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마제스티 호텔의 로비는 저녁 8시가 넘었지만 체크인을 하려는 투숙객들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화려함 속에 감도는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천장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 거만한 기류 때문이었다.

잘 닦인 대리석 바닥과 유리 벽면, 과도하게 정제된 샹들리에 조명은 사람의 체온을 조금씩 앗아갔다. 예린은 그 한가운데 서서, 자신이 다시 한번 북경이라는 거대한 감옥의 입구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시어머니, 진(陈) 여사는 이미 로비 중앙의 벨벳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은퇴 후 사교 모임에 전념하며 더욱 짙어진 화장, 멀리서부터 코를 찌르는 독한 향수 냄새. 북경 사교계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그 향수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향이 강하고 매캐했다.

그녀가 앉은 소파 옆에는 황금색 리본으로 정갈하게 묶인 고급스러운 선물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예린은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그녀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던 그 지긋지긋한 검은 약, ‘강신난궁방(降神暖宫方)’이 또다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옆에는 왕펑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예린이 다가가자 진 여사의 지독한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우욱…”

예린은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화실의 테레빈유 냄새보다 더 역하고 인공적인 향기가 예민해진 위장을 사정없이 긁어놓았다.

“왔니.”

진 여사가 며느리의 헛구역질을 보고는 묘하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예린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 아프다더니. 얼굴이 핏기가 하나도 없구나. 그래도… 반응은 오는 모양이네.”

진 여사는 대답도 듣지 않고 다짜고짜 예린의 오른손을 낚아챘다. 차가운 금반지가 손목에 닿아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명의라도 된 양, 검지와 중지로 예린의 맥박을 짚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후, 진 여사의 립스틱으로 붉고 굵게 칠한 입술 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것은 확신에 찬, 아주 음흉하고도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역시… 몸은 관리하는 만큼 반응을 보여. 활맥(滑脉)이야. 구슬이 쟁반 위를 구르듯 매끄럽게 뛰는 맥.”

진 여사는 예린의 손을 놓고, 옆에 놓인 약 꾸러미를 톡톡 두드리며 감탄했다.

“내가 거금을 들여 지어 보낸 이 ‘강신난궁방’이 드디어 효험을 보는구나! 이번에 북경에 돌아가면 약 지어준 우(牛) 의사 한번 톡톡히 밥 사줘야겠네…”

예린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말려들면 끝장이다. 예린은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태연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오해하셨어요.”

예린은 짐짓 민망한 듯 손사래를 치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요즘 한국에 독감이 유행이라더니, 제가 딱 걸렸나 봐요. 전시회 준비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더니 위경련도 심해지고… 소화도 안 돼서 며칠째 죽만 먹고 있어요. 그래서 속이 계속 울렁거리는 거예요. 임신이라니요, 당치 않아요.”

하지만 진 여사의 표정은 단호했다.

“내 촉이 맞을 게다… 이건 분명히 태기야! 저번에 펑이 너의 전시회 왔을 때 제대로 씨를 뿌린 것 같구나.”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왕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껄껄 웃으며, 마치 그 약의 효력과 아들의 정력을 칭찬하듯 왕펑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왕펑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왕펑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흙빛으로 변했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더니, 거친 숨소리가 황소의 콧김처럼 뿜어져 나왔다.

쾅-!

그는 로비 테이블이 부서져라 주먹으로 내리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만하세요!”

갑작스러운 굉음에 로비를 지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힐끔거렸다. 진 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얘가 미쳤나? 좋은 일인데 왜 성을 내?”

“좋은 일?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이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그날 난 예린이와 싸우고 전시장에서 바로 나왔어. 호텔에서 혼자 잤고! 손끝 하나 안 댔단 말이야!”

왕펑은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씨’를 언급할 때마다 끔찍한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예린을 노려보았다.

“너! 바른대로 말해! 이 임신 소리가 웬 말이냐?!”

왕펑이 예린의 멱살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진 여사는 급히 예린의 앞을 막아서며 아들을 말렸다.

“아니, 그렇게 이 에미를 못 믿냐? 네가 술 먹고 기억을 못 하는 거 아니니? 여기서 난리 피우지 말고 내일 산부인과에 가서 네가 제대로 씨를 뿌렸는지를 진단하면 될 거 아니야!”

“아, 씨… 그놈의 씨 소리 좀 그만해!!!”

왕펑의 인내심이 툭 끊어졌다. 어머니의 그 맹목적인 믿음, ‘내 아들은 완벽하다’는 그 착각이 왕펑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놈의 씨 타령 좀 그만해요!”

“너 왜 이래? 웬 난리야!”

“아, 못 한다고! 못 해! 안 된다고! 씨가 없다고!”

왕펑이 핏발 선 눈으로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이성이 마비된 상태였다.

“……뭐?”

진 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펑은 헐떡거리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억눌러왔던 콤플렉스를 토해냈다.

“나 무정자증이라고! 씨가 없다고! 3년 전부터 병원에서 확진 받았어! 근데 내가 어떻게 애를 만들어! 그러니까 저 여자가 임신일 리가 없잖아!”

순간, 로비의 모든 소음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듯 사라졌다.

왕펑은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싸늘해진 분위기에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진 여사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하니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수치심과 배신감, 그리고 며느리 앞에서 발가벗겨진 듯한 모멸감이 진 여사를 덮쳤다.

“이… 이 불효막심한 놈!”

짝! 짝!

