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탈 때, 옆에 누가 앉아 있든 보통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상대방이 선의로 물건을 건네줘도 괜찮다고 하며 거절하고, 도움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연한 만남에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몇몇 분이 있다.
1
2011년 除夕 저녁, 나는 심양에서 혼자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 했다. 짐이라고는 백팩 하나뿐이었고, 그 안에는 간식들이 들어 있었다. 설날이라 귀향객이 많을 것 같아 일부러 짐을 적게 챙겼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사람이 가득했고, 기차는 터질 듯 붐볐다.
기차는 옛날 초록색 열차였다. 출발하기 전, 증기가 뿜어져 나와 내가 있는 곳까지 흘러왔다. 뿡뿡 큰 소리가 울리며 곧 출발할 것을 알렸지만, 인파에 밀려 기차에 오르지 못했다. 조급한 마음에 뒤쪽으로 달려가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기차가 심양을 출발해 공주령(公主岭)쯤 도착했을 때쯤, 사람들은 점점 내렸고, 어느새 6인석에 나와 백발의 긴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만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작은 병의 이과두(二锅头)를 홀짝이며 닭발을 드셨다. 나는 小鸡炖蘑菇康师傅컵라면과 脆脆肠소세지를 먹으며 저녁을 때웠다. 잠시 몸이 녹는것 같았지만, 또다시 추워졌었다.
잠시 후, 간식을 파는 승무원이 지나가자 할아버지는 이과두(二锅头) 술을 하나를 더 주문했다. 뚜껑을 잔 삼아 술을 붓더니 나에게 물었다.
“小姑娘,车里冷,要不要喝一口热热身?”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你去哪儿啊?”
“图们”
그렇게 대화는 짧게 끝났다. 더 묻지 않았고, 할아버지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온밤 딱딱한 좌석(硬座)에서 쭈그려 자다 보니 몸이 불편했고 손과 발이 너무 시렸다. 몇 시간이 지나 몸을 어쩔 수 없이 일으켜 앉았더니,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小姑娘,你脸煞白啊.”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어붙은 손을 녹이려 비몽사몽한 얼굴로 손을 비볐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你在这儿看会儿行李,我去那边看看”
나는 또 고개만 끄덕였다. "네."라는 뜻이었다.
몇 분 후, 할아버지는 돌아오더니 말했다.
“人都在那边,你跟我一起去那边吧,那边暖和.”
나는 모르는 사람을 따라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개의 열차칸을 지나, 석탄을 때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객이 많은 앞쪽 칸만 난방을 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있던 칸은 사람이 적어 난방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승무원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할아버지 덕에 따뜻한 자리로 옮길 수 있었다.
나와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았고, 열차는 동굴을 지나며 구불구불한 길을 달렸다. 그때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며 따뜻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그 따스함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잠시 후, 할아버지는 돈화역에서 내리려고 일어났다. 나는 무심결에 손을 흔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서로 말은 거의 없었지만, 이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2
최근 비행기를 탑승하자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노란 종이 입국 카드를 내밀며 말씀하셨다.
"이거 좀 써줄 수 있소?"
할아버지는 하얀 종이에 자신의 기본 정보와 도착해야 할 주소를 적어 두셨다.
"네." 하고 답한 뒤 입국 카드를 작성해 드렸고, 완성된 카드와 흰 종이를 돌려드리자 할아버지는
"고맙소, 내가 이런 건 쓸 줄 몰라서…"라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이럽슴다."라고 답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 기내식이 나왔다. 메뉴는 소고기였지만, 아침을 많이 먹은 데다 멀미까지 겹쳐 거의 먹지 못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마이 먹어야지, 다이어트 하는 거요?"
"아님다. ㅎㅎㅎ 그냥 아침을 많이 먹어서…"
"집이 어디요?"
"연길임다. 할아버지는 집이 어딤까?"
"나는 돈화요."
그렇게 갑자기 대화기 시작됐고, 할아버지의 인생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농부로 밭일을 하다가 2000년부터 한국에서 20년간 일하셨다고 했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 5년 동안 쉬었지만, 큰딸이 살기 어렵다고 하여 다시 돈을 벌러 한국에 간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간호 일을 하실 예정이고, 이미 다 연락이 되어 있다고했다.
"요즘은 농촌 호구가 혜택이 많다고 들었슴다."
"야… 앞으로 한 달에 3000원씩 준다는데, 통과돼야 어찌지… 60년대에 생산대에 있을대 우리 몸으로 일해서 식량을 나라에 다 받쳤는데, 농민한테 주는 게 젤 없소. 밭이 있으니 밭에서 한 4만원 들어오구. 다른 건 없소, 한 달에 150원밖에 없소… 동생들이 있는데, 옛날엔 다 내가 대줬지. 근데 이젠 그놈들이 더 잘 사오. 둘째, 셋째, 넷째 다 공,농,상,병 우리집은 다 있소. 이제는 투이슈비도 다 높소. 농민이 젤 못하오… 그나마 나는 한국 가서 돈 좀 벌었지…"
할아버지는 내게 한국에 왜 가냐고 물으셨다. 나는 박사 공부하러 간다고 답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연세가 궁금해 물었다.
"할아버지, 혹시 연세가 어떻게 됨까?"
"내? 77이요."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나는 작은 케리어를 꺼내려고 까치발을 들었다. 몇벌 팔을 내밀어 케리어를 제대로 꺼내지 못하자 할아버지가 도와주셨다. 단 한번에 케리어를 내려주었다. 77세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을때 할아버지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걸으셨다. 가끔 뒤돌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쁨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몇 걸음 빨리 움직여 함께 입국심사 줄에 섰다.
내 차례가 되어 대기 줄이 나뉘자 할아버지와 떨어졌다. 안내원이 할아버지께
"등록증이 없어 자동 입국 심사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할아버지는 다른 대기 줄로 향하셨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입국심사를 마친 뒤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도 할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괜히 공항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끝내 다시 뵙지 못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차가운 공기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할아버지의 희망찬 눈빛과 씩씩한 발걸음이 계속 떠올랐다. 77세라는 나이에도 가족을 위해 먼 길을 다시 떠나시다니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별 인사를 못 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 짧은 만남과 대화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건강하시길, 그리고 한국에서의 시간이 부디 무탈하길 바란다.
공항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위 비행운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여정이 그 위에 그려져 있는 듯했다.

따뜻한 할아버지와 날쌘 할아버지. 👏 좋은 어른을 만나면 기분이 좋죠. 저는 지난 해에 비행기 좌석에서 기내식 타임에 물을 바닥에 엎질렀는데, 미안해하면서 닦으려고 했더니, 옆에 앉은 할머니께서 “이미 벌어진 일인데 너무 애쓰지 말아요” 하는 말이 참 수수하고 지혜로운 말이더군요. 사람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오랜 세월의 인생 지혜가 담겨 있는거죠 ~~
이야기가 참으로 따뜻합니다. 일상의 디테일과 고마움을 간과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고 수 없이 되새기고 글로 작성하여 공유해주시는 이 과정들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런 느낌을 받을 때 마다 세상이 살만 한 것 같게 느껴집니다.
세상은 따뜻할때도 있어야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