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30 출발 3일전

자전거 려행 시작 전, 항상 하는 의식 같은 게 있다. 바로 머리 미는 것이다. 리발소에 가 3mm 혹은 6mm로 밀어 줍쇼 하면 바로 2분만에 깨끗히 밀어준다. 마음의 준비가 되기도 전에 끝난다. 매번 거울 속 사람을 보며 멋쩍게 웃는다.

고중 때 거추장스럽다고 자주 머리 밀던 때가 있었다. 머리 감기도 귀찮고 머리 손질하기도 귀찮고 해서 세수하는 김에 같이 손 볼 수 있는 깔끔한 민머리가 편해서 고중 때는 자주 머리를 밀었었다.

같은 리유로 매 번 자전거 려행하기 전엔 머리부터 민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면서 온 몸이 땀과 먼지 그리고 하루살이에 뒤범벅이 될 수밖에 없기에 머리가 길면 애 먹는다. 그래서 려행 전 준비의 마지막 순서로 나는 번마다 머리를 밀었다. 출정의식과도 같은 부호가 되어 버렸다.

2017.07.02 출발 1일전

출발 전날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두만강변에 기발 꽂다는 각오로 6월 한 달 동안 려행 로선도 짜보고 지도도 훑어보며 하루에 얼마 갈 수 있는지 그리고 산은 얼마나 높고 가파른지 샅샅이 따져보며 매일마다 도착해야 할 목적지도 미리 정해 두었다. 그리고 그 매일의 목적지를 지도에 새겨 보았다.

출발 전날, 그 목적지들로 이어진 로선을 모멘트에 올리며 호언장담을 했었다. 정확히는 중2병이 덜 가신 듯이 이런 말을 했다. “如果騎不到圖們江畔並眺望三胖的國度,我就一年不洗澡。” 지금 보면 부끄러워지는 말이다. 몇 해가 지나 이 글을 읽는 나도 또 지금처럼 부끄러워지겠지.

2017.07.03 출발 당일

출발 일이다. 출발하기 바로 전에 올렸던 모멘트를 보니 10:43으로 표기되어 있다. 자전거 려행 치고는 아침 출발이 많이 늦어진 상황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이것저것 준비하고 밥도 먹다 보니 늦었던 모양이다.

출발 전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출발했다. 전에는 경험도 없고 또 길에서 필요할 것 같아서 텐트랑 이것저것 많은 용품을 많이 짊어지고 다녔는데, 이젠 경험도 쌓이다 보니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다 빼고 사진에서 보이다 싶이 달랑 가방 하나 용량만 가지고 출발했다.

쓰다 보니 내 인생 첫 자전거 려행이 떠오른다.

때는 2013년 몹시나도 화창한 봄날. 늘 그랬든 북경의 봄은 갑작스레 다가온다. 북경에서 대학을 다녔고 그 때 난 3학년이었다. 갑작스러운 봄의 기운에 취했는지, 마음이 들뜨던 난 문득 졸업하기 전에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저질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뇌리에 스친 생각이 여름방학에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보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었다. 당장에는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 됐었지만 혹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지도도 검색해 보고 나름대로 계산해 보니 불가능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날로부터 난 자전거 려행이라는 다소 신선하고 용감하고 또 아주 미친 것 같은 아이디어에 꽂힌 채 여름 방학이 오기 전까지 수많은 공부를 하면서 보냈다. 맨 땅에서 수영을 배우 듯, 난 먼저 인터넷으로 자전거 려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그러다 5월 1일 인터넷에서 구매한 자전거를 받았다. 시간이 될 때마다 70km 정도 되는 북경 4환도로를 달려보며 체력을 키웠다. 6월 1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소리 없이 국도를 따라 천진으로 달려가 남개대학에 있는 고중 동창생을 찾아 갔다가 이튿날 되돌아 왔다. 혹시 중도에 힘들어 포기할까 두려워 미리 친구한테 말도 못했다. 국도(国道)로 왕복 약 300km, 어쩌면 나의 첫 자전거 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여름 방학이 오기 전까지 별의별 물건도 참 많이 샀다. 려행 로선도 석달 간 틈틈이 짜보았다. 빠르면 7일 길어도 10일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위에서처럼 내 나름으로는 면밀한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방학이 다가왔다. 예정대로 7월 2일, 난 뙤약볕을 무릅쓰고 출발했다. 낮 기온이 34도 정도인 것으로 기억된다.  4환의 서북쪽에 위치한 북경대학에서 나와 번화한 북경 시내의 동쪽을 빠져 나오는데 반나절은 넘게 걸렸다.  태양은 너무나 뜨거웠고 호되게 데인 팔은 아파왔다. 처음이라 그 때는 자외선 무서운 줄 몰랐다. 고기 구워대는 듯한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할딱거리며 페달을 밟아댔다.

해가 질 녘이 되어 열기가 누그러 들어갔고 몸 상태도 좋아졌다. 속도도 더 빨라졌다. 삼하시(三河市)를 지나며 길가 음식점에서 조촐하게 저녁을 먹었다. 많이 배고플 줄 알았는데 아예 입맛이 없었다. 몸이 너무 힘들면 식욕도 떨어지는 것 같다. 억지로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3리터 짜리 식용수 2통을 사 핸들에 걸어 놓고 재차 밤길에 올랐다. 한 낮의 무더위에 진도가 좀 더디었다. 하지만 해가 지고 열기가 다소 가신 밤엔 너무도 상쾌한 길이었다. 상태도 딱 좋겠다 페달을 쉼 없이 밟았다. 가끔 가다 마주치는 화물차와 주유소외에 그 길엔 외로운 려행자의 벗이 없었다. 손전등에 의존한 채 칠흑을 파헤치며 나갔다.

