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햇살이 베일처럼 아트디움 캠퍼스 예술동 3층 공동 화실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비스듬히 쏟아져 내렸다. 예린은 문 앞에 서서 앞으로 자신의 새로운 터전이 될 이곳을 바라보았다. 공기 중에는 익숙한 기름 냄새와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의 떫은 향이 섞여 있었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보았던 그 정제되고 규칙적인 풍경과는 사뭇 다른 생동감이었다.

    "신입생 장예린 씨?"

    온화하지만 사무적인 목소리에 예린이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에서 서류철을 든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네. 맞습니다."

    "대학원 조교 이수진이에요. 과 사무실에서 연락받았죠? 이번 학기 유화 수업 교육 보조 업무 배정표예요."

    수진은 서류 한 장을 건네며 안경을 고쳐 썼다.

    "예린 씨는 307호 화실로 가면 돼요. 실질적인 수업 준비랑 실기 관리는 '현수'라는 학생이 주도하고 있으니까 그 친구 지시에 따르면 될 거예요."

    현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예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갤러리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의 잔상이 스쳤다.

    "아… 현수 씨요? 그분이 수업을 이끄나요?"

    "네. 이미 학교 내에서는 독보적인 감각으로 교수님들 신임이 두터운 친구거든요. 조금 까칠할 순 있어도 배울 점은 많을 거예요. 그럼, 307호로 바로 가보세요."

    조교가 가벼운 목을 인사를 남기고 멀어지자, 예린은 배정표에 적힌 이름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이 되어 예린을 엄습했다.

    307호 화실 문 앞에 선 예린은 깊은 숨을 들이켰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선 화실은 사적인 열기로 가득했다. 현수는 입구를 등진 채 넓은 팔레트 앞에 서 있었다. 물감이 묻은 짙은 남색 앞치마를 입고 소매를 걷어붙인 모습이었다. 탄탄한 전완근과 물감을 이겨내는 정교한 손놀림이 화실 안의 공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현수 씨, 안녕하세요. 이번 학기 보조를 맡게 된 장예린입니다."

    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아침 햇살이 그의 오뚝한 콧날과 턱선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전형적인 한국 남학생의 건강하면서도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빛을 받아 조각처럼 맺혔다. 그는 예린을 가만히 응시했다. 여전히 상대의 이면을 궁금해하는 듯한 깊은 눈매였다.

    "아, 중국에서 오셨다는 그… 작가님?"

    현수가 ‘작가님’이라는 단어에 미세하게 힘을 주며 미소 지었다. 존칭이었지만, 예린의 정갈한 이력을 슬쩍 건드려 보는 듯한 묘한 도발이 섞여 있었다.

    "과찬이시네요. 그냥 예린 씨라고 부르세요."

    "그럴까요, 예린 씨. 마침 잘 됐네요." 현수가 도구를 내려놓고 재료 카트를 가리켰다. "오늘 사용할 물감들을 종류별로 정리해 주세요. 그곳에서의 방식과 이곳의 방식이 어떻게 섞일지 궁금하거든요."

    예린은 가방을 내려놓고 일을 시작했다. 붉은 안료를 정리하던 중, 예린의 시선은 현수의 팔꿈치 근처 소매에 묻어 있는 짙은 푸른색 물감 자국에 머물렀다. 갤러리에서 보았던 그 뜨거운 석양의 색과는 전혀 다른, 서늘하고도 깊은 파란색이었다.

    "그때 갤러리에서 본 그림요." 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검은 번개처럼 타오르던 고목과 석양의 주황색이 정말 강렬했어요. 그런데 지금 현수 씨 소매에 묻은 그 파란색은… 그 그림과는 전혀 다른 온도네요."

    현수가 자신의 소매를 힐끗 보더니 무심하게 팔을 내렸다. 그리고는 시선을 화실 한편, 큼지막한 방진포에 덮여 있는 거대한 화대로 돌렸다.

