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집11] K팝 덕후는 오늘도 밤을 샙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팀장님에게 혼나고 눈물을 머금은 채, 2022년 무언가 큰 실수를 한 내가 결코 내려가지 않는 울분을 참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의 2023년과 2024년 달력에는 ‘1년 견딤’, ‘2년 견딤’이라는 일정이 추가됐다.

그 달력에 해둔 작고 하찮은 표시가 무어라고, 내가 숨을 내쉴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다. 오늘만 참아보자, 이번 한 주만 견뎌보자, 1년만 나 뒹굴어도 좋으니 무엇이라도 배워보자.

그렇게 올해까지 무사히 저물어가는 걸 보면 난 꽤나 잘 견뎌낸 듯 하다. ‘견딤’이란 말에 조금의 반항을 담아 오기를 부렸고 그 오기가 결국에 원동력이 되다니 아이러니하지만 대견하기도 하다.

늘상 음악 방송을 틀고 집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나였음을 친구의 후일담을 통해 어렴풋이 기억해내곤 한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인기 가수 중 대부분이 여직 현역에서 활동 중인 걸 보면, 팬심은 비록 점차 현실에 묻혀가지만 한 인간으로서 존경스럽기도 하다. 전혀 상관 없는 업종의 회사 이력서에 가장 존경하는 롤모델로 연예인 이름을 쓰는 망동까지 했던 나였으니.

K팝 덕후는 실제로 엔터 업계에 몸을 담그게 되었다. 가까이 마주한 업무는 매일이 불규칙하고 변화한다. 오늘도 이 새벽에 밤을 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젠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눈에 조금은 아른하다.

“올해는 제가 첫 소설을 발표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30년 동안 제가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때론 신비하게 느껴집니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더 먼 길을 우회해 계속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한강 작가의 거창할 것 없는 담담한 소감 한 구절이 마음을 때렸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조급한 서두름, 그리고 가장 자신 없는 것이 우회였기 때문이다. 급하게 다그치다 자주 실수해봤기에 마음을 다잡고 먼길을 걷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견딤과 지혜가 필요한 지를 안다.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을 한줌 안고서, 느긋하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기나긴 삶을 살아가는 참맛을 알게 될 그날까지.

썸네일 BY O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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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ng Geul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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