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6년이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말해라서 그런가,이 한 달은 유독 ‘말’에 대한 깨달음이 많았다ㅎㅎ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를 닮아 오지랖이 넓은 편이었다. 주변에서는 친구들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 심지어 나보다 한참 연상인 언니오빠들까지도 나에게 자주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건넸다고 느낄 때면, 나 역시 은근히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기만 하면, 묻지도 않았는데 해결책부터 꺼내 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삼십 대를 지나서야 이 습관을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내려놓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격이 있다.
작년여름부터 ,반년 가까이 한 친구의 연애 고민을 들어주고 있었다. 상황도, 문제도 늘 같았다.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답답함이 쌓였다.
‘그 사람이 너를 네가 생각하는 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를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그래도 직접적이지 않게, 최대한 돌려 말하며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방어적으로 내 말을 밀어냈다. 그에게는 상처가 있고 사정이 있다며 넌 그남자를 잘 모른다며, 같은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과 마음이 다 지쳐있었다. 순간적으로 친구에게 섭섭한 감정까지 들었다. 친구가 더 이상 가치 없는 관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였는데 ,친구는 그게 기분이 나빴던것같았다.
그러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오만했던것 같다.
사람은 각자 자라온 환경도, 성향도, 성격도 다르고,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나는 왜 내 조언이 옳다고 확신하며 보이지 않는 교만을 품고 있었을까.
어쩌면 친구는 애초에 내 조언따위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자주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이유로
나는 나 자신을 마치 ‘해결사’처럼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친구로서, 제삼자의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문제를 분석해 주고 문제를 짚어주면, 상대가 그것을 고마워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타인의 과제를 내 과제로 잘못생각하고 있었다. 허락받지 않은 도움은 본질적으로 강요일 뿐이며, 일종의 "폭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상대의 저항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불러온다.
그래서 이제는 다짐한다.
요청되지 않은 조언은 입에 담지 않기로, 모든 것을 안 듯, 꿰뚫어 본 듯 말하는 오만을 경계하기로.
잠언 17:27–28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마음이 온화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새해에는 말을 최대한 아끼며 살아가고자 한다.
상대가 스스로 깨닫고 걸어 나올 시간을 존중하고자 한다.
그 기다림이 결국 나를 더 유연하고, 더 부드럽게 빚어 주기를.
<지혜의 언어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