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말의 위로

아닌척 하는 단단한 껍데기를 나는 만들었고 물컹한 속살은 여느때보다 더 심하게 상처를 입고 짓무르고 고름이 났다.


무심한말의 위로 

      예전에 엄마가 땅꽈리를주어가지고 시내로 팔러 갔을 때 있은 일이다. 엄마는 두자루되는 땅꽈리를 너무 헐값에 달라는 되거리장사군들에게 팔지 않고 거리에서 애태우다가 어느 직장의 일군이 비닐호스로 쏘아대는 물을 맞은 적 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저녁노을이 물들어갈 무렵 엄마는 그 물의 힘이 참 세더라고, 뽐프로 자아내는 물만큼 차겁더라고 옆집아주머니와 아무일도 아닌 듯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느라 엄마는 얼마간의 숨고르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픔이 따라붙을가 봐 롱담으로 피해갔을 것이다. 옆집아주머니도 무슨 말인가를 하며 함께 웃어주던 장면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옆집아주머니도 엄마의 가슴에 가닿기 힘들어서 그냥 엄마를 따라서 무심한척 웃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그들은 고통이나 동정으로 표현되는 표정을 짓지 않았음을 똑똑히 기억할 뿐이다.  

        그 일을 무심한척 지나치지 못한 것은 나였다. 이튿날부터 더는 땅꽈리를 주으러 밭에 나가지 않았다. 엄마한테도 팔러 가지 말라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 그 때 기실 엄마의 마음은 남 모르게 혼자 울 때보다 더 여지없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뭉개졌으리라.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싶어 안깐힘을 썼다. 

        나는 노랗게 익은 땅꽈리가 무서웠다. 불볕더위 속에서 저린 무릎을 펼 사이도 없이 부지런히 손을 놀려 한알두알 주어서 주머니에 꾹꾹 채워넣었고 머리에 이고 돌아와서는 밤 늦게까지 다시 한알씩 선별해야 했다. 아침이면 일찍 첫차를 타고 시장에 나가 팔아도 몇푼 안되거니와 그런 굴욕적인 일까지 당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그런 궁상이 짜증났다. 그런 가난과 비굴한 일들을 겪게 만든 그 노란 땅꽈리들이 무척이나 두려웠고 절망스러워 피하고 싶었다. 알알의 땅꽈리가 징그러운 뱀알같이 여겨졌고 어느 순간 뱀이 스르륵 기여나나와 내 손등과 팔을 타고 올라와서  심장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그 뒤로 엄마와 나는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만은 피해간다. 누구나 감감 잊은 듯이 모르는 척한다. 서로에게로 엄습해 갈 그 어쩔 수 없는 서러움을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괴롭거나 힘들거나 지쳐도 아닌 척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더 웃고 더 씩씩해야만 했던 엄마와 그것을 다 알기에 혼자서 엄마의 가슴을 아파하고 그런 자신을 아파하던 나였다. 그러면서도 아닌척 하는 단단한 껍데기를 나는 만들었고 물컹한 속살은 여느때보다 더 심하게 상처를 입고 짓무르고 고름이 났다. 그것 또한 모른 척하고 넘기려고 했다. 그냥 아물기를 바랐고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랐다. 

        너무 고통스러운 것들은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무심하게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진지해지면 슬픔이 그대로 날카롭게 드러나서 그 예리함에 베이고 선홍의 피가 배여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눈물의 골짜기가 너무 깊어서 더 내려가면 다시 오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는 너무 간절한 마음과 달리그 뜻을 전할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다. 눈물 코물 쥐여짜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줍짢은 도움이나마 내밀었다가 되려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코 타인의 립장에 설 수가 없다. 절절한 위로를건네봐야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될게 뻔하다. 마음 다해 그의 고통이 사그라들기를 바랄 뿐이다.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질러대거나 생뚱맞게 파격적인 일을 벌려도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마음껏 아파하고 좌절할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문안조차도시간대까지 고심하고 나서도 쉽사리 건네지 못하고 주춤거린다. 힘든 일상에 귀찮게  할가 봐 두렵다. 고통에 대해 모른척 하며 롱담을 건네거나 활짝 웃어줄 수도 없다. 그의 눈물에도 아무탈 없이 열리는 편한 나의 일상이 미안해지고 통증이 일 뿐이다

       모른척 하는 데는 가끔 정말 모르고 싶은 서늘한 리기심도 있을 테지만 많이는 값 싼 연민이 아닌 정직한 사랑이 내재한다. 말하지 않아서 입안에 갇힌 말이지만 가장 가슴 먹먹하게 울리는 말이다. 무심하게 대충 만져주는 따위가 아닌 타인의 마음을 걱정하는 따뜻한 행위이다. 아파하는 심장의 울림을 리해하고 고요히 들어주며 충만하는 슬픔으로 안타까이 바장이는 시간이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보듬어주는 사랑, 그것도 진정한 배려이며 깊은 애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날 문득 그리움이 와락 달려들어 숨 가쁘더라도, 그의 힘든 사정에 눈물이 앞서고 앙칼진 아픔이 살갗을  물어뜯더라도 슬며시 “안녕?”하는 문자만 보내기도 한다. 그 짧고 무심하고 건조해보이는 인사에 온갖 마음을 담아낸다. 그 말 너머의 걱정과 근심을 보여 되려 그가 괴로울가봐. 그 또한 내 마음을 알아 밝은 표정을 보여주면 나 역시 환히 웃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상하기 쉬운 맘을 맞바라보기 어려워 드러내지 않고 서로서로 보듬어주며 위로하는가 본다. 그것이 다행이다. 아니면 더 슬퍼야 하니까.  눈빛 하나 목소리 하나 손짓 하나 허투루 스치지 않고 섬세하게 더듬어보고 만져보면서 무심한척 할 뿐이다.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에게도 모른 척할 때가 많다. 괴롭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더라도 더 웃고 떠드는 것은 자신에게 또 한번 힘을 고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끔찍한 과거를  모른척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자신에게 눈 한번 감아주고 조금 더 당당하게 새로 시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닥쳐올 슬픈 미래를 모르고 싶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면서 희망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그냥 목숨을 이어가며 살기에도 너무 고역이다. 그럼에도 치유 불가능한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사랑이 떠날 수도 있고 문득 어떤 불행이 닥칠 수도 있다. 그 모든 두려움을 모르고 싶어서 우리는 하루 세끼 밥을 꿍꿍 먹거나 취하도록 술을 마시거나 지치도록 일을 하거나 요란하게 웃고 떠들거나 온몸과 마음을 비벼가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미 모른척하고 있는 것이다. 

        무심한 척, 그것은 작은 울음에도 몰두하여 깊숙이 쓰다듬고 싶은 마음으로 속으로 울면서 그자리에 은은히 서있는 의연한 모습이다. 터져나오려는 말들을 삼켜 뼈에 새겨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는 눈길다. 그것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선의를 알고 있는 사람의 고운 감정이다. 가장 부드러운말이며 스쳐가지 않고 상처에 머물러 같이 곪고 진물을 흘리는가슴이다. 

       또 한번 봄이 오는구나.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무심한 척 태연히 지나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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