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여섯 번 바뀌었다. 창밖의 풍경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빛깔의 순례를 돌았다. 그리고 이제 그 풍경을 완전히 바꾼다. 새로운 머뭄의 자리를 정했다.
섬나라에 온 것은 2017년 가을이다. 운도 좋고 귀인도 만나서 첫 보금자리를 빨리 정하게 되었다. 닷새의 일정으로 대학의 일정과 함께 세집을 계약하고 가야겠다는 '오토산' 생각이었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미리 알아보지도 않은 맨 땅의 헤딩이었다. 다른 건 제쳐두고 세집 찾기가 상상 그 이상의 난관이었다. 첫째는 만만찮은 비용이었고 둘째는 번잡하고 길게 늘어진 계약절차가 발목을 잡았다.
일본의 월세집은 부동산 중개수수료(월세 1개월 치)를 제외하고도 사례금(2-4개월 치), 담보금(1개월 치 이상), 보증회사 위탁료(외국인 대상, 연 1회), 갱신료(2년에 1회, 1개월 치) 등등으로 뭐가 많았다. 이밖에 관리비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 국적이나 영주권자의 보증인을 세워야 하는 수도 있다. 하여튼 초기비용만 해도 월세의 6-7개월 분은 복히 잡아야 하는 상황. 가렴잡세 수준이다. 게다가 계약 절차가 보증회사-집주인-부동산을 두루 거쳐야 하니 아무리 빨라도 한 주일은 넉넉히 걸린다는 답변. 도착 첫 날 부동산 중개사에 다녀 온 나는 좀 막막했다.
다행히 그날 저녁 중국에서 온 지인이랑 저녁을 먹으면서 우연하 공영주택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되어 이튿날 바로 사무소로 직행. 하여 월세 1개월 치의 담보금과 관리비만 내면 다른 부가비용이 일절 붙지 않는 첫 세집에 들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집에서 대학원 합격통지서를 받고 딸애를 맞이하고 옹알이와 걸음마와 그 밖의 모든 지지고 볶은 기억들을 쌓았다.
2019.10
딸애의 키 잰 흔적과 낙서들
2023.03
2019년의 어느 기념일
남쪽의 양지바른 창문을 가진 이 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창틀의 그림이 바뀌는 사이에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뀌고 그랬다. 자연에 감사하고 인연에 감사하며 돌이켜 본다.
건축년대가 꽤 된 건물이라 습기가 잘 안 빠지고 시설이 낡은 등 불편한 점들도 있었지만, 그래서 결국은 이제 이사를 하게 되지만, 머문 시간 만큼 정도 들었다. 딸애는 이사한 뒤에도 '밤에 잘 때면 옛날 집 생각이 나' 라고 말하기도 한다. 천년고도인 터라 건축물의 높이 제한도 있고 해서 5층 이상의 건물이면 벌써 전망이 좋다. 그래서 옥상이 좋았다. 해빛 내음이 바스락거리는 빨래줄도 있었고 시내에서 제일 높은 타워의 야경도 멀리 보이는 집이었다.
옥상에서 본 설경과 산의 자태
창가에서 본 핑크빛 노을
쌍무지개가 드리운 날
그리고 결국 맞이하게 된 이사의 날. 물건이 하나 둘 씩 줄어들고 자리를 내고 방이 민낯을 드러낸다. 언제 이리 많이 들여놨대. 그리고 애는 또 언제 이리 컸대. 마지막 창틀 그림도 나쁘지 않네. 일생에 몇 번 없을 길이의 시간을 여기에 켜켜이 쌓았었는데.
이사하는 날
국제이사도 경험을 했지만 몇 번을 해도 이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짐을 언제 다 정리하고 새 보금자리를 언제 또 꾸밀지. 어찌야 됐든 새로운 좌표, 새로운 잠자리에서 새삼 출발을 도모하고자 의미 부여를 하는게 인간.
그리고 폭격 맞은 이사짐 속에서도 태초의 아침은 변함이 없이 밝아왔다.
아침부터 놀음에 고픈 아이
'교찾로' 시리즈
<교토에서 찾아가는 로망스>
이사를 하는 건, 계절을 건너가는 거랑 비슷한거 같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맘처럼 푸르름에 대한 아쉬움과 무르익임에 대한 기대,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맘처럼 고요함에 대한 아쉬움과 만물소생에 대한 기대..
부득이하게, 또는 진짜 떠나고 싶어서 하는 이사도
이사라는 행위에는 쌓아놓은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또 쌓는 과정에서 오는 보내기싫음과 만나서좋음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매번 이사는 마지막이길 바라는 저로서는
평강의 이번 이사가 오래가길 바라고 켜켜이 많은것들이 또 소리없이 차곡차곡 쌓아지길 바랍니다.
이것도 나름 랜선집들이네요. 창밖 풍경 참 좋네요. 어디에 머물든 가족과 함께라면 언제나 평강~
일본에 집들은 이렇게 생겼군요. 아무리 낡은 집이라도 깨끗함은 한결같네요. 번거로워도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면서 정리해나아가는 재미도 쏠쏠하죠~
사계의 변화가 잘 보이는 창틀이 집에 걸어둔 생기도는 화폭이었네유~ ㅎㅎ
이사해 간 새 잠자리에서 온 가족 모두 좋은 꿈 꾸길~
이사하셨구나 ~~🤗 새로 이사한집 많이 밝아진 느낌임다 ! 새집에서 좋은일이 수두룩하게 생기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