    "저건 이번 학기말 경연에 내놓을 미완성작입니다. 소매에 묻은 건 저걸 그리다 남은 흔적이고요."

    현수는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그림의 정체를 밝혔다. 예린은 그 솔직함에 조금 놀라며 화대를 응시했다.

    "경연요? 저도 참가하고 싶어요. 이곳 학생들과 정식으로 겨뤄보고 싶거든요."

    예린의 확신에 찬 말에 현수가 처음으로 팔짱을 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의욕이 좋네요. 사실 예린 씨 같은 신입생에겐 경연이 가장 빠른 지름길일 겁니다. 입상만 해도 졸업 가산점은 물론이고, 다음 학기 장학금에 각종 지원 정책이 따라붙거든요. 실질적인 혜택이 많아서 다들 사활을 걸고 달려들죠."

    "장학금과 가산점이라… 제게도 꼭 필요한 것들이네요. 저도 참고해보고 싶어요. 현수 씨가 저 방진포 아래 숨겨둔 그 파란색의 정체가 경연을 위한 승부수라면 더더욱요."

    현수가 처음으로 미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시선을 맞췄다.

    "참고라… 여긴 생각보다 훨씬 거칠 텐데.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파괴하면서 올라가는 곳이니까. 저 방진포 아래 있는 게 예린 씨에게 영감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현수는 카트에서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물감 하나를 꺼내 예린의 옆에 툭 놓았다.

    "탁한 갈색은 쓰지 마세요. 화면만 지저분해지니까. 차라리 이 색을 얇게 겹쳐봐요. 예린 씨의 그 깨끗한 그림들이 이곳의 소음과 어떻게 섞이는지, 저도 지켜보죠."

    현수는 다시 자신의 작업대로 돌아갔다. 예린은 그가 두고 간 물감과 방진포가 씌워진 거대한 화대를 번갈아 보았다.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대화 속에 담긴 미묘한 탐색전이 물감보다 더 깊숙이 예린의 내면에 스며들었다. 현수가 예고한 치열한 경연과 파란색의 정체는 경계해야 할 불꽃인 동시에 얼어붙은 감각을 깨우는 치명적인 파동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작업에 집중했다. 화실을 가득 채운 물감 향기 속에는 이미 서로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보이지 않는 색채가 되어 번져나가고 있었다.

つづく

「本小说为作者独立创作的虚构故事,所有人物、情节、背景均为艺术加工,与现实中的任何个人、团体或事件无任何关联。若有巧合,纯属偶然。

본 소설은 작가가 독자적으로 창작한 허구적 이야기로, 모든 인물·줄거리·배경은 예술적 가공의 결과이며, 현실 속 개인·단체·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 유사점이 있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금기된 캔버스

제1장: 새로운 생활의 캔버스
제2장: 빗속의 만남
제3장: 색채의 공명
제4장: 그라데이션 컬러
제5장: 심연의 대화
제6장: 기교의 감옥, 빗장 너머의 시선
제7장: 박제된 초상과 소주 한잔
제8장: 뭉개진 형상, 주체의 탄생
제9장: 비명과 침묵의 밸런스
제10장: 남편의 방문, 그리고 해석된 비명
제11장: 증명된 <갈망>, 그리고 빗속의 동행
제12장: 거짓 없는 몸, 잔인한 기적
제13장: 무너진 유예, 다시 쓴 가면
제14장: 깨진 독, 쏟아진 기만
제15장: 하늘에 흩뿌린 거짓말
제16장: 가장 안전한 공범
제17장: 지워진 흔적, 차가운 다짐
제18장: 황금 감옥의 대가
제19장: 회색의 시간을 넘어
제20장: 비로소 채워진 캔버스 (最終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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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가을

남은 시간 ... 한땀한땀 걸어 온 길과 주변에 들은 이야기들을 글로 꾸며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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