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코로나 관련 뉴스는 안봤다. 어차피 집콕이니. 뉴스를 봤자 마음이 무겁기나 하고. 집콕한지 한 달 넘어가도 온라인으로 장보고 딱히 불편 한 것 없었는데, 생활쓰레기봉투가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온라인으로 살 수도 없고 동네 편의점이나 홈플러스에서 구매 가능했으니 나는 신랑이 애랑 같이 놀고 있던 어느 토요일에 마스크를 둘러쓰고 혼자 홈플러스로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손소독제 보일 때마다 한 번씩 바르고 고객센터에서 바로 봉투를 구매하고는 집에 가려고 하다가 유난히 이쁘게 진열된 병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주류였다. 와인부터 샴페인에 양주까지 종류별로. 반짝반짝 눈부셨다. 그동안 유일하게 온라인으로 살수 없었던 건 술이었다. 성인인증을 하면 살수 있긴 한데 홈플러스는 한글 이름으로만 회원가입 가능하고 핸드폰은 여권 이름으로 되어있으니 성인인증할 길이 없었다. 외국인으로 사는 불편함이 별로 없었는데 이럴 때는 실감했다. 나는 모처럼 외출한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내가 들고 갈수 있는 만큼 종류별로 골라샀다. 심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술보다는 안주가 맛있어서 기분 좋게 술 마시는 편이었다. 이십대에는  별로 마실 일이 없었는데 육아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집술을 시작한 것 같다. 끝까지 달린 적이 없어서 주량을 모른다. 친한 언니는 의외로 잘 마시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했지만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맥주 한병이면 졸리니 말이다. 집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게 마시는 편인데 그 이유는 술에서 깨면 잠에서도 깼고 그게 몇 시가 됐든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은 대학교에 가면서 술을 배우는 듯하다. 우리 학교에는 조선족 모임이 있었는데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밥 사주고 술 사주는 분위기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그때 신입생이었던 나는 모임에서 선배에게 술 따르지 않으면 뭐라고 하는 그 분위기가 아주 싫었다. 마시고 싶으면 절로 부어 마실 일이지,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술 부으라는 건 그냥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정성스럽게 포장한거라고 할 수밖에. 어찌됐든 그후로 그런 모임에 별로 안 갔으니 술을 마실 일이 별로 없었다.  

울 아빠는 애주가였다. 끼니마다 맥주를 쌀 대신 마실 정도로 좋아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빠 주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는 그냥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주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울 아빠한테서 술 배웠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서른 넘고 언젠가 아빠가 날 보러 오셨을 때 우연하게 나의 손을 잡더니 손이 차다면서 놀라셨다.나는 별생각 없이 늘 손이 차다고 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진지하게 한마디 하셨다. “너는 술을 좀 마셔야 해.” 나는 아빠 그 한마디에 그때 빵 터졌다. 무슨 술 마시라는 제안을 딸에게 저렇게 진지하게 하실까. 하긴 감기기운이 좀 있어도 아빠는 약보다는 술을 마셨으니. 아빠는 술 마시면 온몸이 훈훈해 나면서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하셨다. 

원래 많이 추워하는 체질이었는데 출산을 하고 나서 추위를 더 탔던것 같다. 그래서 겨울은 늘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아빠의 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를 재우고는 와인 한 잔에 과일이나 치즈를 곁들여 마시기 시작했다. 남편이 일찍 오는 날에는 같이 맥주 마시고 혼자인 날은 와인 마시고 그러면서 나는 술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취하게는 안 먹는다. 맛있는 안주에 좋아하는 사람이랑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술 마실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서른 넘고 알게 되었다. 

미국 텍사스에 사는 대학 동기가 미국은 이제 시작이라며 코로나 사태에 집콕 오래 한 경험 같은 것이 있으면 나누어 줄수 있냐며 연락 왔다. 물론 냉동식품도 아이 비상약도 중요하지만, 나는 집콕을 즐겁게 오래 해야 하니 술을 종류별로 사놓으라고 했다.물론 안주도. 그 친구는 자기 남편이 안그래도 “이럴줄 알았으면 알콜을 샀어야 했는데” 라는 말에 “소독용 알콜을 많이 사뒀다”고 하니 “그 알콜 말고. “라는 얘기를 했다면서 웃었다. 

비상이 오래 가면 그 비상은 일상이 된다.  2020년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배워야 하는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올해에 끝나긴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존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막연한 기다림보다, 나는 그냥 지금 눈앞의 일상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집콕에도 봄은 여전히 찾아오고 이 또한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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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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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상이 오래가면 그 비상이 일상이 된다는 말 너무 공감됩니당 ㅋㅋㅋㅋㅋ 비록 미국은 이제 시작이나 이미 중국과 함께 두달 한거나 마찬가지인 우리상태로는 ㅋㅋㅋㅋㅋ일상이 된 것 같아서 저도 뉴스 요즘은 자주 안보고 1일 1맥주 합니당 ㅋㅋㅋ신나게^^ 살아잇음에 감사하고 주어진것에 당연함을 느끼지 말아야 하는데 우린 아마 그걸 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 당연함엔 의식을 잘 못하니깐 ^^ 올해 모두 무사햇으면 좋겟습니당~

    1. 싸우자는건 아니고, 저는 거의 1일 1맥주 하던데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2주간 맥주를 끊엇슴다. ㅋㅋㅋㅋ 면역력을 키우려고. 그래서 그런지 몸무게도 쭉쭉 빠지고 있슴다 ㅜㅜ 술 마셔야 신진대사도 잘 되고 하는데… 슬슬 다시 돌아가 볼까 생각중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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