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의 거대한 유리 돔 밖으로 창백한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이 거대한 공간에서, 예린은 철저히 혼자였다.
그녀는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손에 쥔 여권과 비행기 표를 내려다보았다.
[ICN → TSN (Tianjin)]
최종 목적지는 중국 허베이성 탕산(당산). 하지만 직항이 없어 톈진을 거쳐 기차를 한번 환승해서 이동해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그곳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중풍으로 5년째 누워 계신 아빠와 그 곁을 억척스럽게 지키는 엄마가 있는 곳이었다.

간밤의 전쟁은 꿈이 아니었다. 호텔 로비 카펫에 널브러져 있던 약재들의 비릿한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도는 듯했다. 그녀는 아트리움 대학교 기숙사에 들러 늘 메고 다니던 노트북 백팩과 여권, 지갑만 간신히 챙겨 새벽 공항버스를 탔다. 다른 짐가방 하나 없이, 마치 야반도주하는 죄인처럼.
“후우…”
예린은 마른세수를 하며 밤새 꺼두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켜지자마자 부재중 전화 알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대부분이 왕펑이었고, 간간이 시어머니의 번호도 보였다. 그리고 그사이에,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이름 하나가 섞여 있었다.
[강현수]
예린의 손가락이 그 이름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전화를 걸면 안 된다는 이성과, 목소리라도 듣고 가야 한다는 감정이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것이 그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누나? 예린 누나 맞지?”
현수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이 분명했다.

“응, 현수 씨… 나야.”
예린은 최대한 목소리의 떨림을 감추려 애썼다. 하지만 밤새 울어서 갈라진 목소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밤새 전화기는 꺼져 있고, 기숙사에도 없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시댁 식구들이랑은…”
현수의 걱정 어린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 따뜻한 염려가 오히려 예린의 가슴을 예리한 칼날처럼 후벼 팠다.
‘미안해, 현수 씨. 어제 시댁이랑 호텔에서 잠깐 만났다가 헤어졌고, 별다른 일은 없었어…’
예린은 입술을 꾹 깨물어 울음을 삼키고, 준비했던 거짓말을 꺼냈다.
“…현수 씨, 놀라지 말고 들어. 나 지금 공항이야.”
“공항? 갑자기 그게 무슨… 어디 가는데?”
“중국. 탕산에 있는 친정집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갑자기? 혹시 어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아빠가, 위독하시대.”
수화기 너머로 현수의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버님이?”
“응. 어젯밤에 갑자기 연락받았어.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다고…”
현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예린의 가정사를 잘 알고 있었다. 화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또 캠퍼스를 산책하며 예린이 털어놓았던 이야기들.
‘아빠가 중풍으로 쓰러지신 지 오래됐어. 거동도 못 하시고 말씀도 어눌하신데… 5년 넘게 엄마 혼자서 대소변 받아내며 간호하고 계셔. 그래서 늘 마음이 무거워.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때마다 현수는 예린의 손을 잡아주며 묵묵히 위로해주곤 했었다. 그랬기에 현수는 예린의 급작스러운 출국을 단번에 이해했다.
“저런… 어떡해. 어머니 혼자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응. 엄마가 너무 무서워하셔서… 내가 가봐야 할 것 같아.”
거짓말이었다. 아빠의 상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편찮으신 아빠를 핑계로 삼아야 하는 자신이 징그러웠지만, 현수를 납득시키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그럼 진작 말을 하지. 내가 공항까지 데려다줬을 텐데. 지금이라도 갈까? 비행기 시간 언제야?”
“아니야. 곧 탑승이야. 오지 마.”
예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그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현수 씨. 나… 당분간 한국 못 올 수도 있어. 가서 엄마랑 아빠 곁에 있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탕산에 도착하면 이메일로 교수님께 먼저 사정 말씀드리고 전화드리려고 해…”
“알겠어. 당연히 그래야지. 누나가 얼마나 부모님 걱정했는지 내가 알잖아.”

현수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는 언제나처럼 그녀의 아픔을 먼저 헤아리고 있었다. 그 착한 마음이 예린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가서 푹 쉬어. 어머니 잘 챙겨드리고. 누나 건강도 챙기고. 연락은 할 수 있지?”
“…노력해볼게. 경황이 없어서 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기다릴게. 아버님… 괜찮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위로의 말. 하지만 예린에게는 작별의 말처럼 들렸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톈진행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나… 이제 타야 해.”
“누나.”
현수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조심히 다녀와. 그리고… 사랑해.”
그 순진무구한 고백.
예린은 그만 피식, 하고 힘없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바보 같은 사람.’
자신의 여자가 지금 어떤 지옥을 겪고 도망치는 중인지도 모른 채, 그저 해맑게 사랑을 속삭이는 남자. 그 무구한 순수함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예린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현수 씨.”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자, 가장 잔인한 작별 인사였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화면이 까맣게 꺼졌다.
예린은 도망치듯 탑승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비로소 참았던 안도감이 밀려왔다.
친정. 비록 아픈 아빠가 누워 계시고 병수발로 지친 엄마가 있는 고단한 집이지만, 지금 예린에게는 그곳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시어머니의 감시도, 남편의 기만도 없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도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엄마’가 있는 곳.

잠시 후,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창문 아래로 성냥갑처럼 작아지는 서울의 풍경이 보였다. 저 어딘가에 현수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사랑한 화실, 그녀의 열정이 숨 쉬던 곳.
예린은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거대한 잿빛 캔버스가 펼쳐졌다.
사랑했던 남자는 지상에 남겨두고, 증오하는 남편에게서 도망쳐, 엄마의 품으로 숨어드는 길.
비행기는 서해를 건너, 그녀의 고향 탕산을 향해 묵묵히 날아가고 있었다. 그 길고 외로운 비행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린은 알 수 없었다.
つづく
「本小说为作者独立创作的虚构故事,所有人物、情节、背景均为艺术加工,与现实中的任何个人、团体或事件无任何关联。若有巧合,纯属偶然。
본 소설은 작가가 독자적으로 창작한 허구적 이야기로, 모든 인물·줄거리·배경은 예술적 가공의 결과이며, 현실 속 개인·단체·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 유사점이 있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금기된 캔버스
제1장: 새로운 생활의 캔버스
제2장: 빗속의 만남
제3장: 색채의 공명
제4장: 그라데이션 컬러
제5장: 심연의 대화
제6장: 기교의 감옥, 빗장 너머의 시선
제7장: 박제된 초상과 소주 한잔
제8장: 뭉개진 형상, 주체의 탄생
제9장: 비명과 침묵의 밸런스
제10장: 남편의 방문, 그리고 해석된 비명
제11장: 증명된 <갈망>, 그리고 빗속의 동행
제12장: 거짓 없는 몸, 잔인한 기적
제13장: 무너진 유예, 다시 쓴 가면
제14장: 깨진 독, 쏟아진 기만
제15장: 하늘에 흩뿌린 거짓말
제16장: 가장 안전한 공범
제17장: 지워진 흔적, 차가운 다짐
제18장: 황금 감옥의 대가
제19장: 회색의 시간을 넘어
제20장: 비로소 채워진 캔버스 (最終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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