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오랜만에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책을 펼쳤다.
무난하게 읽어 내려갔지만, 아이는 조금 듣다가 지루하다고 한다.
-그렇게 읽으면 재미없단 말이야.
하아. 아이의 주문에 맞게 일부러 과장한 목소리로 우스꽝스럽게 읽었다.
아이가 깔깔대기 시작한다.
엄마가 읽고 있어. 내가 책에 나오는 고릴라 연기 할게!
아이는 고릴라처럼 침대 여기저기를 쓸고 다닌다.
두 팔로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고, 이상한 표정을 하고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기도 한다.
그런 그녀를 흘끔 보고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조금 더 과장한 표정과 목소리로.
아이가 갑자기 빵 터지면서 쓰러진다. 말도 못 하고 배 아프다면서 온몸이 들썩이게 웃었다.
영문도 모른 채 왜 그래?라는 과장된 얼굴로 눈썹을 찡긋하면서 아이를 바라보니 그 표정이 웃기다고 또 웃는다. 아이가 진정을 좀 하고 난 뒤 뭐가 그렇게 웃겼냐고 하니까 엄마가 어느 단어를 읽을 때 갑자기 코가 너무 길어지면서 표정이 웃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표정을 따라 하더니 또 쓰러지면서 웃는다.
속으로 웃음 포인트가 낮아서 좋네 라는 생각을 했다. 뭐 네가 그리 즐겁다면야.
그녀가 원하는 대로 억양도 바꿔가면서 읽었다. 과장된 영국식 발음으로 읽어도 키득키득하고, 목소리를 바꿔가면서 읽어도 즐거워했다. 그녀는 마냥 즐거운가보다.
번갈아가면서 읽으면 그녀는 언제 한 번 그냥 읽는 법이 없었다. 일부러 콩글리쉬 발음으로 읽지 않으면, 이상한 발음으로 읽는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나면, 아니 그렇게 놀고 나면 그녀는 엄청 만족스러워한다.
엄마랑 책을 읽는 게 제일 재밌다면서. 저녁에 또 읽자고 하면서 기분 좋게 학원을 간다.
정신 없지만, 그래도 그녀를 웃겼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일요일에는 르 스페이스에 새로운 전시가 나와서 보러 갈 예정이었다.
토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아이랑 친한 친구 엄마가 연락 왔다.
일요일에 혹시 친구 집에 가서 같이 놀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아이한테 물었다.
-일요일에 엄마빠랑 전시 보러 갈래 친구네 놀러 갈래?
-OO이랑 놀 거야! 바비 같이 놀기로 했어!
오호~ 자유는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건가.
남편은 내심 섭섭했던 모양이다. 2순위로 밀렸다는 생각에.
어느 육아 전문가가 그랬다.
아이가 열 살까지 엄마와 친하고 관계가 좋은 건 엄마가 잘해서가 아니고, 아이가 엄마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으로 엄청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엄마가 잘한 건지는 열 살 이후부터.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되고 지난 십 년 동안 아이에게서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아이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 그냥 엄마라서 좋아해 주는 유일하고 본능적인 사랑이다.
딸아이는 만 10살이다. 만 11세 생일까지 딱 6개월 정도 남았다.
엄마를 향한 본능적인 사랑도 이젠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아이가 엄마보다는, 스스로를 찾아가려는 여정이 곧 시작된다.
키도 훌쩍 커버렸지만, 아직도 애기애기한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침에 학교에 내려줄 때 아직도 엄마 뽀뽀 하면 즐겁게 볼 뽀뽀를 해준다.
어느 날엔가 볼 뽀뽀를 거부할 아이를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귀하게 보내야겠지.
사랑이 점점 떠나간다.
사랑이 슬슬 떠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엄마와 멀어지려고 하는 아이의 노력을 기쁘게 바라봐줘야겠지.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아이와 보낸 십 년, 이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다시 돌아봐도 가장 잘한 일은 즐거워도 힘들어도 오로지 아이 곁을 지켰던 일이다.
내가 원했던 육아를 실컷, 마음껏, 질리도록 해본 셈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그래도 섭섭하겠지.
엄마빠 앞에서 재롱부리던 꼬마가, 엄마빠랑 보드게임하면서 삐지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하던 아이가 엄마빠보다는 친구를 더 찾고 그러면…
그래도 기쁘게 보내줘야지.
사춘기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나이가 되면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아낌없이 돌려줘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두렵다.
무심코 던진 아이의 짜증 한마디에 내 마음이 바사삭 무너질 까 두렵다.
그러니, 그냥… 뭘 해도 즐거운 너와 지금 함께 많이 웃자. 웃을 수 있을 때 많이 웃어두자.
시간이 아직 얼마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