아닌데 이런 발상이 통할리가 없었다.) 직원은 도와드리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atm기기가 어디 있는지 여쭙고 또 다시 캐리어를 끌고 달렸다. atm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미 양쪽 모두 긴 줄이 서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줄에 서 있는 세 명의 20대 여성이 한국인으로 보여서 이번에도 부끄러움따위는 제쳐두고 너무 죄송한데 혹시 내가 한화를 드리면 일본 현금으로 바꿔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역시 공산국가 스러운 발상이였다.) 그 중 한 명이 없다면서 손을 흔들며 단칼에 거부했다. 그래 여긴 외국인데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
넋이 나간 나는 그제야 핸드폰을 꺼냈지만 시간을 볼 용기는 없고 혹시나 다른 항공편이 있는지 어플로 조회했다. 당일 티켓은 전부 매진이다. 나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이튿날 티켓을 이미 구매 해둔 상황이여서 오늘 내로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면 내일 중국으로 가는 티켓도 버려야 되는 상황이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찌릿 하더니 한화 지폐가 가방에 있는 것이 떠올랐다. atm 기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곳에도 저곳에도 보이는 환전소를 가면 되잖아!!
환전소를 향했을 때 이미 항공편 티켓 접수 마감 시간인 10:30분이였다. 어차피 출국하려면 프린트를 꼭 해야 되니…그래도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환전소 직원은 아주 예의 바르게 나한테 한화 2000원을 환전하는 것이 맞는지 두 세번이나 체크 해주시고(바빠 죽겠는데), 904엔 인가 확인 하라고 하였다. 나는 고개를 급한 만큼 세게 끄덕이며 빨리 주셨으면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직원은 동전 한 알 한 알씩 플라스틱 접시에 올려 두고 마지막에 꼼꼼하게 세보는 제스처 까지 빼놓지 않았다. 그 다음 단계로 영주증 같은 것을 발급해야 하는데 해당 직원이 모든 수치를 입력하자 컴퓨터가 약올리듯이 고장났다.(ㅎㅎㅎ)
해당 직원은 옆에 있는 남직원에게 환전을 다시 부탁하면서 다 세 놓은 동전을 몽땅 자신의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옆에 남자 직원은 아까 그 과정을 다시 한번 복붙하고 있었다. (하…)
드디어 환전이 완료되고나니 나는 땀을 빠질 빠질 흘리면서 로썸으로 향했다. 다행이 프린트는 순조로웠고 나는 발빨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폰을 힐끔 보니 10:43분이다. (11:00에 탑승 시작이고 11:30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그래도 혹시나해서 다시 카운터로 향하니 직원들이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나머지 나는 아리가도… 스니마세…라고 하면서 쏜살 같이 국제 출발로 향했다.
역시나 대기줄은 길었다. 나는 직원분 한테 10분 뒤에 탑승시작이라고 티켓을 보여드렸더니 바로 들어가게 하였다.
검사를 다 마치고나니 11:10분이다. 문뜩 아빠가 칠성 담배를 친구들과 맛보고 싶어 사오라는 부탁이 떠올랐다.
"살까 말까?" 탑승 대기실은 꽤 컸고 탑승구까지 거리가 있어 보였다.
앞으로 직진하다가 아빠의 기대의 눈빛이 나의 발목을 잡아 어쩔 수 없이 바로 옆 상가 직원에게 담배 피우는 손짓을 하면서 "시가랫, 시가랫" 했더니 탑승구 반대편 방향을 가리킨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고민을 멈췄고 바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뭘 찾으세요?"
"세븐 스타!!"
"中国人吗?"
“七星七星,最好抽的是哪个?”
“这款是用日本本地烟草…..卖得最好….”
이거지! 나는 바로 담배 한 줄을 들고 계산대에 갔다.
탑승구에 도착했을 때 다행이 끝 줄(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탑승 성공이다!
5박 6일 동안 처음 가는 일본 여행이 의외로 너무 순탄하여 여행기를 쓸까말까 고민하였는데 역시나 마지막 순간에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