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피드의 댓글을 보면 프로필 사진을 보지 않아도 나이대를 거의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특히나 유명 정치인 계정의 게시글에 있는 댓글들. 따봉, 최고와 같은 이모티콘만 있는 댓글은 대략 50대. 뭐랄까 대댓글을 달기 뭐한, 근거가 생략된 어떤 주장 혹은 선언문으로 끝나는 댓글은 60대 이상. 그 이외의 어느정도 티키타카가 가능한 댓글은 40대 이하로 추려진다.
이것이 SNS의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기보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격이 공고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 노화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분명 나도 20대 초중반만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한 시간이 있었고 한번의 여행이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줄 것이라는 낭만주의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젠 ‘나라는 무엇’에 대한 윤곽이 생겼고, 이런 윤곽이 한편으로 안도감을 한편으론 갑갑함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SNS 댓글을 볼 때마다 두려웠다. 분명 저들도 그들이 젊었을 때 본인이 되고 싶은 이상적인 60대가 있었을 텐데.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댓글을 보면 절로 눈쌀이 찌푸려졌다.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자신을 딱딱하게 만드는것인가.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라는 말’은 결국 나 자신밖에 되지 못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일과 사랑을 포기하면 안 된다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일과 사랑을 할 때야말로 나는 가장 자유로움을 느꼈다. 굳이 따지자면 사랑을 할 때 가장 자유로웠다.
내가 나답지 않다고 여긴 모습을 발견하곤 귀엽다, 사랑스럽다 말해주는 사람. 그런 애정마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지만, 연인의 따뜻함 속에서 어느덧 내가 아니라 생각했던 모습은 내가 되는 것이다. 비록 연인과 헤어져도 그 모습은 그대로 남아 내가 되는것이다.
늙어가면 다시는 열정적인 사랑은 없고 점잖아 져야 한다는 말 자체가 감옥일지 모른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야말로 가장 자유로울지 모른다. 늙어감에도 사랑을 포기하면 안 되는지도 모른다.

“늙어가면 다시는 열정적인 사랑은 없고 점잖아 져야 한다는 말 자체가 감옥일지 모른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야말로 가장 자유로울지 모른다. 늙어감에도 사랑을 포기하면 안 되는지도 모른다. “ 참 그렇습니다.
점잖은 사랑을 유지해나가는 일이야 말로 부단히 자신을 넘어서는 일이 아닐까요? 1초전에 나도 내가 아닐 수가 있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