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제5화: 반갑다. 또 다시 다른 너와 만나)

반갑다. 또 다시 다른 너와 만나.   


  1. 지니 (제1화: 이제와서 둘러보니 찾을 사람이 없네)
  2. 지니 (제2화: 처음 감정의 족쇄에서 풀려난 자유로움을 느낀다)
  3. 지니 (제3화: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4. 지니 (제4화: 영을 분석하려는 몸)
  5. 지니 (제5화: 반갑다. 또 다시 다른 너와 만나)
  6. 지니 (제6화: 중독)
  7. 지니 (제7화: 사랑)
  8. 지니(제8화: 알레고리)
  9. 지니(제9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자신과 화해하는 일은 언제나 낯설다.

나는 오래도록 오직 나만의 공간을 꿈궈왔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토록 바랐던 시간과 공간이 갑작스럽게 나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사람처럼 넋을 놓고 서 있었다. 마치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문득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중국에서 공부하던 나는 언제나 서구 현대미술을 동경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 환경의 변화로 문화적 컨텍스트가 뚝 끊겨진 느낌이 들었다.  중국이라는 삶의 맥락에서는 잠시 벗어났지만,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도 아직 완전히 들어가지 못했던 시간.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처음으로 '거대서사'의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던 순간이었다. 내가 그 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학 했던 시절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 때 내가 그린 그림들은 인물이든 추상이든 모두 회색을 머금고 있었다. 

 높은 채도로 그림을 그려 왔던 나로서 회색은 너무도 낯선 언어였다

캔버스는 점점 작아졌고,

그림 속에 담긴 의미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마저 흐려졌다. 

종래로 없었던 일이다. 

나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끝물에서 '거대서사'가 해체되는 감각을 온 몸으로 겪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후로 나는 거세된 고양이처럼 의욕 상실증에 걸린 것 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사라진 것은 삶에 대한 의욕이 아니였다.

무너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나라고 믿었던 오래된 집이었다.

현존재로서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란, 

삶의 터전을 새로이 찾아 그 위에 나의 몸과 마음이 머무를 집을 짓고 가꾸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해체된 이후로 남겨진 과제는 절망이 아니라 창조이다. 

무에서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과거로부터 단서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정립은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나의 분신들이 머무른 장소를 다시 발견하여 이들을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이어가는 일이다.

 

문득, 우리나무 사이트에 올려진 나무인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예전엔 작가라는 꿈으로 가득 채워진 그 곳이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었다면, 현재 나의 꿈은 바로 여기에, 텅 빈 채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연변 외곽 촌마을 사이에 방치된 텅 빈 집들처럼 말이다. 

나는 새로 이사한 이 공간의 안팎을 어떻게 인테리어 하고 무엇으로 차곡차곡 채울지, 나의 기호에 부합한 섬세한 디자인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리적인 집과 정신적인 집이 통합되는 순간, 나는 나를 지키는 동시에 타인에게 열려있는 그러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 글을 마치 나를 향한 예언처럼 다시 읽는다.

과거를 무너뜨리는 일은 쉽다. 

그러한 과거를 다시 발견하는 일은 어렵다. 

인생은 나선형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비슷하고 반복되는 듯 하지만, 결코 같은 곳으로 돌아오지 않는 선.

그렇게 나는 매번 한 층 높아진 나선 위에서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의 집도 함께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집은 언젠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만나는 나와 함께 평생 지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갑다

 다시 다른 너와 만나.

  

<지니: 화해>, AI협동작업, 2026

연재중(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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