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인생의 화두가 되기 전 난 참 안온한 생활을 해왔단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마련해둔 튼튼한 울타리에서 따수운 밥을 먹고 집안일은 안중에도 없이 온통 바깥 세상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커보니 그때 생각들은 실없는 고민에 불과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머리를 덮쳐왔다. 어느새 집은 나의 꿈이 되어 있다. 이사는 점점 고달파지고 정말이지 이젠 정착하고 싶다. 20년 후는 달라져 있을까. 한 줌의 희망을 안고 아직 젊음에 감사하며 매일을 살아내 본다.

5년 여 간의 자취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갓 한국에 왔을 때 에어컨 없이 첫 여름을 보냈었다. 버스에서 맞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반가워 날 정도로 호된 더위 신고식을 치렀다. 원룸을 네 집 거치면서 에어컨, 배수구 청소와 동파된 보일러 수리에 거금을 반 강제로 내주기도 했다.

월세 살이를 청산한 지 2년 정도가 흘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면 결연하게 ‘NO’를 외치겠다. 하지만 그 5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시절이었음도 분명하다. 사계절마다 장단점을 피부로 느끼면서 몸도 마음도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후회 없이 되뇌게 된다.

파란만장한 순간을 경험하게 해줘서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까. 모든 것이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걱정은 금세 가벼워진다. 머물다 떠날 이 집에선 또 어떤 계절을 지나게 될까. 내 최종 정착지는 도대체 어디가 될까.

여름 장맛비가 야무지게 쏟아붓는 밤이다. 어느 건축학자는 우산을 쓰고 있는 것 만으로도 빗속 자신만의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백색소음 속에서 완벽한 1인용 건축이 완성되는 것이다. 참 와닿는 말이다.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그게 내가 바라는 집이다.


썸네일 BY SUNooo

https://grafolio.ogq.me/project/detail/153258fd324b402c87f1b2e01699d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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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집은 벽과 지붕으로만 지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 견뎌낸 계절 그리고 조용히 감내한 여름밤의 장마비로 지어진다.
    에어컨 없이 보낸 여름, 동파된 보일러를 걱정하며 버텼던 겨울밤…
    그 시절 당신은 이미 건축가였고 설계사였다.
    당신은 매 순간, 스스로의 집을 짓고 있었다. 비록 출입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지라도 이제 곧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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