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抖音이였습니다.

피곤해 일찍 잠들었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밤 12시쯤 깨여난 날, 그 시간에 抖音을 보고 있던 딸아이와 마주쳤습니다. 아이의 눈에 놀라움과 경각심이 넘칩니다. '잠꾸러기 엄마가 이 시간에 왜? 건드리기만 해봐? '

이 사람아, 나도 경악이라고요, 믿는 도끼에 발등 깬다더니… 고민끝에 이튿날 아침 '휴대폰은 통화용으로만 사용할 것'을 정중히 요구하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사용상태를 확인하려고 보니, 아니 글쎄, 휴대폰에 잠금패턴이 설치된게 아닙니까. 그리고 아이는 대화를 거부합니다. 일종의 '묵비권' 행사 같은거겠지요.

고구마 백개를 먹은듯 답답합니다. 그리고 망상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딸아이가 방에 들어가면 휴대폰만 보는 것 같고, 피곤해 보이면 휴대폰을 너무 봐서 그런 것 같고, 짜증을 내면 이상한 동영상을 본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루종일 어떻게 대처할가 궁리합니다. 와이파이를 끊을가, 휴대폰을 기능폰으로 바꿔줄가, 따지고 들가, 혼내줄가.

어딘가에 집중하면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로 보이고, 작은 문제도 큰 문제로 보입니다. 그리고 내 상상인지, 사실인지 분간하지도 않은채 조바심이라는 눈덩이에 마구 추가하여 점점 크게 굴리게 됩니다. 조바심이란 사실 망상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일에 상상을 가미할 때 지니게 되는 초조한 마음의 상태가 조바심이기 때문에요.

당연하지만, 조바심은 일 해결에 도움이 안됩니다. 아이는 여느때와 크게 다를바 없이 친구 얘기, 선생님 얘기 조잘대다가도, 휴대폰 관련해서 뭐라도 좋으니 한마디만 해보라고 하면 피곤해서 자도 되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금세 입을 닫습니다.

헤염치는 오리처럼 우아하게 저항 없이 동동 떠가듯 보이는 일상이지만 물밑에서는 각자 오리발을 부지런히 앞뒤로 저으며 묘한 신경전을 이틀간 지속하다가, 너도 살리고 나도 살려면 내가 조바심과 망상을 떨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운동을 할 때에는 눈덩이가 잠시 그 자리에 멈추는데, 그때, 아이에게 집중된 눈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작정합니다.

구체적으로 잔소리를 많이 하는 일상과 주말 일정을 도표로 정리하여 아이에게 인수인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당신의 매니저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합니다. 악기(양금) 련습해야지, 이빨 닦아야지, 일어나 어디로 가야지, 이런 잔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니 혼자 잘 챙기고, 몇시에 어디로 출발해야 하는지 알아서 엄마한테 데려다달라고 부탁하라는 식이지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양금 선생님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는 급히 몇분간 련습하더니 울먹이면서 양금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포기해도 좋은데 선생님께 미리 말씀 드리는게 예의다, 오늘은 약속시간이 다 됐으니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걸음을 다그칩니다. 아이는 왕왕 울면서 따라오다가, 멈추다가, 끌려옵니다. 

아마 아이의 눈물도 조바심으로 인한 것이고, 그 조바심은 약속대로 련습하지 않았으니 반드시 꾸중 들을 것이라는 망상에서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워낙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인지라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과 엄한 어조를 생생하게 그려냈겠지요. 그리고 엄마에 대한 시위이기도 할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양금, 이제 안하겠습니다.'

하지만 늘 그러듯이, 양금 수업을 끝낸 아이의 얼굴이 아주 밝습니다. 가방을 제대로 메지도 않은채 깡충깡충 뛰여옵니다. 양금 포기한다고 엉엉 울던 한시간전의 자신이 쑥쓰러운지 평소보다 더 흥분한 얼굴입니다. 그러더니, 가방끈에 걸려 철퍼덕 넘어집니다. 

부축이고 안아주고 위로합니다. 

– 아파? 괜찮아? 뭐야, 화장실 들어갈때 다르고 나올때 다르다더니, 수업 전후가 이렇게 달라? 

– 히…

– 선생님이 뭐라 안하셨어? 수업은 잘 본 것 같네.

– 련습 안했는데 괜찮았어.

– 너 포기하겠다고 할때 엄마가 안된다고 하길 바랬어?

– 어. 나는 가고 싶기도 하고, 안가고 싶기도 한데, 엄마가 안가면 안돼 해주길 바랬어.

– 뭐야, 본심은 가고 싶은데 당장은 안가고 싶기도 해서, 엄마가 밀어주고 당겨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배우라고 해서 배운거다, 내가 즐겁지 않다면 그건 당신 탓이다. 이런거?

– 히…

– 나 이제 당신 매니저 아니야. 엄마의 사랑이랑 친구의 사랑이 많이 달라. 엄마의 사랑은 헤여지기 위한 사랑이야, 너 어릴 때는 24시간 엄마가 필요하지만 18세가 되면 완전 독립할거잖아. 어느 친구가, 나 지금은 너랑 친하지만 몇년 후 안친할거야 한다면 이상하지, 그런데 엄마는 그래야 해. 내게 응석을 부리는건 좋아, '힘들어, 나 하기 싫어 힝… '해도 돼. 하지만 악기 계속 할지 안할지는 니가 정해. 안하겠다 해도 엄마는 그래 알았어 할거야. 

– 그래도…

– 남자친구에게 말로는 헤여지자 하면서 남자친구가 잡아주길 바라는건 ZUO라고 하지. 둘이 같이 있어서 행복한게 아니라,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같이 있어서 행복한거래. 혼자서 판단해서 정해야 해. 누가 잡아주길 바라면 오래 행복할 수 없어. 악기도, 영어도 마찬가지야. 언제까지 배울지 너가 정해.  

