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나는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아트 정보 사이트 대표를 소개받게 되었다. 초면은 지인과 함께 대표의 사무실이에서 만났다. 우연의 일치인지 사무실 테이블에 마침 연변에서 발송된 <예술세계>잡지가 있었다. 그것도 나의 글이 실렸던 권호였던 것이다. 나는 너무 기뻐서 잡지를 가리키며 여기에 나의 글이 있다고 알려드렸다.

대표는 우리에게 맛있는 양고기를 사주었다.  그리고 나한테 중국과 한국의 연결을 맺는 전시기획을 제안했다. 전시는 나의 기획대로 하고 나를 데려온 지인보고 나를 도와서 함께 하라고 했다. 나는 친구들과 전시를 해보았지만 공식적인 전시기획을 해본 경험은 없었다. 이 제안을 받자 나는 너무 고마웠지만 조금은 막막했다.

모든 기회는 그 기회에 걸맞는 사람한테 주어진다.

나는 한국에 온지 몇 달도 안되어 이러한 전시를 혼자 맡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지인은 대표의 취지(지인이 나를 도와서 나의 뜻 때로 기획하는 전시)와 달리 나한테 기획자를 추천하여 함께 전시를 만들어 보아라는 제안을 하였다. 이 상황은 대표님이 나에게 제안 했었던 전시 방향과는 많이 달랐다. 따라서 나는 지인의 제안을 수용한 대신 이 전시에서 보조 역할로만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그 후 지인과 기획자가 소통을 하였고 나한테는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전시 포스터가 만들어진 당일, 나는 포스터에 나의 이름이  '전시 진행'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나의 동의도 없이 나를 '전시 진행'으로 임명한 상황에 화가 났다. 왜냐하면 그 말은 즉슨 이 전시에 나의 책임도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 전반을 나와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스터가 나온 뒤에야 내가 이 전시의 '진행'이 된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전시진행'으로 표기된 포스터가 나왔을 그 당시 이러한 무례한 행위에 대한 명확한 태도와 문제점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매우 불쾌했지만 이미 포스터에 이름은 적혀 있게 되었고, 전시는 곧 열리며, 이 상황에 내가 빠지면 포스터는 또 다시 해야 되고 전시 일정이 다시 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전시의 성사를 위해 화를 꾹 참고 그 후의 일들을 진행하였다. 그렇게 내가 참은 화들은 전부 나를 향해 쏘아 왔고, 나의 몸과 마음은 그 후 한동안 굉장한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유일하게 내가 언급 할 수 없는 전시가 되었다.

나를 믿고 기회를 주셨던 대표님께 너무 감사하고 이 기회를 나의 미숙함으로 온전히 받아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죄송스러움이 따를 뿐이다.  

2017년 신년을 맞이하여 이 전시는 <꽁시,꽁시:朋友的力量>이라는 이름으로 개최하었다. 그리고 이듬 해 2018년 <꽁시> 전시는 <이층異層>이라는 이름으로 열리게 된다.  

2017년<꽁시>전에서 나의 미흡한 대처로 낳은 그 수치스러운 상황을 발판으로 삼아 2018년의 <이층>전시에서 나는 포스터에는 찾을 수 없는 특별 작가로 전시 오프닝 때 퍼포먼스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방식이 나에게 더욱 어울린것 같았다.

———————-

퍼포먼스의 이름은 <간단하고 거칠고 폭력적이다>(简单粗暴)이다.

나는 그 당시에 모든 것에 날을 세우고 있었다.

전시가 시작되자 전시장 윗층 아랫층에서 동시에 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작업은 녹화 음향으로 재생 되었기 때문에 사진이 없다.)

1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조선족이다 

나는 중국인이다 

나는 공산당원이다 

이런 나는 한국 땅에서 죄인과 같다 

나는 이런 나로서 한국 땅에서 비난을 받아도 합리적이다 

그래서 나는 억울하고 화나며 죄송스럽고 부끄럽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败!

2

 <똥탈-벗기> 

나에겐 조선족, 공산당, 중국인이란 탈이 있다. 

한국에 오니 탈에 똥이 묻은 걸 발견했다. 

똥이 언제 어떻게 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냄새는 나는데 벗겨지지 않아서 닦고 또 닦았다.  

닦는게 반복되고 지겨워져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냥 놔두니 나는 그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세개의 탈이 똥으로 만들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주변에서 항상 내 탈에 똥을 발라 놓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나의 정체가 바로 똥 그 자체였던 것일까? 

스스로 회의도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나는 이러한 탈을 쓴 나로서 스스로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냄새 나기 싫다. 

탈을 벗으려고 맘 먹으니… 

탈이 안 보인다. 

똥탈 벗기 败!

3

 <‘청년경찰’ 대단하다> 

"영화 <청년경찰> 그리고 그 여파에 대한 구조주의적 분석” 몇 구절 읽기 

(내가 <청년경찰>영화에 대해 쓴 비평문의 일부를 직접 낭독하였다. 이 비평문은 아래에 따로 첨부하겠다.)

