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창문을 여닫을 때마다 내 손바닥에 딱 맞게 잡히는 그 은색 지붕을 한번씩 들어올린다. 그때의 나의 손가락은 지나간 세월동안 그 많은 물체 중에 미세한 확률로 거기 내려앉은 시간의 입자들과 한번씩 만난다. 세월에 반들반들해진 그 은빛 물체에 잠시 손을 얹음으로써 손가락이 닿은 면적의 먼지를 쓸어내리고 그 대신 나의 손때를 남기는 1초 남짓한 이 행위는 어떤 생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이렇듯 큰 애틋함도 없고 차지하는 부피에 비해 사용도가 매우 낮음에도 30년을 내게 속하였고 지금은 창문닫힘 방지용으로 쓰이는 그것의 애초의 용도는 연필깎이었다. 

첫인상에 기차를 닮았다고 하여 우리 집에서 점차 “기차 연필깎개”라고 불리던 이 물체가 어떻게 우리 집에 왔던지까지는 기억이 희미하나, 사람의 기억은 조작될 때도 많으니 엄마가 한국에 짧게 방문했던 그때에 사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황상 사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며 또 그게 허구일지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기차 연필깎개” 또한 글로 적기엔 어감이 장황하여 “기차”라고 부르려고 한다.

“기차”를 만나기 전에 우리에게도 “그냥 연필깎개”는 있었다. 대개는 지우개보다 조금 큰 크기로 만들어졌고,  연필을 동그란 구멍에 넣고 돌려깎는 단순한 구조의 이 학용품의 단점은, 심이 너무 날카롭게 깎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깎여나온 연필은 심(우리는 그때 연필속대라고 불렀다)이 과하게 뾰족하여 그 무렵 자주 사용하던 얇은 종이의 공책에 글이라도 쓸라치면 자칫 힘조절을 잘못하여 얇은 책장이 찢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이 남조선 학용품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반짝거렸다. 그렇게 광이 나는 철제표면을 그때까지 본적이 없음에도 나의 작은 손에 들려진 그 “기차”의 무게감은 철제 도시락통보다도 더 큰 것이어서 나는 그저 막연히 그것은 전부 쇠때 즉 철제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 같다. 그런 오해는 처음 보는 사물이 주는 경이로움의 크기와도 상관이 있는 것이다. 보태어 PRO KAPA라고 양면에 늠름하게 찍힌 빨간 영문 브랜드명 또한 공격적으로 남조선 제품의 정체성을 알리고 있었다. 

첫 인상이 압도적이었던 탓에 “기차”를 찬찬히 살펴보는 일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누구든 알 뿐만 아니라 잘 사용하지도 않는 연필깎이의 사용법을 나는 그때의 설레임으로 돌아가 여기서 한번 되풀이해보려고 한다. 포구같이 생긴 정면의 구멍에  연필을 넣으면서 윗쪽에 있는 노란 집게를 집은채로 앞쪽으로 조심스럽게 빼주면 연필이 “기차”에 단단히 물린다. 이때 기차의 지붕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반대편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연필이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이른바 연필을 깎는 일이 완성된다. 정돈된 연필속대는 끝이 부드러워 공책 종이위를 달릴 때 비교적 우호적인 필기감을 자랑한다. 

필기감, 추상적이고도 시각화가 가능한 이 감각은 때론 외제 연필깎이 없이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녀사랑과 손재간을 두루 갖춘 학부모의 손끝에서였다.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열 번까지, 오직 반복적으로 낱말과 과문을 쓰는 일의 힘을 신봉했던 당시의 교육분위기로 인해 아직 손가락 힘도 보잘 것 없던 소학생들이었던 우리는 매일 학교수업과 방과 후 숙제의 쓰기 노동에 내몰렸고 이러한 노동에 필요한 도구는 잘 깎여진 연필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이 과제는 학부모의 담당이 되었다. 

