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옆 똥쑤깐

하다하다 별 이야기 다 함 ㅋㅋ


꿈속의 금의환향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그리운 고향 연변 왕청의 광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성공하여 당당히 고향을 찾은 사람처럼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손에는 설계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광장 한편에 남아 있던 그 오래된 ‘똥쑤깐’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번듯한 최신식 화장실을 지어 고향 분들께 선물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이었다. 고향에서는 공공화장실(公共厕所)을 ‘벤소’, ‘벤소깐’ 혹은 ‘똥쑤깐’이라고도 불렀다. 사람이 금의환향을 꿈꾸면 보통 다리를 놓거나 학교를 짓는다는데, 나는 왜 하필 화장실이었을까.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절박했던 순간들이 대부분 그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토록 척박했던 공간에 대한 정이,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깊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고달픈 줄서기

80·90년대 고향 왕청 광장 옆의 공공화장실(公共厕所)은 인간이 가진 인내심의 한계를 과학적으로 실험하던 장소였다. 집집마다 화장실이라는 사치품이 없던 시절, 동이 트기 시작하면 광장 옆 공공화장실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형성됐다. 줄이라기보다는 각자의 배를 부여잡은 채 묵묵히 서 있는 생존자 대열에 가까웠다. 배 속은 이미 경고 방송을 여러 차례 울리고 있는데 앞사람은 도무지 나올 기미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식은땀을 흘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가설이 난무했다. 혹시 안에서 졸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신문을 펼쳐놓고 1면부터 4면까지 정독하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복습까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 사람, 그냥 거기서 살림 차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신문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화장실에서는 시간을 늘이는 도구라는 사실을. 세상의 모든 기사는 그곳에서 유독 길어졌고, 한 사람의 배는 그 기사만큼이나 혹독하게 시험대에 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아침, 한 장의 신문과 함께 인내라는 교과서를 배웠다.

위태로운 작업과 '똥푸개 아바이'

그렇게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면, 안도감은 문을 여는 순간 사라졌다. 안쪽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두운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위에 낡은 널판자 두 개가 위태롭게 걸쳐 있었다.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부터 이것은 용변이 아니라 균형을 시험하는 일이 되었다. 다리를 한껏 벌리고 앉았다가 잘못 디디면 인생이 통째로 아래로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따라왔다. 앞사람들은 신문을 들고 들어가 여유롭게 다 읽고 복습까지 하고 나오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럴 틈이 없었다. 그 자리에 앉자마자 머릿속엔 ‘제일 급한 것만 해결하고 무사히 나오자’는 생각뿐이었다. 신문은 읽을 물건이 아니라 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적에 가까웠다. 위생 상태는 참혹했다. 여름이면 파리가 검은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겨울에는 분뇨가 얼어붙어 누런 빙산을 이루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구세주처럼 ‘똥푸개 아바이’를 기다렸다. 아바이가 키높이 만큼 긴 쇠정으로 그 빙산을 깨 부스고 수레에 담아가야만, 비로소 마을 전체의 숨통이 트였다.

TV에서 본 유럽의 화장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유럽의 옛 화장실 장면이 떠오른다. 중세 유럽의 성곽 화장실은 건물 밖으로 삐쭉 튀어나온 구조로 그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였다. 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망설임 없이 자연으로 직행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따라붙는다. 당시 성벽 아래를 지나던 사람들은 위에서 예고 없이 떨어지는 오물 날벼락을 피하려고 우산을 양산처럼 쓰기 시작했고, 길바닥에 널린 그것들을 밟지 않기 위해 굽 높은 신발(하이힐)을 신었다는 설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그 시절 사람들이 무엇과 싸우며 살았는지는 분명하다. 그 장면에 비하면 우리네 벤소는 냄새는 지독했어도 최소한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지는 않았으니 나름의 질서와 인내가 있었던 셈이다.

정화조와 문명의 진화

세월이 흘러 등장한 빌라나 연립주택은 건물 지하에 콘크리트 정화조를 묻고 미생물로 오물을 분해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각 가정의 변기에서 배출된 오물이 정화조로 직접 흘러 들어가게 설계되었는데, 이 정화조에 오물이 가득 차오를 때마다 반드시 전문 수거 차량이 와서 긴 파이프를 연결해 내부를 빨아내야만 계속해서 사용이 가능했다. 

문명도 결국 사람 손이 따라붙어야 굴러간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오늘날의 현대식 아파트는 버튼 하나면 모든 것이 조용히 사라진다. 비데는 따뜻하고 클래식 음악까지 흐르는 화장실은 이제 참는 공간이 아니라 집 안에서 가장 편안한 방이 되어버렸다.

중국 화장실의 두 얼굴

30년 만에 찾은 고향 왕청 광장과 그 옆 공공화장실(公共厕所)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 중국은 이처럼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다.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대도시의 공공화장실(公共厕所)은 얼굴 인식을 통해 휴지를 적정량만 내어주고, 센서로 위생 상태를 관리하는 스마트 공간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조금만 벗어나 농촌으로 들어가면 풍경은 급격히 달라진다. 여전히 문이 없거나 칸막이조차 없는 재래식 공공화장실(公共厕所)이 남아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처음 보는 옆 사람과, 혹은 바로 앞에 마주 앉은 사람과 민망하게 눈을 맞추며 담배 한 대를 권하거나 “어디 사냐”며 자연스럽게 말을 트는 풍경. 14억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품은 중국에게 화장실의 현대화란 단순히 시설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명적 거리감을 조금씩 조정해 나가는 고단하고도 긴 여정인 셈이다.

한·일 화장실의 예술적 경지

한국과 일본의 화장실은 이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일본의 화장실은 지극한 대접 문화라 불리는 ‘오모테나시’가 가장 조용하게 구현된 공간이라고들 한다. 자동으로 열리는 변기 뚜껑은 물론이고, 민망한 소리를 대신 흘려보내는 물소리 장치, 비데 노즐의 각도와 수압까지 사용자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 화장실에서조차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르면 호텔 로비를 연상케 하는 대리석 인테리어와 빈자리를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디지털 시스템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제 한국의 화장실은 단순한 위생 시설을 넘어 하나의 쉼터이자 문화 공간으로 승화되었다.

지구촌의 서글픈 현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이 청결함의 이면에는 여전히 서글픈 현실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40%, 3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안전한 화장실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 배변에 의존하며 최소한의 존엄을 위협받고 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위생 시설의 부재로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이질이나 콜레라 같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화장실은 인간이 가장 낮은 자세로 자신이 존중받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공간이기에, 이 문제는 더욱 절실하다.

깨끗해진 유년의 기억

나는 오늘도 꿈속에서 그 광장 옆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쾌적한 공공화장실(公共厕所)을 다시 짓는다. 이미 집집마다 현대식 화장실이 있어 더는 급할 것도 없는데, 굳이 또 하나를 짓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 아니다. 고향 어르신들이 나들이하다 들러 “야, 예전 그 똥쑤깐 자리 아니야?”하고 허허 웃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서다. 

광장 옆 똥쑤깐은 냄새로 먼저 떠오르는 장소였지만, 돌이켜보면 그곳은 우리가 같이 참고, 같이 기다리며 살아냈던 공간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그 '똥쑤깐'을 떠올리며 알게 된다.

이젠 말 할 수 있다!

이 글을 공유하기: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