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 검도(동아리활동)


오늘은  딸의 중학교 생활중의 중요한 부분인  部活(브카츠)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한다. 

일본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나한테 젤 큰 어려움은 육아이다 . 생각해보면 육아 외엔 누구나 일본에서 생활한다 해도 크게 어려움은 없을것같다.  일본어만 어느정도 의사소통정도 된다면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 일본인들은 거의 대부분 타인에 대해서 (외국인도 포함 ) 무관심한 편이기 때문에  이방인으로선 한국보다도 더  편한것 같다.하지만 육아는 다르다.   유치원(보육원) 시절부터 엄마가  담당해야할 몫은 정말 많다, 특히 유치원은 활동이 많고  어린 애들이 함께 모여서  활동하거나  유치원 행사를 치르게 되면  엄마들도 함께  얘기를 나누거나   행사준비를  모여서  한다거나 …  해야할일이 많은 편이다. 평일은  오후 2시30분쯤이면 퇴원해서 각자 취미 수업반에  다니기 때문에  엄마들은 거의  일을 할수없을 정도이다 . 엄마가  회사원이나 전직으로 일을 하면 보육원에 보낼수밖에 없다.  보육원은 말그대로  풀타임으로 일하는 부모를 위해서 보육만 해주는 시설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어찌어찌 해서  나도 겨우 우리딸을  유치원 , 소학교의 각종 행사를  마치고 중학생 학부형이 되였다 . 중학교부터는 학부형이 학교에 갈 일이  아주 적어진다.

 일본의 중학교 생활은 (部活 브카츠)방과후 동아리 활동이  학업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평일 수업이  15시 30분쯤 끝나면  16시부터 18시까지  동아리 활동 훈련에  참가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18시 30분 정도이다 . 딸애는 소학교 때부터 중학교에 진학하면 배구 혹은 롱구를 하겠다고 결심했는데  정작 중학교 진학하여  여러가지 동아리 활동에  체험한뒤 최종으로 검도를 선택했다 . 남편은  롱구를  좋아하였기때문에 끊임없이  딸애한테  롱구를 하라고 권유했고, 나는 딸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 하겠다고 했다.  나는 검도에 대해서 백지상태였지만 딸이 하고싶은 것을 응원하자는 마음이 제일 컷던것 같다. 

중학교는 소학교와는 달리   학부형들이  거의 학교갈 일이 없기때문에 나는  딸애의 검도에 대해서 잘 알지를  못했다. 처음 본것은  동아리 학부형회 일때였다. 1학년에서 8명이  검도부에 가입했고 2학년에 5명 ,3학년은  여자애 4명 이 전부였다. 그때 처음  훈련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3학년 선배들이  훈련을 지휘하고 있었다. 키 큰  딸애가 검도복을 입은 모습은   정말 멋졌다. 이후에는 학교에 갈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내가 하는 일은  선생님이  한달에 한번씩  주는 훈련스켓쥴과  원정경기 일정 등을 체크 하여 도시락을 만들어주는 것뿐이였다. 

또 한가지는 원정경기에  학부형 두명씩  갔다왔다를  나눠서   인솔해야되는 임무가 있는데  , 시간이 되는 학부형들이 자원해서 하는 식이였다.   일년에  한두번씩만 하면 되기에  나는  뭣두 모르면서 갔다왔다를  둘다 하겠다고 지원한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였다.  경기를 한다고 해서 온종일 우리팀만 하는것이 아니기에   하루종일  경기장에 있는다는것은 고역이 였다.  일본에  제일 흔한것이  편의점이기에 , 나는 딸의 도시락만 준비하고 나는 편의점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였는데…그날 경기장소는 멀리 다른곳의 학교였는데  근처에 편의점이 없었다. 그래서 쫄쫄 굶으면서   하루종일 버텼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딸은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검도를 접했는데 , 워낙 운동신경이 좋아서 금세 잘하는 아이로 뽑혀  각종 대회에 단체선수팀 후보선수로 활약했다 .3학년 선배중에 梅村선수가 가장 잘했는데  각종 개인전에 금메달을 수두룩히 딴  우리가 사는 지역에선 넘버원 선수였다. 소학교때부터  검도를 배워 실력이 대단했다. 2학년의  新庄선수와 1학년의 近藤선수  이 세명이 소학교때부터 검도를 했기에 다들 잘했고  활약이 대단했다.  

