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나무의 뼈를 바람이 두드리는 밤
흙속에 스며드는 빗소리가
땅의 속살을 더듬는다
촉수를 거꾸로 펴고
새들이 천국을 묻어둔 곳
손등으로 하늘을 받들어
둥지 트는 법을 익혔다
그림자를 땅속에 파묻고
빛이 하늘에 숲을 일구니
줄기냐 뿌리냐
하늘이냐 땅이냐
하늘이 땅으로 뿌리 펼치고
땅이 하늘로 가지 쌓을 때
별은 땅속으로 흘러들고
이슬은 흙속에 별자리를 수놓는다
거꾸로 선 빛의 역설이여
목마름이 스스로를 적시는 법
바다의 거울에 비친 별들
땅 속 화분에 피여난 하늘
백년 푸른 고독을
나이테에 새겨두고
고목은 세월을 삼키며
황사에 맨 몸으로 맞서네
죽은 뿌리는 흙이 되고
살아있는 흙은 뿌리가 된다
언덕을 적시는 장마도
둔덕에 핀 장미도
땅 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의 사슬로 뭉쳐흐른다
겨울이 죽은 한 줌 골회를
봄의 돌틈에 거름으로 묻을 때
손금으로 새긴 운명은
피의 강을 따라 돈다
한 그루 그리움이여
한 덩어리 뿌리여
그늘을 땅에 밟고
그물로 흙을 붙잡아
둥근 실로 계보를 동이고
투명한 끈이 족보를 엮는다
실낱이 가늘게 가늘게
무너지는 석양을
인내의 산에 묶어두었다
천년을 뚫은 그리움이
깊은 어둠속에서
땅 밑에 별자리를 그릴 때
그 외로움마저
장미의 가시가 되어
슬픔의 마디마다 흘러들었더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수천갈래 기억들이
계절의 문을 넘나드니
영혼에 담긴 그리움을
한방울 핏줄에 떨구어
네 맥박이 되고 싶네
지평선이 노을을 접을 무렵
황혼에 흔들리는 저 달을
고향 하늘에 옮겨 심는다
빛은 어찌
높은 곳에서 무게를 버리는가
그림자는 어이
낮은 곳에서 길을 여는가
한 줌 사막을
투명한 밀폐공간에 가두니
시간의 부피를
뿌리가 발끝으로 떠받친다
낙엽이 흙 되던 날
낮과 밤이 뒤바뀌고
모래시계가 뒤집혓다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땅에 가지를 뻗으면
빛과 그림자가 맞물려
해가 지고 달이 핀다
침묵의 송곳으로
시간의 뼈를 뚫는 일
기울어진 모래병에
공든 탑을 쌓는 일
어둠의 심연에서 빛이 빠져나올 때
줄기의 몸에서 뿌리가 튀여나온다
깊이의 부력이
높이의 중력을 들어올릴때까지
어둠의 끝자락에서
기다림 한 알이 곱게 피어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