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가 있다 

그는 자신이 애인한테 상처를 줄까봐 애인과 헤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괴로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연을 끊을 용기도 새로운 인연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말한다 너가 너의 빌런 이라고

그런데 일단 연인 관계를 시작하면 마치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처럼 분명 아니란 것을 직감 하면서도 그 시스템을 스스로 뛰어넘는 것을 매우 힘겨워한다

사랑의 명분으로

나는 내가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 고통스러운 방식의 사랑을 진정 욕망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2

집단 인식이 어느 특정한 공동체에만 한정 되었을 때 그것을 진정한 집단인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집단인식이란 인간의 모든 정보를 담아내는 벽없는 광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한 공동체란 그 광야 한복판에 울타리를 치는 것과 다름 없다 

따라서 그것은 진정한 집단인식이 아니라 집단인식의 조열한 모방이다.

이러한 작위적인 집단인식은 인간의 운명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없을 뿐더러

인간의 무의식을 대변 할 수 있는 그 어떤 효력도 제대로 발휘 하지 못한다.

특정 공동체의 집단 인식이 아닌 인류를 대상으로 상정한 집단인식의 전제는 적대심의 해소다.

내가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북한에서든 아무런 거리낌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누구들 한테도 적대심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에 대한 이해는 그 다른 하나에 대한 배신을 필수로 동반 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아니다

실제로 이해와 동조는 다르다 

그 어떤 특정 집단 속에도 자신을 옭아 매지 않는다면 배신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 인간은 그 특정된 집단인식이라는 울타리를 포기할 수 없을 만큼 미련하다

따라서 아무한테도 적대시 할 마음도 그럴 이유도 없는자가

바로 그런자가

때론 모든 집단의 배신자로 상정되곤 한다

따라서 너무나도 쉬이 잊혀진 여러 인류의 집단기억들을 회억해 본다면

굳게 신뢰하던 측근도 (무언가로 인해) 한 순간에 가장 철저한 적으로 탈골할 수 있는 이 작동 체계가 놀랍게도 놀랍지 않게 다가온다.

이 때 과연 

네가 빌런일까?

내가 빌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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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인간 되기를 꿈꾸는 지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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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니가 선악 양분을 하기 싫어 “빌런”이란 표현을 더 추가한 것으로 보임다.
    선한 부분이 더 많이 드러나면 착한 사람, 그 반대면 악한 사람.
    착하다고 믿던 한 대상이 예상 밖의 모습을 보였고,
    그 모습을 악 쪽으로 내몰수는 없어
    “빌런” 이라는 영화, 드라마 속 선악이 공존한 캐릭터로 지칭했네요.

    ㅎㅎㅎ 그냥 저의 개인적인 느낌임다.
    언제부터 “빌런”이 순수 악인으로 묘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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