진 여사가 벌떡 일어나 왕펑의 등짝을 미친 듯이 내리쳤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런 몸이라니! 그걸 3년이나 숨겨? 아이고, 내 팔자야!”

“아, 엄마! 그만 좀 때려! 나도 힘들었다고!”

아수라장이 된 로비. 예린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고백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 숨통을 트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 비겁하고 이기적인 민낯이, 지난 3년의 고통을 더욱 비참하고 우습게 만들었다.

‘속였어… 다들 자기만 생각하느라, 날 지옥에 가둬두고 구경만 했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예린은 머리를 돌려 진 여사가 앉아 있던 옆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진 여사가 “귀한 약”이라며 가져온 그 묵직한 비단 꾸러미를 높이 치켜들었다.

“니들이 여직 이걸로 날… 이거였어? 겨우 이거였어?”

예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뼛속 깊은 원망이 서려 있었다.

“뭐… 뭐 하는 거냐?”

진 여사가 아들을 때리던 손을 멈추고 예린을 바라보았다.

예린은 들고 있던 약 꾸러미를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포장이 터지며 말린 약초와 찌꺼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호텔 로비의 고급 카펫 위로 검고 마른풀들이 쓰레기처럼 널브러졌다.

“당신 아들이 불임인 걸 알면서도… 3년 동안 나한테 이 쓰레기 같은 풀뿌리를 달여 먹였어? 날 죄인 만들고, 병신 취급하면서?”

예린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일 병원이요? 지금 제정신이세요?”

“뭐, 뭐라? 너 지금 시어미한테…”

예린은 핏발 선 눈으로 시어머니를 노려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로비가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진정 병원에 가 봐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왕펑이에요! 당신 아들이라고요!”

쩌렁쩌렁한 외침이 호텔 로비의 높은 천장을 때리고 메아리쳤다. 진 여사는 입을 쩍 벌린 채 얼어붙었다.

“당신 아들이 문제라잖아요! 근데 절 병원에 데려가서 뭘 확인하시겠다는 거예요? 내 몸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아니면 당신들이 날 얼마나 기만했는지?”

“야, 장예린! 말조심해!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목소리 안 낮춰?”

왕펑이 씩씩거리며 예린에게 다가와 팔을 잡으려 했다. 창피함에 얼굴이 벌게져서, 방금 전까지 엄마에게 대들던 분노를 만만한 아내에게 돌리려는 심산이었다.

“저리 가, 날 만지지 마!”

예린이 왕펑의 손을 벌레 털어내듯 거칠게 뿌리쳤다.

“왕펑, 네가 제일 나쁜 놈이야. 넌 네 자존심 때문에 날 3년 동안 지옥에 가둬둔 거야.”

“뭐? 야! 내가 내 치부까지 드러내면서…”

“닥쳐! 핑계 대지 마!”

예린은 왕펑의 말을 싹둑 자르고 뒤로 물러섰다.

“가져가. 당신들의 그 대단한 정성, 당신들의 그 썩어빠진 거짓말들… 도로 다 가져가서 당신들이나 달여 마셔!”

예린은 더 이상 그들의 대꾸를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장예린! 거기 안 서? 야!”

왕펑이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예린은 멈추지 않았다.

호텔 회전문을 밀고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훅 끼쳐왔다. 예린은 도망치듯 택시 승강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이잉- 지이잉-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왕펑이었다. 예린은 망설임 없이 전원 끄기 버튼을 꾹 눌렀다.

화면이 까맣게 꺼졌다.

빈 택시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예린은 쫓기는 사람처럼 뒷좌석에 올라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택시 기사가 룸미러로 예린을 보며 물었다.

예린은 창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왕펑이 쫓아올지도 모른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이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임신 사실도 까발려지게 된다.

“…기사님.”

예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목적지를 말했다.

“아트리움 대학교, 후문으로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택시가 미끄러지듯 어둠 속으로 출발했다. 멀어지는 호텔을 뒤로한 채, 예린은 차가운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떨리는 마음을 쓰다듬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つづく

「本小说为作者独立创作的虚构故事,所有人物、情节、背景均为艺术加工,与现实中的任何个人、团体或事件无任何关联。若有巧合,纯属偶然。

본 소설은 작가가 독자적으로 창작한 허구적 이야기로, 모든 인물·줄거리·배경은 예술적 가공의 결과이며, 현실 속 개인·단체·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혹시 유사점이 있다면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금기된 캔버스

제1장: 새로운 생활의 캔버스
제2장: 빗속의 만남
제3장: 색채의 공명
제4장: 그라데이션 컬러
제5장: 심연의 대화
제6장: 기교의 감옥, 빗장 너머의 시선
제7장: 박제된 초상과 소주 한잔
제8장: 뭉개진 형상, 주체의 탄생
제9장: 비명과 침묵의 밸런스
제10장: 남편의 방문, 그리고 해석된 비명
제11장: 증명된 <갈망>, 그리고 빗속의 동행
제12장: 거짓 없는 몸, 잔인한 기적
제13장: 무너진 유예, 다시 쓴 가면
제14장: 깨진 독, 쏟아진 기만
제15장: 하늘에 흩뿌린 거짓말
제16장: 가장 안전한 공범
제17장: 지워진 흔적, 차가운 다짐
제18장: 황금 감옥의 대가
제19장: 회색의 시간을 넘어
제20장: 비로소 채워진 캔버스 (最終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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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가을

남은 시간 ... 한땀한땀 걸어 온 길과 주변에 들은 이야기들을 글로 꾸며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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