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사회에서 자주 반복되는 말이 있다.
“조선족이 사라지고 있다.”
중국의 민족정책, 타지로의 이주, 언어 환경의 붕괴, 혼인의 변화…
이 모든 요인이 조선족 집단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는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진단에는 이상하리만치 중요한 질문이 하나 빠져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들은 공동체를 살리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붕괴를 설명하는데서 멈춰 있는 이야기인가? "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더 이상 문제를 외부에서만 찾을 수 없다. 붕괴를 가속시키는 힘은 오히려 공동체의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작동하는 정체성 인식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조선족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뿌리는 한국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기원은 같지만 자신을 규정하는 감각은 다르다.
기원은 공유하지만 서사는 분리되어 있다.
한국과 연결되어 있되, 궁극적으로는 독립된 민족으로 자신들을 상정한다.
이 인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생존 전략의 논리였다. 중국이라는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인(조선인)과 다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고, 동시에 민족성을 붙잡기 위해서는 완전한 중국인으로 흡수되는 것 또한 끝내 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임시방편이 영구한 이념으로 굳어지는 순간,
그 이념은 공동체를 지키는 장치가 아니라 공동체를 안으로부터 무너뜨리는 힘이 된다.
민족 공동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혈통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족 공동체란 공유된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감각, 같은 앞날을 함께 상상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는 같은 이야기 안에 있다”는 집단적 상상력의 문제다.
그러나 지금 조선족 담론은 공동체의 붕괴를 한탄하면서도 정작 그 공동체를 성립시키는
상상력의 조건을 스스로 끊어내고 있다.
“우리만의 역사와 미래는 따로 있다.”
이 사고가 단단해질수록 조선족은 중국이라는 체제 안에서는 점점 더 희석될 것이고
한민족 전체의 서사 속에서도 점점 더 고립될 것이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아무도 조선족을 함께 미래를 그릴 공동체로 상상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외부의 배제라기보다 내부 언어가 만들어낸 고립이다.
중국은 다민족의 흡수를 멈출 이유가 없다.
국가는 언제나 더 단순한 국민을 원한다.
한국 역시 스스로를 분리된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집단을 굳이 공동체의 일부로 상상해 줄 이유를 잃어간다.
이 사이에서 조선족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버림받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보자.
버림받기 전에 우리는 이미 스스로를 분리해왔다.
공동체는 타인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을 때라야만 타인 또한 그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다.
이제 선택지는 많지 않다.
하나는,
완전한 중화민족 서사로의 완전한 흡수다.
공동체는 끝나겠지만, 개인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편한 삶을 얻을 수 있다.
또 하나는,
분리된 민족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길이다.
상징성은 전설로 오래 남겠지만 그 상징을 떠받칠 실체는 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이 남아있다.
한민족 전체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 속에 다시 자신을 위치시키는 일이다.
그것은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견딘 채 연결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타협보다는 자존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조선족만의 것”이라는 말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한다.
민족은 순수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서사로도 존속한다.
조선족 공동체가 정말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외부를 향한 호소가 아니라 자기 인식에 대한 결단이다.
공동체의 해체를 걱정하면서 공동체를 해체하는 이야기를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민족은 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이야기로 남는다.
그 이야기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순간,
공동체의 미래는 어디에서도 오지 않는다.
PS. 이 글은 내부로부터의 비판이다.

뼈때리는 잠언.
통찰력이 있는 글! 잘 읽었슴다!
내부 시각, 내포된 자기 모순을 예리하게 집어냈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