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유행가요 “同桌的你”는 모두가 즐겨 듣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노래였다. 노래가사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스토리는 아니였으나 제목만으로도 임팩트가 컸다. 그만큼 학창시절이 평범했든 화려했든, 우리 모두에게는 퉁줘가 있었고, 그때는 명확한 호칭도 없이 “내 옆에 누가 앉는다”, “누구랑 같이 앉는다”고 표현하곤 했다.
소학교때 내 옆에 누가 앉았던지는 이젠 까마득히 잊었으나 소학교때 퉁줘의 의미는 주로 티격태격이었다. 어렸을때는 집에서도 형제자매끼리 아웅다웅했듯이 학교에서도 가장 가까운 퉁줘와는 대개 갈등을 만드는 사이였다.
남학생 여학생을 함께 앉히는건 그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주로 남자애들은 트러블을 만들고 여자애들은 그걸 선생님께 고발하고 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얘랑 같이 못 앉겠다고 아우성이거나, 책상사이에 일부러 간격을 두고 의자는 더 멀리 떼어놓고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시험때엔 퉁줘가 내 시험지를 못 보게 막는 등등 유치하기 그지 없었으나 유치한건 그 나이의 특권이었다.
그나마 기억이 좀 나는 건 6학년때의 퉁줘였다. 곧 중학교가 갈 나이가 되는지라 티격태격은 별로 없었고 나는 적당한 예의와 무관심으로 나의 퉁줘를 대했었다. 그 아이는 순하게 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소위 조금 “노는” 아이였다. 성격도 순해서 나를 괴롭히거나 난처하게 한 기억이 없다. 그 아이가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에피소드때문이다.
그때 우리 반은 거의 절반 넘는 책상의 밑판이 떨어져나가 책상서랍을 쓸 수가 없는 상태였고 담임선생님께서는 남학생들에게 자기 책상을 수리하고 나서 여학생들의 책상도 수리해주라는 임무를 주셨다. 물론 대다수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 책상은커녕 자기 책상도 수리하지 않았었다. 내 퉁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학교에 갔더니 내 앞자리 여자애의 책상서랍이 고쳐져 있었고 퉁줘와 그의 단짝들이 그 책상을 주제로 시시한 대화들을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나의 퉁줘가 고친 것이었다. 앞자리 여자애의 반응이 몹시 궁금한 우리는 모두 그 아이의 등교를 기다렸다.
조금후 모두가 인정하는 우리반 얼짱인 “그녀”가 나타났다.
근데 자리에 앉아 가방을 놓고 책상이 고쳐진걸 발견한 그 아이는 서랍에 물건을 넣지도 않고 모르는척 하는게 아닌가. 주인공이 나타났는데 아무런 대사도 없으니 관객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여자애 건너편에 앉은 말많은 남자애가 느릿느릿 물었다.
“책상 누가 고쳤는지 아니?”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내 퉁줘가 “말하지 말라니까?!”라고 핀잔을 주었다.
“니 물어봐라메.”
그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빵! 터졌다. 책상에 엎드려 웃고 배를 끌어안고 웃고. 여자애도 웃고 내 퉁줘도 볼이 빨개지며 웃었다. 물어본 애도 모두의 반응에 신이 난 것 같았다. 6학년이 내게 남겨준 몇 안되는 재미있는 기억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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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중학생이 되었다. 새학기 첫 자리안배는 대충 키의 크고작음에 따라 정해졌고 7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교실에 빼곡히 들어앉았다. 그러나 두번째 학기부터 “자리는 성적순”이 되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계급의 유사개념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아마 거의 모든 반이 그러지 않았나 싶다. 철저하게 1등부터 순서대로 앉힌건 아니었으나 성적을 주요원칙으로 성향을 두번째 원칙으로(말이 많고 적고, 친하고 안친하고 등등) 담임선생님께서 자리표를 만든 후 앞줄부터 부르면 그자리에 가서 앉게 되었다. 그 순간은 꽤 긴장한 순간이었다. 싫든 좋든 한번 앉으면 적어도 한학기는 갈거니까.
그때 즈음이면 이미 성별개념이 확실해졌으므로 옆자리에 이성학우가 앉는다는건 어느정도의 긴장감을 주기 마련이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누구와 앉고싶다는 마음 정도는 조금씩 가질때였다. 아니 이성학우는 둘째치고 친한 친구라도 가까이 앉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마음은 모르듯이 자리배정을 하며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듣는 순간 한학기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거부할수 없이 그 자리에 가서 앉게 할만큼 우렁찼다.
아무튼 함께 앉으면 잘 지내야 했다. 교과서를 안가져오면 같이 봐줄 사람도 퉁줘였고 수업중에 딴짓을 하다가 선생님이 오시면 귀띔해주는 것도 퉁줘였다. 그때는 수업중에 친구한테 쪽지를 쓰는 일이 많았는데 쪽지를 작성 후 쪽지위에 수신자의 이름을 쓰면 순식간에 배송되었다. 몇사람의 손을 거치든 아무도 귀찮아하지 않았고 그때만큼은 모두가 의리의 화신이었다. 이 쪽지의 발신과 수신도 거의 퉁줘를 거쳐야 하는 만큼 퉁줘는 인간관계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많은 것이 느슨해졌다. 등수대로 자리배정을 했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원하면 뒷줄에 앉을수도 있고 심지어 삼학년에 가서는 자리배정을 하기전에 누구와 앉겠다고 종이에 써서 제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여기서 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삼학년에 들어와서 우리 반에는 예술고를 다니는 학생들 열명 남짓이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남학생 두명을 빼고는 모두 여학생이었는데 예고여학생들답게 예쁘고 활발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티비의 무대에서나 볼수 있던 가수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니 우리 반 분위기는 삽시에 달라졌다. 구경을 오는 다른 반 애들도 있었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모두 뉴페이스들의 등장을 반기는 분위기였고 그 친구들 역시 모두와 잘 어울렸다.
예고친구들이 오고나서 한차례의 자리배정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예전처럼 앉고 싶은 친구 이름을 써내라고 하셨다. 자리정돈이 끝난 후 거의 모두가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앉아서 좋아하는 분위기였는데 뒷쪽에 앉은 애들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보니 우리반 어떤 남자애가 ‘예술학교친구와 함께 앉고 싶습니다’라고 썼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예술학교남학생을 옆자리에 앉힌거였다. 새로온 여학생과 함께 앉고 싶었던 그 남학생의 허탈한 웃음에 우리는 한번 웃고, 담임선생님의 재치에 또 한번 웃었다.
나의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퉁줘들,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란다. 이쯤 하여 예전에 어느 영화카피에서 본 말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믿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다지 동의되지는 않는다. 그 말을 이렇게 바꿔보련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同桌였다.
【2018.11】
비슷한 시대의 학창시절을 보냈던 1인으로서, 읽으면서 “그땐 그랬지”를 여러번 반복했습니다. ㅋㅋ
저만의 기억이 아니군요. 공감에 감사합니다. 🙂
좌우로는 3.8선, 앞뒤로는 불도저 싸움 ㅋㅋ
그러고보니 앞뒤로도 서로 자리 차지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