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창은 불투명한 커튼에 가릴듯 말듯

그 넘어에 성급히 굴러가는 네모 수레바퀴

유리로 인해 단절된 소음 그리고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 노래 

그렇게 숨을 이어간다

"세계는 오직 미적으로만 정당화된다" 

세상을 통찰하는 자들 가운데 

들려온 가장 슬픈 이야기 

그렇다면 예술마저 외면하고 싶은 나에겐 

더 이상 정당화될 세상이 없단 말인가

다시 울려 퍼진 노래 

아직도 도파민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에

'예술의 거기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다.

참으로 가늘다. 

그 가늚이 영원하길.

아니 

그 가늚의 영원함을 잊지않길.


     중국에 돌아오니까 어떤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반은 우려의 눈빛 반은 기대의 눈빛. 그 눈빛들 속에서 나는 근면성실한자들의 겸손함과 객관적인 인정에 대한 목마름을 보았다. 

    중국은 여러 나라들에게 혐오스러운 나라로 낙인 찍혔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중국인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많은 부정들 속에서, 심지어 붕괴 속에서 (나를 포함한)이들은 나름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외부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세뇌"와 "노예 근성"의 결과로 진단한다.

      그렇지, 노신의 "아큐"도 한명의 우리 자신이였으니. 그런데 희한한게 막강한 서구 자본주의 논리가 초래한 분열증적 사회에서 여전히 태연한 템포를 유지하는 국가 또한 중국이다. 

      칼 융의 말처럼 동방의 지혜는 토지에서 생성되었다. 하지만 토지에 대한 절대적인 자부심은 종종 개개인의 본능적인 오만함도 함께 낳는다. 사람들은 이내 착각한다. 토지의 지혜를 이미 소유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들이 소유하였다고 믿는 것들은 본능의 차원에서 관습을 통해 이어온 '지혜의 그림자'일 경우가 대다수다.

     서양에서도 종종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지만 그들에겐 '자기비판'의 기제가 개개인의 인식 내면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비판이란 오랜 기간동안 외부로부터 교육된 것, 수용된 것이기에 개개인의 내면으로부터 그것의 자발적인 실행을 시도하는 것은 아직도 익숙치 않은 일이다. (우리는 매번 상하 오천년이라는 역사를 들먹거리면서 그것을 자신의 내적 지혜로 동일시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는 역사 외의 우리 자신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자가 나올 때 우리는 환호하고, 강자가 몰락할때도 우리는 환호한다. 우리는 '아큐'정신 덕분에 그 어느 곳에서도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교활한 '지혜'를 터득하였다. 그덕에 우리의 행복 지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놀아나지 않을 수도 있고, '자체 조율'도 가능하게 되었다. 만일 이것 마저 우리 선조가 남겨준 '대지혜'의 일부였다면…

    인정한다.

    "대지혜"는 서양의 부정적인 바램과 비관적인 추측과는 달리 되려 긍정적인 결과도 낳았다. 그 첫번째 결과는 자본의 유입은 확실이 중국인의 삶의 질과 생활 양식을 바꿔 놓았다. 그렇게 '자본과 부'가 중국인의 내적 자부심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비판'이 단련될 기회를 또 한번 놓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긍정적이라고 한 것은, 그 사이에 중국인의 '자기비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부의 축적과 함께, 서구의 강력한 비난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디지털 매체의 보급과 함께, 공허한 오만함을 유지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발아하고 공론화되고 있었다. 

    두번째 긍정적인 결과는 바로 "언제나 넘나들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인터넷의 벽"이라는 "결핍"이 되려 중국 본토 지식인들의 막강한 탐구욕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대지혜"의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현재 중국의 "매력"이다. 

    10년전 친구가 나한테 말했다.

   "알고보면 중국식 특색의 사회주의가 굉장히 대단하고 어마무시한 거야" 라고.

    과연 그런 것일까?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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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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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식 특색의 사회주의, 중국식 현대화, 중국식 전과정 민주주의
    알듯 말듯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어휘가 사람들의 눈치보기를 더 조장한 부분도 있는것 같은데 이건 저만의 착각일가요?
    중국식으로 해서 결과가 좋으면 포용하고, 결과가 별로면 그건 중국식이 아니다.
    이보다 더 만능일 수는 없는거지요. — 중국식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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