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연애란 예술, 학문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자아반영의 단계이며 나아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촉구하는 자기계발의 과정이다.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나는 연애를 중독하듯이 ‘실천’ 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연애가 촉발하는 아름다움에 매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는 존재가 진리를 통해 보증 받고 있다는 플라톤의 사유와도 연관된다.

그렇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연애를 통해 세계를 알아가는 것을 삶의 전제로 받아들였다.

나는 일찌감치 나의 이러한 성향을 발견하였고 나와 함께 아름다움의 세상을 구축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나는 상대방들의 외적, 내적 조건을 전부 도외시 하였고 나와 같은 차원들이 번쩍일 때 마다 마음의 문을 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심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불빛을 보아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단 하나의 조건—나와 말이 통할 수 있음— 만 충족한다면 감지덕지 하게 상대방을 받아들였다. 그 덕에 나는 신기한 사람들(타로 보는 아줌마의 말로는 이상한 사람…)만 만났던 것 같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ㅎㅎㅎ  

이는 내가 자처한 결과다. 나는 항상 아름다움(선약, 존중, 배려…)을 서서히 파괴하는 연인의 본래 모습들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며 도망치기 바빴다. 내가 추구해온 연애는 늘 일상적인 삶의 ‘추’들과 타협하지 못했다. 

만약 그런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어쩌면 나는 ‘사랑의 명분’으로 연애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지 그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나는 그 ‘추’들과 마주할 때 또는 상대방과 수 많은 대화를 통해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일말의 미련과 후회도 없이 돌아서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들과의 연애를 '허용' 했던 유일한 조건인 '대화' 마저도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동안 나의 연애가 항상 비극적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인 것 같다. 

그동안 연애가 나를 성장하게 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어리석은 판단과 이기적인 요구들에 의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연인, 가족과 지인을 포함해서)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한테도 불필요한 상처들을 남겨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부터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아름다움이 일상의 번뇌에 의해 훼손 하더라도 함께 복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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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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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이 통하는 사람… 가치관이 같은 사람을 찾는군요. 아름다움이라는 건 결국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에 더 많이 잠재해 있는거라, 유효기간이 짧다는 게 아쉬운 점이죠. 그래도 그 순간이 진짜로 존재했고 그 시간은 오로지 한사람에 속한 영원한 추억이니 처참한 게 아니라 소중한거라 생각이 드네요. 진정으로 대화가 잘 되는 짝을 만날수 있을거에요, 오고있는중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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