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리은실

북경에서 17년을 살았지만 그 동안 내게 북경은 그저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이 곳에 가족도 직장도 있지만 여기가 내 아늑한 보금자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느꼈을 것이다. 주의깊은 시선도, 애정어린 관심도 준 적이 없는 북경 역시 내게 려행객에게 보여주는 풍경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이곳 사람들과, 이곳의 분위기 모두에게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곳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주는 존재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섞이지 못한 채 영원히 관찰자로 살아도 좋다고 자기 위로 같은 체념을 익혀가며 살던 세월이 10년 이상이 되던 때부터였을가? 언제부턴지 딱히 기억나진 않지만 살갑지 않은 이 곳 특유의 무덤덤함과, 플러스 알파는 기대할 수 없지만 할 바는 하는 믿음직함(靠谱)에 점차 정이 들게 되었다. 정이 들자 호기심이 생겼다. 

지하철 환승 역에서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저 사람의 일상이, 직장 근처 주택구에서 자주 만나뵙는 로북경 할머니들의 지나온 인생이, 공원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장대걸레 같은 붓으로 멋진 글씨를 쓰는 건강해보이는 할아버지의 은퇴소감 등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그들도 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조금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게 되였다. 처음으로 북경의 자연 풍경이나 관광명소가 아닌, 사람들 사는 모습이 궁금해진 것이다.

작년부터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북경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한다. 그중에는 비교적 유명한, 력사가 꽤 오랜 후퉁도 있다. 그런 후퉁들은 대개 북경 2환 근처에 분포되여있다. 외국인들도 꽤 많이 보인다. 그 사람들은 사회력사학자라도 되는 듯 구지욕으로 충만된 눈으로 이 곳을 둘러보는 듯 했다.

예전에 사두었던 큰 카메라 들고 나도 뒤질세라 후퉁 ‘조사’에 나섰다. 골목의 폭은 5메터도 안되여보였다. 더 좁은 곳은 1메터 남짓한 곳도 있다. 그런 길로 별로 위엄도 없이 생긴 꽁지도 더러 빠진 수탉이 때 아닌 홰를 치며 유유히 지나간다. 외모에서는 보아낼 수 없는 위엄있는 거동이다. 

난데없는 오리도 한두 마리 지나간다. 아차! 발밑이 뭉클하길래 내려다보았더니 오리똥을 밟았다. 이게 시내 중심에서 있을 법한 일인가! 그 옆 잡초가 무더기로 나있는 풀밭에 신발바닥을 마구 문질러댔다. 으리으리한 5성급 호텔로비나, 저기 왕푸징거리 한가운데서 이런 봉변을 당했더라면 너무 짜증나고 창피하고 화날 일이였을 텐데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여서 그랬을가? 그렇게 더럽거나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민가로 사용하고 있으니 거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글이 적힌 표말이 세워져 있지만 빠끔히 열린 대문은 길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살짝 안을 엿보았더니 얼기설기 늘어놓은 빨래줄에 속옷들이 아무 방비 없이 당당하게 널려 나붓기고 있었다. 그 옆에는 먼지가 자오록히 낀, 페달도 돌아갈 것 같지 않은 자전가가 페기된 채 세워져 있었다.

앞에서 가던 외국인들도 기웃기웃 보고 있었다. 내 집도 아닌데 갑자기 괜한 수치심이 들었다. 외국인들도 여기 자주 오는데 속옷 같은 빨래는 좀더 은밀한 곳에 널 것이지… 려행객들도 오는데 울안도 좀 정갈하게 치울 것이지… 아 참, 가두판사처는 저렇게 막 돌아다니는 닭, 오리들을 잘 가둬놓지 않고 왜 방치해두지? 저 백인들이 중국인을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냥 볼 때는 자연스러운 생활적인 분위기로 읽히던 것들이 외국인의 시각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온통 못마땅함투성이였다.

세방을 얻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북경에서 그동안 많은 집들을 돌아다녀보았는데 정갈하게 정돈된 집을 보았던 적은 매우 적었던 것 같다. 침실 침대의 이불도 개여져있지 않고 칼도마며 국자, 냄비들이 사처에 널부러져 있는 주방도 설겆이 직전의 모습이였다.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했음에도 그랬다. 돌따서서 나오며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 나에게 중개업소의 남자가 히죽이 웃으며 말했다.

“집이 어지럽다고 그러는 거죠? 저런 집들도 바로바로 다 나가요.”

어떻게 그들은 구매자의 마음에 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안한단 말인가? “맘에 들면 좋고 안 들면 마시우.”

옷들이 산처럼 쌓여져있는 거실 쏘파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도대체 저 더티한 당당함은 어디서 온 것일가.

시골 고향에 있는 마당 딸린 우리 집은 고향 농촌 마을 집들이 대개 그렇듯이 거실, 침실의 용도나 나누어져있지 않다. 저녁이 되여 이불을 펴면 침실이고 낮에 이불을 거두면 마을 사람들이 잠간 앉아 수다 떨고 가는 거실이였다.

대학 때 방학이 되여 집에 가면 나는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어서 불만이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동네 누구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시간에 말만한 처자가 방 한가운데 자리 펴고 누워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엄마가 얼른 일어나 이불 개여놓으라고 닥달을 했다. 어서어서 일어나 이불도 개여얹고 구들도 말끔히 쓸고 정갈하게 세수하고 있으라는 것이였다.

엄마는 왜 언제 닥칠지 모를 손님들을 그렇게 신경쓰냐고 따져도 보았고 손님들 눈에 덜 띄게 구석쪽에서 더 자면 안되냐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터밭의 기음을 매는 일도, 울안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일도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댔다. 그냥 “환경이 깨끗하면 좋다”라는 론리보다 “남이 보면 뭐라고 하겠느냐”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앞선 리유였다. 그것에 불만이 많았지만 그렇게 커오다보니 어느덧 나는 그 론리를 내면화하게 되었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깨끗이 정돈하고 손님을 맞는 게 례의지 암…

문득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하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였을가. 살던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는 게 어쩌면 당당함의 다른 표현이지는 않을가. 꼭 정돈되고, 본래의 나보다 더 훌륭한 모습을 남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약자의 사고방식은 아닐가? 그 생각의 기저에 렬등감이나 자기 부정은 없었을가.

요즘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松弛感’이라는 말이 류행한다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여유감, 느긋함 정도로 옮겨적을 수 있겠다. 바람에 나붓기는 낡은 속옷에서 그 여유감을 본다. 그것은 “누군 뭐 속옷 안 입소. 볼 테면 보시오.” 하는 공격적인 반골이 아닐 것이다. 의식하지 않는 무심함이고 그 무심함에서 오는 느긋함이다.

깨끗하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북경 후퉁 투어를 나는 거의 1년째 하고 있다. 이런 느긋함에는 쉬이 사람을 질리지 않게 하는 여유로움이 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신경 센서들을 꺼놓을 수 있어서 좋고, 그걸 꺼둔 무심함이 주는 무덤덤한 위로가 있다.

위생관리에서 외부인 출입 관리까지 철저한 세련된 아빠트들을 감히 무시할 수 있는 그곳 북경시민의 배짱도 느껴져서 좋다. 여름이면 그 근처 할어버지들은 흰 목면 런닝그를 입고 쪽걸상을 들고 골목어구에 나앉아 파초부채를 부치면서 담소를 나눌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 사이에 끼여 국가대사를 토론할 수도 있음직하다. 그런 넉넉한 위로를 주고 받고 싶다. 그렇게 점차 이 도시에 스며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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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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