요즘은 아이 하나를 학교에 보내면 학부모가 학기 내내 안팎으로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와 달리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 공부에 관해 부모가 할 일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이 연필 깎는 일은 어떤 소학생이 동그란 밥상에 앉아 숙제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 할 때 부모가 옆에서 보여 줄 수 있는 바람직한 풍경이었기에  작지 않은 상징성을 지녔다고 본다. 나는 연필을 깎을테니 너는 숙제를 하거라는 석봉이 어머니 스타일의 무언의 압박 내지 사랑이었고 어렵지 않은 부모의 의무였으며 잠시동안의 평화였다. 

이런 시간이 소중했던 것은 그것이 매일 예약된 평화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며 나는 그래서 그런 저녁을 아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어떤 날에는 일부러 평화파괴자에게 연필깎는 일을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을 그분은 알고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칼과 연필이라는 이 서로 대립되는 물체를 양손에 잡고 열대 남짓이 줄을 선 연필심을 곱게 다듬으려면 한시간 가량의 집중력이 필요했고 이 정교한 작업은 잠시나마 정신을 고양시키든지 잠을 부르든지 둘 중 하나의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 그날 저녁은 무사한 것이다. 

연필도 깎아졌고 숙제도 했고 아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도 평화롭지 못했던 그런 저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달리 없었던 긴 밤이 지나고 나면 나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싫고도 반가웠다. 수면밖으로 밀어냈던 그 걱정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하루라는 시간을 다시 견뎌야 한다는 것이 싫었고, 그럼에도 같은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르는 나의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그런 날에 학교에 가서 필통을 꺼내어 그 가지런하고 잘 깎인 연필들을 바라보면 그것은 내 마음을 찌르는 형체가 되기도 했다가 또 그래도 아무일 없는척 보란듯이 꺼내어 오늘의 쓰기 노동에 동원되는 필기구가 되기도 했다.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나도 쓰기라는 단순작업으로 나를 마비시켰던 것 같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은가. 

보살핌과 연필 깎는 부모노릇에도 기한은 있는 법이다. 하고 싶다고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곱고 부드럽게 깎아주는 “기차”가 우리집에 생겼고 그 뒤에 이어 곧 가느다란 심을 갈아끼우는 샤프펜슬이란 것이 생겼다. 우리는 그것을 자동연필(분명 수동인데)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전자연필(배터리 하나 안들어갔는데 대체 웬 전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동이든 전자든 연필보다 훨씬 사용이 수월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집에서 연필을 깎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30년 넘게 지난 요즘 이렇게 다시 살펴보니 벗겨진 은빛 아래로 노란 플라스틱이 보인다. 그러니까 기차 너는 은색도장을 한 플라스틱 기차였구나. 측면에 찍힌 저 남대문도 신비롭게만 느껴졌는데 그곳은 언녕 수십번이 넘게 지나가본 곳이 되었다. 반대편에 찍힌 불국사에도 동생과 함께 갔었고 오래된 절의 앞마당에서 더위때문에 손부채질을 하며 우린 이 기차 연필깎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오랫만에 연필을 끼우고 한번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이제는 칼날이 무뎠는지 제법 둔탁한 소리가 난다. 어릴때 타던 느린 녹색기차가 출발할 때의 힘겨워보이는 그 소리 아닌가 이건. “기차” 너는 진짜로 기차가 되었구나. 

지금에 와서 “기차”에 대한 재발견을 말하자면, 나는 이 연필밥 서랍이 좋다. 저기 어느 구석에 삼십년 전의 연필밥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것 같아 오래된 가구의 서랍같이 느껴진다. 