이 영화 덕분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영화는 조선족 단체 시위를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는 조선족에 관한 사회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이 영화는 사회가 회피하고 있는 대단한 이슈를 불러일으킨 참으로 대단한 영화이다. 

<청년경찰> 대단하다 胜!

4 

<倒吊人的圣经>=<故而为> 

2015/05/20 02:20

我站在悬崖边上,即将坠落,时间定格。倒吊人时常出现,拼命暗示,愿主救赎。 

2015/07/15 04:34

我站在悬崖边上,试图坠不落,行走在边缘,哈,我的归属地,我终于存在于存在的证实里。家由点成线,等待着面。 

2015/09/29 12:15

我们在高处,适应了速度,不想下船,也无法落地。 

2016/03/15 22:35

声音停留在时间的空气里,拉长,销缩。倒吊人的空间因声音的缩减仿佛转到了场外。寂静的音频如此刺耳。知觉醒了。 

2016/03/23 22:12 

“人们不能用禁闭自己的邻人来确认自己神志健全”—陀思妥耶夫斯基  

2016/11/04 00:42

<示威>篇-他者:又怎么了,有完没完? 主体:我们站在悬崖边上试图坠不落。 

2017/01/23 20:01

<致Yuri An>曾经撕心裂肺的呐喊,已化作千疮百孔的衫。迎面而来的你,将我高高举起。我愿借你的力,发出最后的悲鸣。 

2017/02/07 03:08

<倒吊人的自白>篇-光令我失明,而我获得真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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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 있었을 때 나는 차별 받는 한족의 편을 들어주었다.

북경에 있었을 때 나는 소수민족 끼리만 단결하는 편협한 민족인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한국에 오게 되면서 나는 나의 정체성들에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들과 맞서려고 애를 썼다.

이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简单粗暴한 방식으로 나의 맞섬의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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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년경찰>에서 대상화된 ‘조선족’ 이미지에 대한 연구 분석 (미발표)

한국에서 ‘조선족’이라는 개념은 영화 테마로서 활용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조선족’ 테마로 제작된 영화들이 줄지어 나타나며 2017년에 상영된 <청년경찰>, <범죄도시> 두 편의 영화는 청년들 사이에서 흥행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반면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 고착된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를 손 쉽게 소비하여 오히려 사회 속에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글은 대림동 시민 단체 시위까지 불러 일으킨 영화 <청년경찰>에 대한 사례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재한동포총연합회 등 30여개의 중국동포(조선족) 단체는 ‘한국영화 바로 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한국영화가 중국동포를 악의적으로 묘사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시킨다고 항의했다. 항의의 기폭제가 된 영화 청년경찰은 서울 대림동이 주요 배경으로서 실제로 중국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주인공 두 청년은 인신매매 조직을 뒤쫓다 대림동으로 들어서고, 그 곳에서 범죄를 일삼는 범죄자들과 만나는데 범죄자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묘사되었다.” 이것은 영화 <청년경찰>에 관한 위키백과의 설명에 기재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영화 감독은 “해당 영화의 내용은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설정은 아니며……혹시라도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사과를 드립니다.”라는 뜻을 표 한 바가 있었으며 또한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에도 영화 속 인물과 사건 등은 허구로 창작된 것이라는 설명이 첨부되었다고 해명했다. 동시에 영화 감독은 이 영화는 ‘톤이 밝고 캐릭터가 귀엽다’, ’심어 놓은 웃음 코드는 있지만 나머지는 배우들의 호흡도 중요했다’라는 말로 문제의 민감성을 기피하였다. 하지만 TF인터뷰사에 의하면 감독은 이 영화가 ‘코미디는 아니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영화는 허구로 창작되었지만 다수 한국인의 리뷰에 의해서 볼 때 관객들은 이럴 만한 일들이 실제로도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롤랑 바르트가 신화에 대한 글을 떠올릴 수가 있다. “독자가 신화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를 기호학적 체계로 보지 않고 귀납적 체계로 보기 때문이다. 기표가 기의와 일치할 때, 독자는 이것을 인과의 과정으로 보며, 이 때 기표와 기의는 자연스런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 혼란은 다르게 말하면, 기호학적 체계는 모두 가치의 체계이지만, 그러나 지금 신화를 읽는 사람은 그 신화에 나타난 의미화가 사실의 체계에서 연유했다고 본다, 즉 신화는 사실적 체계로 읽혀 지지만 실은 기호학적 체계이다.”(신화). 영화<청년경찰>에서 들어 난 “대림동 12번 출구”, ”조선족의 범죄적 이미지” 기호들은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실제 대상으로 연상하게 만들 수 있다. 영화 속 ‘대림동12번출구’가 실제 존재한 장소와 부합하다는 것과 영화 속에서 ‘조선족 범죄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켜주는 촬영 기법들로 의해 관람객들에게 이를 기호학적 체계로 보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인식시키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 관람객만이 아니라 대림동 조선족 주민들도 이 영화가 구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드리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수 많은 한국 관람객의 호평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소재가 다루어 질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볼 수도 없다. 대림동 상가 주민 단체의 시위는 오랜 시간에 걸친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갈등으로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부터 조선족 인구들이 대폭으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들은 이주민 신분으로 주도 막노동과 같은 일들을 해왔었다. 그 당시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 사람들은 하위층에 속했다. 하위 계급, 당시 중국에서 보편적이지 못했던 교육제도,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유방식의 차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간과하고 동포라는 명칭 하나로 덮으려고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엄연히 동 떨어진 사유 방식(이데올로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언어가 통한다는 사실, 그리고 혈통의 근원이 같다는 믿음 만으로 같은 사회에서 공존하고자 하니 그 결과는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식적 차원에서부터 시작된 갈등들은 한국 사회의 범죄 행위에서 조선족이라는 명사가 붙기만 하면 더욱 더 강한 증오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아직까지도 현저하며 유학생과 같은 조선족 신분의 차세대들은 한국에 오자 마자 난처한 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 시기에 <청년경찰>과 같은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은 예전에 형성된 이야기 구성을 더욱 더 강조함으로써 대중들의 고착된 인식에 결부하여 이 갈등들이 해소될 여지조차도 없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역사 소재 혹은 무거운 소재를 다룰 때 그 무거움을 완화하려고 웃음 거리를 줄 수 있는 밝은 코드로 서술 하는 방식은 여러 영화에서도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청년경찰>에서는 난자적출 등 잔인한 과정들을 수시로, 거침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이러한 장면들은 영화의 미적 기준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가끔은 관객들에게 코미디가 아닌 스릴러로 인식된다. 필터 없는 잔혹한 장면들은 극한 시각적 충격을 가져다 주며 그 충격에 의해 공포감은 증폭했으나 진정한 문제 인식은 단절되고 만다. 예를 들면, 이 영화를 본 후 ‘조선족’이라고 하면 어떠한 현상이나 사회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이라는 이미지가 공포 그 차체로 대체되어 버리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장면들을 더이상 심각하게 생각 하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볍게 소비 해버리고 만다. 따라서 묘사된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는 결여되고 만다.  