집이 아닌 외부 환경에서 좋아하는 선생님한테 잘하는 악기를 배우는 동안, 막막하고 두렵고 심술 궂던 마음이 정화되였나 봅니다. 잔소리에 귀를 막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은걸 보면. 그리고 엄마 마음도 정화시켜줍니다.

– 엄마 읽는 책이 무슨 책?

– <儿童技能教养法>

– 뭔데? 

– 음…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어떤 기능을 단련해야 하는지, 이런 각도로 생각하면 문제가 스스로 풀린대… 똥오줌을 못가리는 아이, 이걸 문제로 보고 해결하는게 아니라, 화장실에 가서 볼일 보는 기능을 단련한다고 생각하는거지. 그리고 이 기능을 잘 단련하기 위한 방법과 도구를 찾는거고. 그리고, 抖音에 빠져 나오지 못하잖아, 동영상이 재미나서 멈추지 못하는거.

이때다 하고 슬쩍 말을 꺼냅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예상 밖이였습니다.

– 멈추지 못한다고? 왜?

– 너무 재미 있어서 자꾸자꾸 보게 되는거지.

– 음… 너무 보면 재미 없는데, 멈추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 우와. 정말? 당신을 숭배합니다. 어른들도 쉽지 않은데? 

– 동영상을 많이 보면 다 비슷해, 거기서 거기. 

– 헐. 그런거였어?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습니다. '너가 휴대폰을 온종일 들여다보고 있으니 몰수해야겠어, 와이파이를 끊어야겠어' 했다면 아이가 정말 휴대폰에 빠지거나, 다른 외길로 빠져나가지 않았을가요.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구 떠오릅니다. 그후 신기하게도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도 망상에 잠기지 않습니다. 믿음을 주니 마음이 편합니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주스를 마시면서 옆 자리에서 대화하는걸 들었어. 어린이 학교가 집이랑 멀리 떨어져 있는가봐, 엄마아빠가 학교 데려다 줄 기사님을 면접하고 있더라.

– 우와, 훌륭한 집안이네. 엘리트(精英)인가봐.

– 에? 엘리트? 

– 돈이 많으니 기사도 청하고, 엘리트지.

– 음… 방과 후 학교에서 마중해 학원에 보낸다고 하더라. 

– 엘리트들은 다 그렇게 해.

– 어? 어떻게?

– 어문, 수학, 영어, 피아노를 기본으로 배우게 하고 운동도 하게 하고. 나는 양금을 배우잖아, 이런 민족악기를 엘리트 가족은 안배워. 촌스러워서.  

– 너도 배우고 싶어? 학원 다니고 싶어? 

– 아니, 나는 학원이 싫어. 자유스럽지 않아. 엘리트 엄마들은 요구가 너무 높아. 

– 그게 좋은 교육이라 생각해? 

– 엘리트 가족에서 엘리트가 많이 나오지.

– 음… 그러면 엘리트가 대체 뭐야? 나는 엘리트야?

– 기업가?… 엄마는 준엘리트. 엄마는 내가 중등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애. 중등보다 살짝 더 잘하는 정도?

– 아빠는?

– 아빠는 내가 1등이길 바라지. 욕심이 과해.

– 그럼 넌? 너 자신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야? 엄마 기대와 아빠 기대 사이?

– 맞아. 

– 너 가끔 엄친딸인거 알아? 

– 알아. 선생님도 가끔 그러셔. 자, 누구는 이미 똑바로 앉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원래 무너질라 했던 자세를 티가 안나게 조금씩조금씩 똑바로 해. 

– 악단에서도 양금 제일 잘하는거 아니야? 

– 선생님이 나만 첨부터 끝까지 칠 수 있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어.

– 너 지금 학교에서 중등이고, 안 좋은 학교 가도 중등, 좋은 학교 가도 중등할거지?

– 그렇지. 강한 사람 만나면 강해지고, 약한 사람 만나면 약해지거든.

– 그럼 좋은 학교 보내줄가?

– 아니, 지금이 좋아. 

– 엘리트 가족에서 자란 아이들이 엘리트가 되고, 그럼 넌 뭐가 되는거야? 

– 나도 준엘리트 할거야. 평범한 사람이 될거야. 그냥 직장 찾아서 출근할거야. 

– 어린이 치과 의사는?

– 사람들 침이 손에 묻는거 싫어, 안돼.

이 또한 뜻밖입니다. 본인을 잘 알고 있고 엄마아빠의 기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엘리트가 멋지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이 엘리트로 될 생각은 없습니다. 遇强则强 遇弱则弱로 본인을 묘사하면서도 더 강한 환경에 놓여지는 것은 거부합니다. 본인에게 충실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며 충분히 여유를 가지려 합니다. 훌륭합니다. 또한 심히 게으릅니다.

문제는 나였습니다. 나만 잘살면 되는데, 나만 조용히 있으면 되는데… 운동이 부족했나봅니다. 반성하고 뉘우치고 입닥치기로 합니다. 

엄마에게 딸아이 사춘기를 하소연했습니다. 어머니는 묘하게 웃으며 '너가 어릴때, 똑같이 했다' 하십니다. 

참고한 책

1 앨리슨 고프닉 책 <정원사와 목수>(The Gardener and the Carpenter, 园丁与木匠)

2 오소희 책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3 센딜 멀레이너선, 엘다 샤퍼 책 <결핍의 경제학>(Scarcity, 稀缺)

4 오소희 블로그 <태평양의 끝> 중 '답글: 아들의 사춘기, 절망합니다(1)'

5 김선미 책 <닥치고 군대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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