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무에서 박사논문에 관해 이미 두 편의 글을 발행했었다.
첫 번째 글: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박사논문을 대하는 방식
두 번째 글: 천재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두 편의 글은 내가 박사논문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다뤘을 뿐이지 그 내용에 관해 언급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나의 박사논문에서 무엇을 기획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까?
10년 전(2013년) 나는 나의 본과 졸업논문에서 중국 아티스트 顾德新(구더신)의 사례를 연구하는 논문 《"当代艺术"是一种生活方式—顾德新个案分析》을 작성하였다. 이 논문은 1년 반 뒤 소정의 수정을 거쳐 중국 어느 무명의 잡지에 실렸다.(그 당시 知网에 올리는 것이 너무 비싸서 인지도가 낮은 잡지에 올렸더니 결국 뭍히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논문은 10년 뒤 한국어로 발표된 나의 학술논문과 박사논문의 맹아가 되었다. 상상이라도 했을까! 구더신에 관한 논문만 세 편을 썼다니.)
구더신은 2009년 즉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이미 미술계를 탈퇴하였다. 퇴임이 아니라 탈퇴, 이러한 행위는 부질없이 보여도 실행에 옮기는 순간 도발성을 지닌다.
나는 궁금했다. 이 사람은 왜 한창 자신의 명성을 날리기 좋을 타이밍에 미술계에서 사라질 결정을 내렸는지. 여태껏 나는 이런 작가를 본 적이 없었다. 보통 한 작가의 작품이 고가로 팔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작가가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과 그에 관한 기사는 성공의 물결을 타고 세계 유명한 저널과 미디어에 실리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그제야 대중들은 그의 언행과 스토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구더신은 마치 이러한 '순리'를 거역이라도 하는 듯 작가 인터뷰를 비롯한 시장 홍보를 수 차례 마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 되었으며 허우한루(Hou Hanru,侯瀚如,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웡샤오위(Weng Xiaoyu,翁笑雨, 뉴욕 구겐하임뮤지엄 큐레이터) 등 미술계 저명한 인사들의 심도 있는 비평문을 이끌어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도대체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지 매우 궁금했다.
2007.4.14, 沪申画廊 2011년 나는 어느 현대미술 이론 수업에서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아티스트 리서치를 하다가 인터넷에서 구더신의 <2007.4.14> 설치 작품을 처음 보았다.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바나나와 중간에 떡하니 세워진 빨간색 벽(기둥), 그리고 전시 당일 날짜로 명명된 작품명. 작가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바나나를 전시장에 방치해 놓았다. 대학에 진입하면서 입시 미술의 딱딱함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난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무엇일까? 이 웅장하고 무거운 느낌은. 무엇일까? 이 경탄스러운 압도감은!"
이 작품에 매료되어 나는 바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작품들도 하나같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2006.09.02, Galleria Continua
구더신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당대미술(Contemporary Art)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당대미술의 시원을 파헤치니 80년대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중국 현당대미술에 눈을 뜬 나는 되려 미술이란 무엇인지 궁굼했다.
촬영: Wang Rui(1979)
서구 현대미술 개념들이 중국 현당대미술에 전용되면서 외연적으로는 같은 개념일지라도 실제로 현지 컨텍스트 속에서 달리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서구의 Contemporary Art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시대(동시대)적 이슈들에 주목한다면 중국의 당대미술(当代艺术)은 보다 좁은 의미에서 중국 내부의 사회적 변화와 실태에 주목한다. 또한 한국에서 현대미술은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를 함께 지칭하는 경구도 있지만 중국 미술에서는 이 모던의 시기를 규정하기가 너무 애매하기에 1989년에 개최한 <中国现代美术大展> 에서 사용한 "现代" 또한 "Modern"이 아닌"China/Avant-Garde"로 번역되었다. 80년대 중국의 문화적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을 때 모던 보다는 아방가르드가 더욱 적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에서 Avant-Garde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흥행한 예술 운동과 양식을 상기시킨다.
중국에서 "관념미술" 또한 서구의 Concept Art(개념미술)에서 유래하였지만 비평가 가오밍루(高名潞)에 의하면 중국 현지 문맥에서는 개념(Concept) 보다는 관념(Idea)에 더욱 가깝다고 보았다. 동시대 미술이든 중국의 당대미술이든 더이상 '관념(观念,IDEA)' 없이 작품이 완성될 수나 있겠는가?
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 1965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니 고전미술 또한 관념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종래,관념(이데아)이 인간의 문명에 관여되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을가?! 오늘날 미술은 관념적으로 변형 되었다기 보다 오히려 다시 관념으로 회귀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인가? 구더신은 친구와의 담화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었다. "아마도 나중엔 예술작품만 남아있고 예술가가 없어질 것 같습니다." (누가 이 말을 좀 해석해주게.)
한국에서 유학가면서 나는 교수님과 구더신에 관한 논문을 작성해도 되는지 여쭤보았다.
교수님은 되묻는다. "그럼 나중에 구더신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요?"
나는 선뜻 "네"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 만큼 잘 해낼 자신도, 충분한 문헌 자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음…그건…또 아닌것 같아요."
이렇게 나는 구더신을 제쳐두고 완전히 새로운 주제를 찾으러 나섰다.
(연재중)
문외한인데요, 기억하건대 곰브리치는 예술작품보다 예술가라고 하지 않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