구조주의적 이론으로 볼 때 <청년경찰>의 표현방식 또한 일종의 내재적인 구조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재된 구조들은 여러 다양한 사실에서 소재를 얻고 있으며 그 소재들은 제작자의 제작수요(매출요소 또는 화제거리)에 따라서 재조합 하게 된다. 영화는 그 구조들을 바탕으로 관객들로부터 의미를 파생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들은 사람들이 처한 사회적 관습과 기억에서 소환되는 것으로 대중 인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르셜 푸코의 이론에 따르면 매체도 하나의 판옵티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화면에서 다른 사람들의 연극을 보는 반면 우리 자신 또한 어떠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기획자의 의도에 의해 연극 배우처럼 인식의 유도를 받을 수 가 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의 특징이고 <청년경찰>이라는 영화의 의도 역시 이러한 대중의 이데올로기를 유도하는 데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매출율에서도 반영되고 대림동 시위에서도 반영된다.

이 영화의 논쟁적 여파(대림동 조선족 시위)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대림동 조선족 단체 시위가 상가들의 이익 훼손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상가들의 경제적 이익이 영향 받는 것이 시위의 도화선이라면, 실제로 이 시위는 ‘조선족 명예 훼손’이라는 명의로 자신의 경제적 난관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지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숙고 또는 반성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시위를 하게 된 주요 원인은 대림동 상가 경제의 추락에 의한 반항이라는 것이다. ‘조선족 이미지’의 회복은 그 어떠한 이익의 명목으로도 해결될 수가 없다. 이 해결은 오로지 조선족 개개인들이 ‘조선족 명예 훼손'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할 때, 또는 조선족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생성과 그 원인에 대해 자기 비판적인 성찰을 동반할 때에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2018글/2021 수정)

* 이 비평글은 조선족을 범죄자로 묘사한 모든 영화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을 범죄자로 묘사하여 진정한 문제인식을 은폐하고 이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려고만 하는 영화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조선족 범죄자 테제는 충분히 다룰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을 바탕하였다면 더더욱 많이 다루어져야 한다. 영화 <황해>는 조선족 범죄자를 다루지만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을 나누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주며, 많은 조선족 사람들도 인정 할 수밖에 없는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 <범죄도시>는 대림동을 대상화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보다 다양한 개성을 묘사하여, 영화 전반의 줄거리에서 조선족vs한국인이라는 간단한 대립법을 해소하였다. 이것이 <범죄도시>와<청년경찰> 두 영화가 지극히 유사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차별화 되는 지점이다. <청년경찰> 속의 선 악 대립은 조선족과 한국인의 그 선명한 대립을 한 치 회의의 여지도 남겨주지 않은 채 성공적으로 고착시킨 점에서 소비적 영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청년경찰>이 나의 글을 자극할 만큼 그 제작이 조야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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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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