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으례 찾아 듣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가을에 특히 즐겨 듣는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시월이 되어 이 노래가 생각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노래를 들으려고 시월을 기다리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좋아합니다. 다 가는 시월의 끝을 잡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이 노래가 주는 감동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2008년 가을,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지쳐 있었던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던 제가 밤낮없이 아기 젖 먹이랴, 기저귀 갈고 씻기랴, 또 다른 '나'인 엄마의 역할에 적응해 가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연속 두 시간 이상을 자 보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고달팠고 정신이 없었지요.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기한테 좋은 음악을 들려 주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다 찾게 된 보석 같은 노래였습니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라는 대목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예쁘고 가녀린 새 생명을 두고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라는 노랫말이 마음을 후벼 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벌써 6년의 세월이 흘러 그 아이는 내년이면 곧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 ‘보기만 해도 배 부른’ 의젓한 녀석으로 커 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의 어느 아침, 저는 그 아이의 동생으로 태어날 7개월 된 태아 덕분(?)에 남산만한 배를 하고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연구실로 가는 길이었지요. 숨이 턱에 닿는 데도 가슴을 적시고 입가를 맴도는 노랫말이 있었습니다.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2019년 시월의 어느날, 연을 날리는 두 녀석

  영화 “비긴 어게인(Can a song save your life?, 歌曲改变人生, 2013)”에서 뉴욕의 유명 음악 프로듀서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 댄이 이렇게 말하지요. “나는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이라고. 하물며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모든 잎들이 울긋불긋 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가을날 아침,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가 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또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는 것, 게다가 좋은 음악까지 더하니 “아마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2020년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올해는 시월이 오기도 전에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찾아 듣고 있네요…  이 음악을 처음 듣고 6년 뒤에 위의 글을 썼고, 그 이후로 또 한 번의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글에서 '‘보기만 해도 배 부른’ 의젓한 큰녀석'은 내년이면 중학교에, 그리고 6년 전 뱃속에 있던 그 작은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저는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서 힘들거나, 아프거나 할 때마다 일을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하며 지금의 직장에서 꼭 10년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말로는 다 못할 또 다른 감정이 울컥하며 치고 올라오네요. 

  제 인생에 몇 안 되는 두 번의 6년, 그 두 번의 6년의 가을을 저와 함께해 준 이 음악이 새삼 감사하고, 그보다는 올해는 그 두 번의 6년을 어떻게든 버텨 준 제 스스로를 좀더 토닥이는 그런 가을이 될 것 같습니다.  

2019년 시월의 어느날, 캠퍼스 내 산책길에서

  음악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지만, 오늘은 이 음악을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그 어떤 경우에도 '바람은 죄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바람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얘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습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될 것 같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어떤 경우에도 바람을 가지시기를, 그리고 그 바람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가을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끝으로, 여러분의 오늘도 소개해 드리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인해 진주처럼 더 아름답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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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CeuIuoS5pA (김동규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유튜브 영상)

◇ 가사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 한경혜 작사, 롤프 러블랜드 작곡 –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 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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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10월 29일, 위챗 공중호 지행자(wechat ID: zhixingzhe512)에 실렸던 글을 옮겨 오고, 뒤에 올해의 생각을 덧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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