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다리커피

니들이 커피맛을 알어? 솔직히 나는 아직도 커피맛을 잘 모른다. 커피 종류도 다양한 요즘엔 뭐 라떼고 카푸치노고 블랙이고 하는데 나는 달달한 라떼나 카푸치노도 좋지만 그래도 봉다리 커피가 제일 좋다. 블랙을 마시는 사람들의 원두찬양에 귀가 솔깃해져서 나도 한때는 원두를 사다가 갈아서 커피 내려 마셔 보았지만 역시 나에겐 고소하기는커녕 쓰기만 한 맛이였다.

어쩌다 카페에 친구랑 들러서 비싼 카푸치노를 시켜 마셔도 어쩐지 나는 종이컵에 담긴 믹스보다 못하더라…

내가 처음 커피란걸 접한건 첫데이트에서였다. 18살에 처음으로 연애라는걸 해보고 처음으로 남자와 손을 잡아본 나에겐 커피 또한 처음으로 접하는 생소한 물건이였다. 얌전히 학교와 집을 오가던 나에겐 그외에 사물이나 사람을 접할수 있는 기회가 없었었다. 순수하다 못해 백치미가 있는 나에게 어느날 불쑥 나타난 남자는 당황함 그 자체였다.

생각없이 아는 언니 따라간 식사자리에서 살짝 건방지고 재수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말투의 남자를 볼때까지만 해도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인연이였다. 남자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얼굴만 빨개져서 말도 몇마디 못해봤건만 대체 나의 어떤면에 반한건지도 미스테리였다. 제대로 멋 부릴줄 몰라 옷차림은 물론 화장조차 못해본 약간 촌스럽기까지 한 풋내기였는데 말이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열렬한 구애에 어찌할바를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남자가 무섭기까지 하였다. 그런 나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자꾸 찾아오는건지 아니면 진짜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나는 얼굴 몇번 보지도 못한 남자의 협박 아닌 협박에 의해 얼떨결에 그 남자의 여자친구가 되였다.

피해다니기에 급급했던 나였지만 데이트 한답시고 이끌고 간 구석진 골목의 어둑한 다방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두리번 거리며 따라 들어가 조그마한 탁자를 사이두고 허름한 소파에 걸터앉으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 묘했다. 첫데이트를 두려움반 설레임반인 마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남자와 마주 앉아 눈길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면서 어색하게 웃기만 하였다.

97년도 다방이란곳에서 싸구려 봉다리 커피를 한잔씩 주문하고 앉아서 무슨 말을 했던지 기억은 안나지만 쓰겁고 맛도 없던 커피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더불어 소문만 무성한 깡패라던 남자의 조금 긴장한듯 그러면서도 애써 태연한척 대범하게 나에게 롱담을 던지던 남자의 좋아하는 티가 역력한 눈도 기억에 남는다. 커피 한모금을 마시는 순간 찌프려진 내 얼굴에 재미있고 신기한것을 발견한듯 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남자는 아마 지금쯤은 나랑 첫 데이트를 다방에서 했었단걸 기억도 못하겠지… 나는 아직도 그 사랑스럽다는듯 쳐다보던 남자의 하트가 떨어질듯한 눈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그는 까맣게 잊고 있겠지?

난생처음 사귀는 남자는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서 사귄것도 아니고 그냥 두려움과 신기한 존재였다. 커피를 처음 입에 댔을때의 맛처럼 새로운 세계에 향한 나의 호기심 충족을 위한 존재같았다. 매번 만나는것도 먼저 보고싶어서 만난것이 아닌 피동적인 만남의 연속이였다. 그러면서도 사랑스럽다는듯 보는 그 남자가 싫지 않았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되는 시선이 좋았고 어디에도 마음을 못 붙이고 항상 불안에 떨던 마음이 나만 관심해주고 사랑받는다는것에 위안을 느끼고 감동을 불러왔다. 그렇게 나는 맛을 모를때는 그러려니 했던것이 정작 커피의 맛을 알고 나면 뗄수 없는것처럼 카페인에 중독되듯 점점 그 남자에게 중독되여 가고 있었다.

어둑한 골목끝에 서서 내가 집문을 다 들어갈때까지 지켜보던 남자… 아는척하며 뽐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진짜인듯 믿어주던 남자…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항상 안전감이 없는 나에게 미래를 기약하진 못해도 최선을 다하던 남자… 뾰로통하니 심술을 부리고 말도 안되는 생떼를 부려도 욱하는 성격답지 않게 인내심을 총동원하여 어르던 남자…

이른 새벽에  "나 어디게?" 하는 전화를 받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문을 열었을때 문밖에 서서 두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던 그 푸르스름한 새벽의 남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돌이켜보면 달달함으로 가슴이 설레면서도 그 달달함을 끝까지 같이 못한 씁쓸함이 몰려든다.

아무때나 보고싶다고 무작정 찾아와서 "문앞이야 나와" 하던 라떼같은 남자의 달달함만 기억했으면 좋으련만  나에게는 봉다리커피가 운명인듯하였다. 라떼처럼 달달하기만 하던 남자가 세월이 지나면서 뒤맛이 쓰거운 봉다리커피처럼 씁쓸한 맛만 나는 남자가 돼버렸다.

어쩌면 커피맛을 모르던 18살의 나처럼 달달함을 느끼지 못하고 쓰겁다고 투정만 하는 나에게 지친 것일수도, 아니면 워낙에 아메리카노와 라떼처럼 서로 맞지 않는 입맛을 봉다리커피로 중화하려 했던 두사람이 끝내는 자기 입맛을 제대로 찾은 것일지도… 마실때는 모르다가 안 마시면 생각이 나는것처럼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가 고통스럽고 괴로웠다고만 생각했던 날들이 달달함이 더 많았다는걸 깨달았다.

그래서인가 나는 옛것에 집착하는 사람마냥 온갖 추억거리를 다 끌어내며 아직도 과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바보처럼 좋고 비싼것도 많은데 싸구려를 고집하는걸 보면 나에게는 아마도 상처로 얼룩지고 비참하여 돌아보기도 싫었던 예전이 행복의 중심이였던것 같다. 조용한 새벽에 꿈에서 깨여볼때면 덧없이 흘러보낸 지난날이 더 그리워지곤 한다.

봉다리커피가 그사람때문에 좋아진건지 아니면 진짜 달달한 것이 좋아서 여직껏 쭉 좋아하는지는 나절로도 뭐라 정의 내리기 애매해도 우아하게 예쁜 꽃잔에 블랙을 타서 쓴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사람보다 종이컵에 봉다리커피 쭉 찢어 넣고 허드레를 하는 사람이 더 진솔해 보이는건 아마도 가난할때 만난 봉다리커피같은 그 남자때문이리라.

요즘 애들은 첫사랑이 기껏 봉다리커피의 기억이라면 뭔 싸구려 취향이냐고 웃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봉다리커피처럼 쓰거운 맛중에 달달함을 담은 절절했던 첫사랑이라서 진한 블랙의 맛도 달콤한 라떼도 향긋한 카프치노도 대체를 못하는것 같다.

장렬하고 처절하게 끝나버린 첫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결실이 있어서 울다가도 웃는 나처럼,  또는 지금도 돌이켜보면 쓰거웠지만 달달함이 동반한 나의 사랑처럼, 앞으로 살아가야할 수많은 날들 역시 씁쓸하지만 달달함이 같이 할 인생처럼 봉다리커피가 좋은것은 아마도 씁쓸하고 달달한 나의 인생을 닮아서가 아닐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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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세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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