또 이 서랍이 연필의 품위를 지켜주는 것도 같다. 깎아내자마자 버리지 않는 것, 소복이 쌓아두는 것, 먼저 내려온 자가 나중 내려올 자를 위해 자리를 깔아주게 허락하는 것, 그래서 속대는 더러 필기와 함께 소모되었을지라도 연필은 온전히 다시 서랍에 모이는 것, 결국 연필은 부서졌을지라도 함께 버려지는 것. 품위는 이렇게 흘러 전가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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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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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년의 “기차 연필깎개”를 다시 써 보면서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고 갑니다! 영어를 자주 쓰면서 이런 문학 감성을 어떻게 견지해 왔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활동이 조금 뜸해 보이던데 혹시 어디 가서 문학 수련을 받고 왔나요? ㅋㅋㅋㅋㅋ

      1. 오해라니요 아닙니다 감사한 말입니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풀각에 빵 터졌습니다. 근데 그게 뭐라고 여태 못 익히셨는지요. 연필 한묶음 사다가 사기나게 돌려보세요. (저는 사실 손으로 깎을줄 모릅니다🙃)

  2. 요즘은 저런 일용품이 거의 MADE I N CHINA로 바뀐지가 오래 되었는데, MADE IN KOREA는 진짜로 골동품이군요. “기차”에 대한 좋은 인상이 많이 남아 있군요. 저는 어렸을때 공부하기 싫으면 연필만 깍다가 시간 보냈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샤프트는 직장생활하면서 써 봤는데, 그래도 쓱싹 깍아서 쓰는 연필보다 못했슴다. 잘 읽었슴다. 좋은 글이네요 …좋아요 꾹 !

  3. 글머리 전개가 아주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진안님은 아주 일찍이 남조선 물품을 접했군요^^ 저는 저런 연필깎이를 본게 불과 몇년전인데 한번 써보고 너무 재밌어서 연필 한타스 다 깎아 버렸죠 ㅎ

  4. 저희 연구실에 저런 연필깍개가 있는데, 기차는 아니고 집 모양인데, 노란 손잡이를 빼주고 돌리면 될거 같은데 저는 아직도 깍는 법 못 익힘요…. 손칼로 연필을 깎는 것도 이쁘게 깎는게 기술이었던 그런 아날로그가 가끔 그립긴 해요.

    결국은 저 은빛 기차도 풀각이였나요 근데 ㅎㅎ 첫 단락의 묘사를 읽으니 사진의 기차머리가 왜 반들반들한지 알겠네요. 전문용어로 包浆이라고 호두가 이리 됐으면 큰 돈 됐을지도 모를 세월의 먼지 세트 ㅋㅋ

  5. 오오~~~깎아내자마자 버리지 않는 것, 소복이 쌓아두는 것, 먼저 내려온 자가 나중 내려올 자를 위해 자리를 깔아주게 허락하는 것, 그래서 속대는 더러 필기와 함께 소모되었을지라도 연필은 온전히 다시 서랍에 모이는 것, 결국 연필은 부서졌을지라도 함께 버려지는 것. 품위는 이렇게 흘러 전가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군요.~~~~~감동임다.

  6. 와… 이리 좋은 글을 이제서야 읽네요.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열 번까지, 오직 반복적으로 낱말과 과문을 쓰는 일의 힘을 신봉했던 당시의 교육분위기로 인해” – 이 덕분에 지금까지도 우리의 오른쪽 중지에는 썩살이 배여있지요. 거의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썩살 ㅋㅋ
    아… 그리고 기차는 응답하라 1997쯤에 나올법한 기차네요. 자동연필은 소학교 마지막쯔음하여 제도 3000, 5000 등 시리지가 막 나왔죠… 그다음은 만년필과 쭈깡비?인가 하는게 나왔고.
    이런걸 보면 진짜 옛 생각들이 많이 나겠습니다. 기억을 공유해줘서 땡큐임다!

    1. 저는 거기 썩살이 없고 다른데 있는데 아마 제가 연필쥐는 법이 표준이 아니라서 ㅋㅋ 응칠이 99학번 제가 00이니까 범이 통찰력 소름. 쭈깡비는 뭐에요? 첨듣이라 도저히 아는척 할 수가 없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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