며칠전의 검도顧問 야마자키(山嵜)선생님의  이동소식 아니였으면  나는 딸의  검도에 대해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것이다. 선생님의 이동이 결정된것은 3월 19일이였다.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5년에 한번씩 이동하는데  야마자키선생님이   다른학교의 부교장으로  발령이 난것이다. 그후 선배학부형들의  신속한 움직임으로   3월31일날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한집에서 500엔씩 내서  기념선물, 꽃다발 그리고 메세지 카드를  준비했다. 

당일날 학교 체육관에 가보니   이미 졸업한 선배들과  3학년 선배들(올해졸업) 다  와 있었다. 아래 내용은 그날 선배학부형들 한테서 들은 얘기이다. 

5년전  야마자키山嵜선생님이  우리학교에 부임되여왔는데 ,검도 40년 경력이 있는  검도연맹의 이사직도 겸하고 있는 검도달인이 였다고 한다. 중학교 교원직으로  바쁜 와중에 , 검도동아리 고문선생을 맡으면서  빡센  훈련일정으  짜고 매일 부원들을 강도있는  훈련시키고  주말도 쉬지않고   각종 대회시합 , 원정경기 , 원정 훈련 … 등으로   우리학교 검도 실력이 나날이 늘어났던것이다.  에도가와구 33개 공립중학교중  검도훈련장이 있는 학교는 8개 밖에 안되며 , 그중 우리학교가 에도가와구에선 검도로 유명하다는것이다.  대회에 참가하면 다른학교 학부형들이 우리학교를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물론 야마자키 선생님이 계셔서 부러워했을것이다.)

우리학교가 탔던 각종 대회상들 … 이 모든것이  야마자키 선생님의  공로라고  선배학부형들이 입을 모았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 , 애틋한 마음을 현장에서 느낄수 있었다. 이미 졸업한  선배부원들  , 올해  졸업한 부원들 다들  한걸음에 달려와서 선생님의 마지막  검도훈련에 참석하고  선생님한테  감사와 경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딸은 처음에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을때는  열심히 훈련에도 참가하고  주말훈련에도  아무소리 없이 참가했는데  강도높은 훈련에 애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경기 없는  토요일에도 7시부터 11시까지 훈련해야 했고 ,봄방학 ,여름방학 , 겨울방학 내에도  훈련이 계속 되였다. 마냥 놀고싶은 13살 애한테는  싫증이 나기 마련이였다.  검도복을 입고 그 무더운  여름을 견뎌 내야 했고 맨발로 하는 운동이라  겨울에는 차가운 체육관 바닥이 싫을만도 했다. 작년 12월부터 슬슬  슬럼프가 오나 싶었다…  나의 감시가 없으면  청가맡고 훈련에  빠지기가 일수였고  토요일 아침 7시에 가는것은 큰 고역이였다. 울면서 안가겠다고 한적도 몇번 있었다.  

선생님과 이별을 하면서   아이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것 같다. 비오는 그저께도  6시15분에 벌떡 일어나 훈련에 참가했고  토요일  아침에도   저절로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갔다.  검도는 팀으로  움직이는 운동이기도 하다, 개인의 승패가 모여 팀의 결과가 된다. 서로 응원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면서 함께 싸워야한다.  그 과정에서  배려와 책임감을 배워 나간다 .

문외한이  검도 경기장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것은 검도 예의이다. 예의를 배우고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며 선배와 후배 사이의 관계도 몸으로 익혀야 하는게 검도이다.  

딸은 이제 곧 2학년생이 되여 1학년 검도 후배들을 가르치게 될것이다.  지금껏 선배들의 꼿꼿한  등을 바라보며  성장했다면 이제부턴 후배들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  야마자키선생님의 빈자리는 크지만  남은 부원들은 더 열심히  더 많~은 땀을 흘리면서 한층  성장해 나아가길  나는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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