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람들과 잠깐 문학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묵혀뒀던 모리스 블랑쇼를 다시 펼쳐봤다. (잊기전에 정리해둔다.)
블랑쇼가 문학을 보는 방식은 꽤 인상적이다. 핵심은 이거다.
문학은 정답을 선포하는 언어가 아니라, ‘말이 될 수 없는 것’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언어라는 것이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쓰는 언어는 대개 핵심만 겨냥한다. 무슨 내용인지, 결론이 뭔지, 누가 뭘했는지. 말하자면 언어를 정보전달 도구로 사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사랑, 죽음, 고독, 상실, 관계의 변화, 밤, 타자 등—은 그렇게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말로 딱딱 떨어지게 설명되는 순간, 오히려 본질이 빠져나가버린다. 블랑쇼는 그것을 ‘바깥’이라는 말로 부른다. 삶에서 우리를 실제로 움직이는 것들은 설명 가능한 내부가 아니라, ‘바깥’ 에 있다는 거다.
그래서 문학은 정면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설명 대신 주변을 맴돌고 중심 대신 가장자리를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 남긴 흔적, 사랑이 지나간 뒤의 적막까지 담기에는 밋밋하다.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문학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네가 떠난 후에도 난 식탁에 숟가락 두 개를 꺼내놓았다.”
여기엔 사랑이라는 단어가 안나온다. 그런데 사랑의 잔여, 부재, 습관, 상실감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밀려온다.
모리스 블랑쇼는 바로 이런 지점을 본다. 문학은 무언가를 설명하기보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의 기척을 들려주는 언어라는 것.
그래서 좋은 문학은 사건이 터진 뒤를 보고하는 게 아니라, 사건 ‘바깥’의 밀도를 다룬다. 의미화 되지 않는 것들, 형태를 갖추지 못한 예감, 스스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 같은 것을 천천히 비춘다.
결국 문학은 결과보고서가 아니라는 것임.
명명할 수 없는 것들의 주변을 서성이는 언어에 가깝다는 것임.
아마 그래서 우리는 좋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줄거리보다도 별거 아닌 어떤 장면 하나가 오래 남는지도 모른다.
모리스 블랑쇼 식으로 말한다면;
문학은 진술이 아니라 접근이다.
Literature is not a statement, but an approa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