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한 친구 녀석의 이상형은 고중때부터 시종여일하게 말할 줄 아는 ‘삼룡이’와 ‘이불 같은 남자’였다. 고중때 조선어문에서 배웠던 <벙어리 삼룡이>라는 글 속의 ‘삼룡이’의 충성스럽고 우직한 품성에 더해 벙어리 아닌 말할 줄 아는 남자라면 완벽한 이상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삼룡이의 특성이 ‘이불’ 같다는 것이다. 나를 자상하고 무던하게 꼼꼼이 여며주는 이불, 내 흉이나 흠까지도 다 덮어 감춰주는 이불… 꽤 그럴 듯한 해석이다.

한여름, 에어컨을 26도에 설정하고 두툼한 솜이불을 목까지 덮고서 ‘이불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라던 그 말을 음미해 본다. 한때 재치 있는 남자, 지적인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적이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에 생각해 보니 다 ‘이불 같은’, 말할 줄 아는 삼룡이보다는 못해보인다. 그 듬직함, 우직함이 그립다.

그러나 유달리 가볍고 부드럽다는 것을 내세워 시중에 팔고 있는 비싼 거위털 이불에서는 그런 듬직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불 안감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덮자마자 스르륵 미끌어떨어지기가 일수였고 가볍디 가벼운 이불은 안전감이라고는 없었다. 

이불 밖의 냉기를 물리쳐줄 것 같은 믿음이 그 실크 이불에서는 느껴지지가 않았다. 자려고 누웠는데 내일, 그리고 모레 해야 할 일들이 꼬리에 꼬리름 물고 떠오르고 낮동안 저질렀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이 떠올라 불안한 내 마음을 그 가벼운 이불은 잠재워주지 못했다.

내가 선호하는 이불은 두툼한 솜을 누빈, 무명천으로 거죽을 한 이불이다. 열대야로 절절 끓는 여름밤에도 솜이불을 포기할 수 없다. 꽁꽁 여며 덮기엔 더워서 이불 한쪽귀로 간신히 배나 가리고 잔다고 해도 솜이불이 좋다. 그렇게 자야 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향집에는 엄마가 시집 올 때 해왔다는 비단 이불이 있다. 빨강과 초록색의 비단으로 된 이불 겉면에 안감은 눈같이 흰 무명천으로 되었다. 그것을 모본단 이불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따왔다. 대개 이렇게 생긴 이불이다.

별로 덮는 날이 많지 않았지만 엄마는 여름이면 안감을 뜯어 씻어 말리고 풀을 먹인 뒤 방치질을 하고서는 다시 꿰매였다. 이불 안감 무명천이 풀이 죽지 않아 덮으면 네 귀가 어정쩡하게 들리여 냉기를 막아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이불이 좋았다.

손님이 올 때여야만 꺼내는 이불이었는데 어린 내가 그 이불을 너무 대놓고 탐을 내여 적이 멋쩍어진 손님이 나에게 양보할 때도 있었다. 네 귀 들린 그 무거운 이불을 덮고 나는 행복해하며 꿈나라에 들었다.

“엄마, 이제 내 시집 갈 때 꼭 이런 이불 해주세요.”하고 다짐을 받아두기도 했다.

내가 시집 갈 나이가 되자 그런 이불은 진작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불 가게 주인의 감언리설에 넘어가 그 즈음 최신 유행이라는 실크 이불을 사가지고 시집을 갔다. 부드럽고 화사하고 가벼운 그 이불에서는 어떤 안전감이나 안락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듯 불편하기만 했다. 신혼 때 잠깐 덮고 올려 놓은 뒤 그 이불은 다시 꺼내는 일이 없어졌다.

시어머님이 내 취향을 알고 고향에서 솜을 틔워 꽃이불을 해서 보내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잃어버린 뭔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묵직한 이불은 투박하나 듬직한 남편 품처럼 나를 안심하게 했다.

너무 귀해서 올려두기만 하고 별로 덮지도 않았던 엄마의 첫날이불은 아직 고향에 있다. 풀 먹여 빳빳해진, 서걱거리는 그 이불을 덮고 웃풍 심한 고향집 가마목에서 잤으면 좋겠다. 빳빳한 면 안감이 점점 풀이 죽고 길이 들어가는 과정 자체도 좋을 것 같다. 듬직은 하나 뻣뻣하기만 한 남자를 내 사람으로 사로잡아가듯이 말이다.

이제 와 이상형을 말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나에게 딸이 있다면 부디 이불 같은 남자한테 시집가라는 당부의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러면 나는 그 염원을 담아 이불을 해줄 것이다. 

좋은 솜을 두툼히 누비고 백설 같이 흰 무명천으로 안감을 한 그런 이불 말이다. 그저 보기에나 좋은 실크이불 같은 결혼생활이 아닌 서로에게 안전감을 줄 수 있는 듬직한 상대가 되길 바라는 내 모든 염원을 담아 한땀한땀 정성스레 기워만든 이불을 안고 내 딸이 시집을 가는 상상을 해본다. 

덜렁 아들만 하나인 내가 감히 해볼 생각은 아니지만 상상 속에서나마 풍요롭고 싶다. 아들에게 이불 같은 남자가 되는 염원을 걸어볼 수도 있겠다.

이 글을 공유하기:

mongsir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2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