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문장에 이어서…
입원실에서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을 때 이미 6 ~ 7명의 의사들이 분주히 설비들을 다루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코에 산소마스크를 끼워주고 의사의 목소리가 귀가에 들려왔다.
“이제 곧 마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설비를 다루는 다른 의사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산소 공급 시작 .. “
“전신 마취 시작 .. “
불과 몇초도 안되는 사이에 세상은 재빨리 무한한 고요함으로 빨려들어갔다.
…
다시 의식이 들었을 때는 이미 수술을 마친후였다. 신기하게도 수술하는 기간의 기억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마치 깊은 잠을 자다 깨어난 것 같기도 했고, 또 시간이 뭉텅 짤려버린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도 없고, 감각도 없고, 생각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존재마저 느끼지 못하는 …
매미의 겨울
옛날에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매미에게 겨울을 이야기 하지 말라. 매미는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날의 흰 눈, 맞은켠이 투명히 비쳐 보이는 얼음,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가지만 남은 수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매미가 이해하는 세상은 오직 여름 가장 무더운 두달에 불과하며, 봄과 가을과 겨울은 매이에게 있어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마치 내가 전신마취되어 한시간 반 아무런 감각이 없는 동안 이 세상에 일어난 일들처럼 …
“무” 의 세계
무의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관찰자”로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관찰자”로서 내가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그 변두리를 벗어난 세상을 나는 “무”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무” 였다.
어릴적 숙제 안한 나를 회초리로 때리던 순간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을가, 그것은 “무” 였다.
집에서 물고기채를 하면 대가리와 꼬리만 좋아하는 아버지는 물고기 몸뚱이살의 맛있음을 알가, 그것은 “무” 였다.
…
어떤 “무”는 한평생 그냥 “무”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무”는 나의 체험이 다양해지면서 “유”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집에서 어쩌다 게를 삶아놓고, 큰 애에게 가장 살찐 부위를 집어주면서, 애가 부담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우정 “그게 뭐 맛있겠냐”하는 표정을 지을 때, 문뜩 어릴적 아버지가 물고기의 대가리와 꼬리만 좋아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늦잠자다 지각한 애를 울며불며 꾸지람해서 학교에 보낸 사이에, 애의 방에 어린이용 침대를 바꾸어주려고 안해와 함께 낑낑거리며 땀을 빼면서 남집에서 이사하면서 버리는 침대를 가져와 안장할 때, 문뜩 어릴적 회초리로 다리를 때리면서 눈빛속에는 보일가말가 눈물이 맺혀있는 어머니의 눈이 생각났다.
“무”는 어디 아득히 먼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바로 나의 주변에, 바로 나의 일상생활속에, 지금 살고 있는 매 순간순간 속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냥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무”는 관찰자의 인식의 한계이다.
삶의 모든것에 대해 돈으로 가격을 매기는 관찰자에게 있어서 사랑은 “무”일것이고, 자기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관찰자에게 있어서 남은 모두 “무”일것이다.
인생체험의 의미
수술은 무사히 마쳤고, 몸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어 갔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와 접촉도 할 수 없고, 병실에서도 서로 이야기 할수 없으며, 그냥 누워서 천정만 바라보며 회복해야 하는 며칠간, 나는 삶의 체험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애를 키워보지 않았더라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내가 이렇게 아파보지 않고, 절망에 빠져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파하는 친척친구들의 마음을 알지 못했으리라, 내가 이렇게 자신의 생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오늘처럼 이렇게 새벽에 깨어나 생과 사를 생각하고 문장을 쓰고 있지도 않았으리라…
삶 속에서 얻게 되는 모든 체험은 소중한 것이었다. 그 체험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동등하게 나의 영혼은 그런 체험속에서 풍부하게 익어가며 나를 더욱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가는게 분명했다.
모든 사물을 사랑하고, 모든 순간속에서 충분히 희노애락을 체험하며, 영혼의 깊이와 풍부함을 가꾸어가는것, 이것이 바로 이 생에서 우리 삶의 체험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무”는 관찰자의 인식의 한계이다. 👍👍👍
“유”의 상태에서 언어로 정의할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네요.
우리는 자신들이 탐구하지 못한 영역을 모두 “미지의 세계”라는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인생의 체험이 많아지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면서, 그것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라는 단조로운 딱지가 아닌, 채색령롱하고 파란만장한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체험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것 같습니다.
오늘도, 래일도, 지구는 수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담은체 여태껏 가본 적이 없는 은하계의 깊은 곳으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