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 3
역시나 친구의 소개로, 이번엔 절강성 이우로 사람 찾아 나섰다. 이우에서 사탕 공장을 운영하고 계시는 조선족 사장님-량사장님. 조선족 후배들 양성에도 물심양면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다.
화창한 주말 아침, 찾아 갔을 때 한창 업체랑 미팅중이셨다. 한참을 기다리면서 사무실 이곳저곳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무실 입구에 자리한 대형 어항, 이름 모를 열대어들이 유유히 물을 가르고 있었고 확트인 사무실은 중간 복도를 기준으로 량옆으로 족히 사오십명이 업무를 볼수 있을만큼의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 주말이라 절반 자리는 비여있었다. 대부분이 젊은 직원들일거라고 짐작하고도 남을만큼 테이블들은 온통 아기자기한 개인용품들로 데코레이션 되어 있었다. 중간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끝까지 가면 별도의 사장님 사무실이 있는 곳. 사장님 사무실에는 대가의 솜씨인듯한 서예 작품들이 여러개가 걸려 있었다.
먼저 온 손님들을 배웅해주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온 량사장님은 미안해하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궁푸차를 타셨다. 어릴 때부터 한족 학교를 다녀서 우리말이 조금 서투니 소통은 중국어로 하자고 했다.
홀쪽홀쪽 쿵푸차를 나눠마시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담소가 오고가던 중 대화의 열기는 고향 얘기가 나오면서 확 달아올랐다. 알고보니 량사장님은 나랑 같은 오리지날 훈춘 태생. 홀어머님이 아직도 훈춘에 계시다고, 한때는 이우에 모셔와서 살기도 했는데 적응을 못하셔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르신 소원대로 고향에 보내드렸다면서 많이 속상해하셨다.
책에 대한 집착도 비슷한 면이 있었다. 량사장님은 눈코뜰새없이 바쁘지만 매일 독서는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했다. 책 이야기를 하실 때 참 신나보이셨다. 나도 좋은 책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편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난 책 읽는것보단 사는것에 더 신나한다. 사놓고 아직 채 읽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좋은 책이라면 또 사고, 내 책들은 쉽게 빌려주거나 버리지도 못하는게 아직 다 읽지 못했기 때문… 악순환의 연속이다보니 책더미 속에서 지식은 소화 못하고 책장만 갈아먹는 책벌레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참 한심한 인간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책 좋아하는거 비슷한 점이라고 말한게 맘에 찔려서 그후로는 책을 많이 착하게 읽고 있다.
일전한푼 없이 이우에 와서 단칸방 세방살이를 하면서 안해본 고생이 없다면서 운을 떼는 량사장님은 第一桶金(정확히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중국어로 적음)을 어린이 문구용품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우연이 한국에 있는 어린이 교육용품 전시회에 눈팅하러 갔다가 재밌는 샤프(전자연필) 샘플 몇개를 사왔다고 한다. 계획하고 전략적으로 밀어부친 일은 아니였지만 돈이 될거라는 직감과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원래 상표를 떼어내고 자신의 상표를 부착시키는 간단한 리메이킹으로 재탄생된 샤프, 귀국 후 며칠 뒤, 량사장님은 리메이킹한 샤프 샘플로 국내 교육용품 전시회에서 대박 오더를 받아냈다고 한다.
정보가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교류가 원활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는 용감하고 눈치 빠른 사람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면 대박은 몰라도 쪽박정도는 문제 없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여서 옛날 그런 방식으로는 회사가 오래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량사장님은 전시회를 동네나들이 하듯이 많이 다니라고,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카피를 당할지 모르니 꼭 핵심 기술을 갖고 있는, 남들이 베껴갈 수가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내가 들고간 2차 샘플을 직접 접어도 보면서 한참을 지켜보더니 량사장님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셨다.
1. 창업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냐? 확고하다면 바로 시작해라. 어려움에 맞설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알고 시작해라. 맘 단단히 먹고 시작해라.
2. 단일 제품 하나로 대박을 치겠다는 허망한 꿈은 깨라.
3. 훌륭한 제품은 한번 개발로 끝나면 안된다. 개발 초기에 제품 자체의 확장성에 대한 잠재력을 잘 발굴하고 기획하여 기능과 디자인에 있어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4. 한글에만 제한을 두지 말고 중국어, 영어, 숫자에로도 확장을 해봐라. 한국 시장은 사이즈 자체가 작지만 교육용품에 있어서는 이윤 공간이 크다. 해볼만 하지만 덩치가 큰 중국 시장을 념두에 두고 움직여라.
5. 샘플이 너무 어설프다. 샘플 하나라도 제대로 된 샘플을 만들어라.
6. 지역에 따른 원자재 가격 차이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원가 세팅에 있어서 시장 조사를 충분히 해라.
7. 독불장군 없다. 팀으로 움직여라.
량사장님 사무실에서 도시락까지 챙겨 먹고 오후 세시가 다 돼서야 아쉽게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다. 량사장님 오후 스케쥴 때문에.
그후에도 또 한번 량사장님을 찾아갔었다.
咖功坊의 쭝즈(种子)를 나눠먹으면서 이쑤시개통 디자인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반백살에도 량사장님은 꿈이 있다고 했다. 회사 운영을 잘 해서 건강하고 튼튼하고 오래 가는 회사를 만들 것이며 정년퇴직 쯤에는 회사 지분을 직원들한테 다 나눠줄거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생은 교육쪽에 힘을 쓸거라고.
량사장님을 만나뵙고 그후, 나는 나의 파트너 로우진을 만났고 아이템은 기능과 디자인에 있어서 업그레이드를 거듭하게 되었다.
량사장님의 아낌없는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진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네요
그쵸 그런 분이 있다는게 힘이 마니 됏어요
사람을 찾아나선 하나하나의 스토리를 잘 정리하여 놓아서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듣고 도움을 받는 느낌도 들고. 창업 응원합니다.
저도 범이님 글에서 많이 얻어가는데요 ~~ 서로 공유하면서 배워가는거죠