21시 정도로 기억된다. 줄기차게 페달을 밟아대기 딱 좋은 상태이기는 하나 더 타다가는 다음 날 아침 일어날 수 없을까 걱정되어 속도를 늦추고 좌우를 살피며 텐트 칠 만한 곳을 찾았다. 좌우가 다 촘촘한 가로수로 막힌 터라 반시간 쯤은 족히 더 달려서야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이튿날 해가 뜨고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때 머문 곳은 어느 한 과수원의 나무를 심지 않은 끝자락 풀밭이었다. 정말로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 난 손전등에 의존한 채 텐트를 치고 그 사각에 못을 박아 고정하고 침낭이랑 짐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옷을 벗어 던졌다. 미리 사두었던 식용수를 꺼내 알몸으로 샤워를 해댔다. 샤워라고 하기에는 물이 많지는 않지만 그나마 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렇게 씻고 텐트로 들어갔다. 텐트 속에서 미리 잠복해 있던 모기에, 열기에, 습기에 잠은 오지 않았다. 낮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해보는 나만의 자전거 려행, 처음으로 자보는 혼자만의 텐트. 주인 미상의 그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해 보는 고독한 야외 취침이었다.

바람에 스친 잎새의 작은 부스럭 거림에도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손이 닿는 곳에 미리 사두었던 칼을 여러 번 들었다 다시 놓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사두었던 주방용 칼. 텐트 밖에서 기척이 들릴 때마다 난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런 상황에서 짐승이 찾아 오는게 더 무서울지 아니면 낯선이가 찾아 오는데 더 무서울지 생각해 봤다. 어느 것이 더 무서울지 나도 모르겠었다.

그렇게 설치던 잠을 힘겹게 청했고 서너시간 자다가 이른 아침 깨어났다. 텐트 안에도 이슬이고 텐트 밖 풀잎에도 이슬이다. 이른 아침 옅은 안개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텐트랑 짐을 다 정리하고 다시 국도에 올랐다. 우거진 가로수 사이로 아직은 부드러운 해빛이 틴달효과를 내며 취광등처럼 내 앞에 놓인 길에 쏟아졌다. 고요한 아침이었다. 그렇게 난 내 인생 첫 자전거 려행을 무사히 시작했었다.

다시 중경에서 시작했던 마지막 자전거 려행의 기억으로 돌아와 본다. 이 날도 무더움은 마찬가지였다. 변한 거라면 나도 이젠 경험이 쌓여 자외선이 무서운 줄 알았고 복면 강도 마냥 온몸을 천으로 둘렀다. 자외선 차단제도 덕지덕지 발라놓았다. 무난하게 출발했고 무난하게 려행을 시작했다. 무더위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무난하게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러다 조금 늦은 오후가 되었다. 타이어가 펑크 났다. 뭐 자전거 려행을 하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사람 구워대는 아스팔트에서, 그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첩첩산중에서도 타이어 펑크 난 적이 있다. 하지만 려행 첫 날부터 펑크 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날부터 너무 재수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길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타이어 교체 작업에 들어갔다. 장만해둔 새 타이어를 꺼냈는데 뭔가 이상했다. 살펴 보니 내가 쓰고 있는 타이어랑 다른 모델이었다. 큰 일. 아주 큰 일이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까. 방금 지나쳐 왔던 자그마한 진에서 너무 멀리 나오지는 않았다. 다시 바퀴를 장착하고 자전거를 끌로 도보로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어느 한 자그마한 자전거 수리 가게를 찾아갔다.

어두컴컴한 자전거 수리 가게. 로인 한 분 계셨는데 일이 많이 없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애들 빼고 요즘은 다들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 10년 전만 해도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을 것이고 수리 가게 로인도 예전엔 수입이 짭짤했을 것이다. 내 타이어를 꺼내 보였다. 흔한 모델은 아니라 이 가게에 있을지 큰 의문이 들어 마음을 조렸다. 혹시 여기서 원하는 타이어를 못 구하면 어떡할까 생각해봤는데 답이 없었다. 타이어를 살펴보던 수리가게 로인은 가게 깊숙히 들어가 도구들로 쌓여진 깊숙한 장롱 속 어딘가에서 타이어를 꺼내 나오셨다. 다행히 같은 모델이었다. 필요한 타이어 2장을 사 교체하고 난 무난하게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이 일로 시간을 랑비하다 보니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첫 날 116km를 달려 사천성 광안시(广安市)에 도착했다. 샤워를 마치고 한껏 흥분된 몸을 다독이며 잠을 청한 것으로 기억되는 자전거 려행의 첫 날이다.

자전거 려행에서 타이어 펑크는 흔히 있는 일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또 골치거리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펑크 날 때마다 난 나이키의 슬로건을 그대로 실천했던 것 같다. Just do it. 그냥 무작정 해봤고 해보니까 되더라.

인생길을 걷다 보면 이곳저곳 펑크 날 때도 있지 않겠는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그냥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니 생각하고 그냥 밀고 나가보면 타이어 수리하듯 풀리지 않겠는가? 혹여나 잘 풀리지 않더라도 진인사청천명(尽人事听天命)이라 했으니 일단 “진인사”부터 실천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just do it.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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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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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나 멋진 경험을 이렇게 생동하게 정리해주어서 잘 읽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주위의 많은 응원을 받았을거라 생각됩니다. ㅋㅋ 자전거를 타보면 가파른 올리막길이 참 힘들던데 어떻게 잘 이겨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물론 천국과도 같은 내리막길도 곧 따라오게 되어 있지만. ㅋㅋㅋㅋ 작가님의 멋진 추억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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