离职日记 09 – 빈 커서

아직은 적지 않기로 했다


  1. 离职日记 01 – 그래도 안녕
  2. 离职日记 02 – 따리행
  3. 离职日记 03 – 창산, 사촌오빠의 전화
  4. 离职日记 04 – 보름이 지났다
  5. 离职日记 05 – 지금은 다 좋아 보여요
  6. 离职日记 06 – 재즈바, 모닥불 파티
  7. 离职日记 07 – 강호에서 다시 만나요
  8. 离职日记 08 – 离职 TODO List
  9. 离职日记 09 – 빈 커서
  10. 离职日记 10 – 강호의 현재
  11. 离职日记 11 – 따리의 풍경
  12. 离职日记 12 – 뭍으로
  13. 离职日记 13 – 아줌마 정신차려, 낭만은 허락해야지
  14. 离职日记 14 – 번외: 남자 이야기
  15. 离职日记 15 – 잊지 못했던 건 그녀가 아니었다
  16. 离职日记 16 – 서울 그랜드하얏트
  17. 离职日记 17 – 묻지 않는 사람의 끼니
  18. 离职日记 18 – 환경부터 바꿔보자
  19. 离职日记 19 – 사이에출판
  20. 离职日记 20 – 오호라
  21. 离职日记 21 – 번외: 우리가 만났던 방
  22. 离职日记 22 – 빈집들, 아니 새 집을
  23. 离职日记 23 (마지막 편) – 지금도 다 좋아 보여요

#4를 쓰려다가, 손이 한번 멈췄다.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애매한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커서는 같은 자리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낮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빛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카페 안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짧게 숨을 뱉는 소리
우유 거픔이 끓어오르는 미세한 진동
컵이 테이블에 닿는 쿵 하는 작은 침묵에 가까운 낙하
이 모든 소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보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노트북을 닫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떳다.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4를 막상 적으려고 하니 손이 더 느려졌다.
적는 순간, 그게 나를 규정해버릴 것 같아서.
아직은 아닌데, 라는 상태를 굳이 어떤 문장으로 확정짓는 일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졌다.
나는 몇번 키보드를 두드릴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손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남아있던 미묘한 긴장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이 리스트의 나머지는, 당분간 비워둔다.
#4
#5
#6
#7 …
아직은 적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기다리는 중이니까…
그토록 꿈꿔왔던 그 어떤 장면을.

그래서 나는 아직, 그 상상을 지워버리지 않기로 했다.
당장 선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은 채로.
어쩌면
그것도 이 리스트 어딘가에 적히게 될
하나의 항목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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