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두번째 학기가 시작할 때 쯤 동시대 미술에 관한 수업을 해주신 한 교수님(큐레이터)께서 홍콩에 갈 프로제트가 생겼는데 나보고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이번 프로젝트는 만다린(중국어)-한국어 통역이 필요한데 통역자의 조건이 미술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교수님의 제안이 너무 고맙고 신났지만 걱정이 앞섰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본, 태만, 홍콩, 한국에서 자신의 지역을 대표 하는 아티스트, 큐레이터, 디렉터와 이 지역들의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통역자들로 구성되었다. 교수님께서 말하시길 일반 통역자들은 언어의 문자적 의미를 번역하는 것에 능하지만, 예술분야의 통역은 예술에 대한 이해가 결여 되면 전혀 다른 뜻으로 변역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투박한 변역이더라도 예술적 관념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달하는 교류가 될 수 있도록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통역자를 원한다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 온지 1년도 안된 나에게 이번 제안은 너무 크고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중국 친구를 소개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 보다 내가 제대로 통역을 못하여 프로젝트에 폐를 끼치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내가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가장 잘 아는데…

거절하고나서 집에 들어왔는데 너무나도 아쉬웠다. 나는 너무 가고 싶었다. 나도 나의 언어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이유로 평생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 왠지 잘못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용기내어 교수님께 가고싶다고 말씀드렸다. 한 차례 번복 끝에 나는 만다린-한국어 통역자로 홍콩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너무 신났다. 

홍콩에 도착하였다. 모든 통역자들은 프로그램이 진행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모든 회의, 토론, 발표 내지 일상담화의 내용들을 통역해야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통역에 대한 염려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예술인들만 모여있는 이 공동체가 너무나 좋았다. 여태까지 나는 나를 제한하는 모는 집단들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제보니 내가 소속되고 싶은 집단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예술인들과 함께 교류했던 몇 일 동안 나는 처음으로 영혼의 집을 찾았던 것 같았다. 언어의 장벽은 초월적인 이해들로 얽히고 동시에 파괴되면서 새로운 사유와 영감을 촉발하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신화, 역사, 정체성"이다. 이러한 주제 역시 나의 관심사들과 맞물린다. 그만큼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값진 수확을 거두게되었다.

그 첫번째 수확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홍콩을 중국의 일부로 확신해왔던 나는 도처에 붙여진 탱크와 중국 혐오적 작품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또한 영국 식민지 시기를 그리워 하는 홍콩 학자의 발표를 들으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왜 이들은 이토록 화가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나는 여태껏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단 한번도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었을까? 왜 나는 홍콩을 나의 나라의 일부라고 확신하면서도 홍콩의 역사에 관해 아는 것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결국 어느 식사 자리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참여자들은 한국의 역사와 좌파 우파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몰랐고, 전두환 대통령이 무력으로 시민들을 탄압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굉장히 놀라워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 만큼 더욱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그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여쭈어 보았다. 

이 때 광동어와 한국어를 통역하시는 한국계 홍콩인께서 나의 의아한 표정을 보고 매우 불편했던 것 같았다. 그는 질문을 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 언짢은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거기도 똑같잖아요."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당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을까? 그 한마디는 왠지 모르게 이렇게 들렸다. "당신이 중국인으로서 이런 이야기에 의아할 필요가 있나? 뭘 더 물어보려고 하나? 당신들이 더 잘 아는 거 아닌가?"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홍콩인들이 중국을 향한 분노가 왜 그토록 거센 이유를. 나는 처음으로 내가 이 지역에서 '죄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내가 한국에서는 이미 '(조선족)범죄자'가 되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나는 식당에서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나왔다. 눈치가 빠른 한국 큐레이터가 따라 나와서 위로의 말을 건네 주었다. 대만 친구와 또 따른 홍콩분도 나와서 내가 괜찮은지 살폈다. 나는 너무 민망해서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잠시 숨을 고르려고 나왔던 것 뿐이지만 울음을 터뜨릴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나도 울고 있는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이 울음은 그칠래야 그칠수가 없었다. 

나는 왜 그토록 서럽게 울었을까? 

억울해서일까?

아니면 중국의 통제에 불편한 홍콩인들에게 미안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역사의 죄값과 그 무게를 홀로 받아드려서일까?

나는 나를 일깨워준 그 홍콩 한인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반성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수확이다.

그 두번째 수확의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홍콩 디렉터는 참으로 좋은 분이셨다. 나한테 관심이 많았고 중국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그는 오히려 중국이 어떻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대만 큐레이터와 작가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는지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내가 종교를 믿는지 물어봤고, 나는 내가 종교가 없지만 믿음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어보았고 나는 그 믿음이 예술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일본 디렉터는 나에게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한국 만큼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큐레이터는 내가 일본에 별로 반감을 갖지 않는 것에 놀라워했다. 어떤 이야기이든 나에겐 모두 흥미롭고 유익했다. 

홍콩 작가들은 홍콩이 영국 식민지에서 중국으로 귀환되면서 겪게된 심적 변화에 대해 다루었고, 대만 작가들은 대만의 민속 신앙과 제의에 관한 기억을 소환하며 대만인의 삶과 신앙이 얼만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일본작가는 재일(한인) 교포다. 그는 한국계 일본인의 시각으로 자신의 정체성의 역사적 근원을 추소하였다. 유일하게 한국인 작가가 여기서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한국인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의 독힙된 테제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콩 작가와 대만작가, 또는 재일 교포 작가에겐 정체성의 문제란 이해하기가 너무 쉽고 당연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 작가에게 민족과 국가의 분리라는 테제는 이미 한국의 역사에서 완결된 문제로,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받아드리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의심은 한국인의 외부에 존재하였다. 재일교포, 조선족과 같은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아무리 한국과 북조선이 분단의 상황이라고 해도 두 지역은 현재 엄현이 다른 나라이며 양국 국민들은 서로 소통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따라서 한국인은 당연히 자신의 정체성을 북한인과의 정체성과 혼동하지도 헷갈리지도 않는 것이다. 한국 작가는 오히려 정체성이란 테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자신에게 이 테제가 그토록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에 대해 되묻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눈에는 한국 작가는 이미 자신의 작업 속에서 충실하게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국 작가는 정체성에 대한 집착과 외적 '신화'에 갇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겪었던 정체성의 갈등, 홍콩인이 자신을 중국인으로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느끼는 괴리감, 조선족 사람이 중국, 한국과 북한 모두에서 느끼는 이질감…어쩌면 우리가 정체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을 때, 이분법이 더욱 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로부터)인식하게 되었다면 반대로 정체성의 갈등을 몸소 체험해온 작가들은 그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오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차피 외부의 정체성을 받아 드리건 말건, 인간은 이미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만들어 나아가고 있기에…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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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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